▲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종이에 담채 33.2x28.5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기후변화 때문인지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장소가 많아서 인지 올여름은 유난히 덥다고 아우성이었다. 매년 올여름이 제일 덥다고 우리는 말을 한다.

산속이라 해도 내가 사는 곳도 덥기는 마찬가지, 처음으로 에어컨을 켜고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개들도 햇빛을 피해서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그들 나름의 피서를 즐긴다.

잠깐 한눈을 팔면 텃밭은 풀이 우거져서 들어갈 수가 없다. 어르신들이 보면 호랭이가 나오겠다고 한다. 친환경을 외치며 땅도 숨을 쉬어야지 비닐을 씌워 놓으면 얼마나 답답할까하는 생각에 농촌의 상징이 되어 버린 비닐 멀칭도 하지 않았으니 풀은 더욱 기세가 등등하다.

그 우거진 풀 속에서 가지, 오이, 호박, 고추, 토마토, 수박, 참외, 여주까지도 꿋꿋하게 열매를 달고 있으니 대견하고 고맙다. 그들 덕분에 우리 집 밥상은 늘 푸성귀로 진수성찬이다.

오이를 깍뚝깍뚝 썰어 김치도 담고 호박에 고추를 큼직하게 썰어 넣은 칼칼한 우리집 표 된장찌개, 호박을 납작하게 썰어 밀가루 달걀물을 묻혀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부쳐낸 호박전, 가지를 살짝 볶아서 밥을 지은 가지밥에 양념장을 넣어 쓱쓱 비벼 한입 가득 넣고 장독대에서 퍼온 햇 된장을 풋고추에 찍어 먹으면 꿀맛이다.

가지 꽃이 피기 시작하면 언제 열매가 맺힐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텃밭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다가 한 개 열리면 아까워서 딸 수가 없다. 초록색 잎에 자주빛 가지는 옅은 보라색 가지 꽃만큼이나 예쁘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처음에 열매를 맞이하는 것이 오랜 기다림으로 느껴질 뿐, 가지는 곧 주렁주렁 열매를 매단다. 우리 식구들이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열린다. 그래서 찾아오는 친구며 멀리 있는 가족에게도 보내고, 썰어서 쨍한 햇볕에 말려둔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기듯이 말려서 겨울 준비를 한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그림에서 가지 그림은 내가 아껴두는 처음 열리는 가지를 닮았다. 통통한 가지를 그리며 사임당은 자식들을 생각했을까? 여름 내내 주렁주렁 열리는 가지를 보며 탈 없이 잘 자라는 아이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가운데에 싱싱한 잎과 통통한 가지가 내가 주인공이라고 뽐낸다.

그 아래는 식물에 기대어 함께 살아가는 곤충, 방아깨비와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개미가 있고 위쪽에는 꽃을 찾아다니며 열매를 맺게 해주는 나비와 벌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가지 옆에는 많이 보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풀과 꽃이 함께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여름 방학숙제 중에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이 있어서 산으로 들로 찾아다녔던 추억이 있다.

이 그림은 마치 식물채집, 곤충채집을 해둔 것같이 보인다. 직접 잡아 박제화 시키는 대신에 종이위에 그들을 붙잡아두며 한 여름날의 추억, 그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해 두었다. 세밀화를 그리듯이 그 특징을 잡아 명료하게 그렸다.

첩첩 싸인 내 고향 천리이지만 / 꿈과 생시 오직 돌아가고픈 마음
한송정 가에 외로이 뜬 달 / 경포대 앞 스치는 한 가닥 바람
갈매기 떼는 모래밭에 모이고 흩어지고 / 바닷가에 고깃배 동서로 오락가락
어느 때나 고향길 다시 돌아가 / 색동옷 갈아입고 바느질할까    
<사임당, 어머님 그리워>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않은 친구들,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는 가을이 온다.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해 하는 엄마에게 오늘은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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