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계룡산의 자연환경과 문화자원

-이 기사는 충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 기획기사입니다. -

백제역사유적지구(공주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 부소산성과 관북리왕궁지,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고분군 익산 미를사지, 왕궁리유적)가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제38회 세계유산등재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결정됐다. 우리나라 12번째 세계유산이다.

계룡산은 금강과 더불어 충청남도의 영산(靈山)으로 공주시, 게룡시, 논산시, 대전 유성구에 걸쳐있는 명산이다. 계룡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①콘텐츠로의 계룡산 토론회 ②계룡산의 자연환경과 문화자원 ③계룡산의 종교와 문화재 ④계룡산의 축제와 문제점 ⑤해외 세계유산(일본 히에이잔과 엔랴쿠지) 탐방 ⑥주민활동과 아카이브 등이다.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계룡산(1861)

 Ⅱ계룡산의 자연환경과 문화자원

   1.계룡산의 유래

  백제시대의 계룡산은 중국 당나라 장초금(張楚金)의 저서 ≪한원(翰苑)≫의 ‘국(백제)동유계람산(國東有鷄藍山)’ 의 기록에 ‘백제의 동쪽에 계람산이 있다’ 고 하여 당시에 계룡산이 계람산으로 불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계룡산이란 명칭은 천여 년 전 신라시대에 이미 사용되었는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지리산, 동으로는 금강산, 서로는 묘향산, 그 중앙에 계룡산이 있다고 하였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이른바 오악 중의 서악으로 제사를 올려왔다고 전한다.

계룡산은 주봉인 천왕봉에서 연천봉·삼불봉으로 이어지는 연봉들이 마치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계룡(鷄龍)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또 계람산(鷄藍山)·옹산(翁山)·중악(中嶽)·계악(鷄嶽)·마골산(麻骨山)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묘향산의 상악단(上嶽壇), 지리산의 하악단(下嶽壇)과 함께 계룡산 중악단(中嶽壇)을 설치하였다. 중악단은 계룡산 연천봉 남쪽 하단에 위치한 신원사(新元寺) 경내에 있으며 상악단, 하악단과 더불어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대표적인 제단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계룡산은 예부터 산악신앙의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고, 산신제가 거행되고 있다.

태백산에서 시작하여 덕유산 · 계룡산에 이르는 산태극의 경로와 장수 · 진안에서 시작하여 금강을 따라 서해에 이르는 수태극의 경로는 조선 성종 때의 문장가 서거정(徐居正)은 ‘계룡산의 한가로운 구름’이라는 시에서

 계룡산 높고 높아 푸른 층층 솟아 있는데

맑은 기운 굼실굼실 장백(長白)에서 달려 왔네

산에는 못이 있어 용이 살고

산에는 구름이 있어 만물을 적셔주네

내 일찍이 이 산속에서 놀아보았더니

신령스러움이 다른 산과 사뭇 달랐네

구름 모여 비가 되어 천하를 적실 제는

용은 구름을 부리고 구름은 용을 따르더라

  고 하여 계룡산의 신비한 자태를 읊고 있다.

 이와 같이 계룡산의 산천형세와 관련한 풍수지리적인 특징은 조선 초 새로운 도읍지로 정해져 공사를 한 사실에 더하여 구한말 정감록 신앙이 널리 유포되면서 정감록 속의 새로운 도읍지가 바로 계룡산이라고 알려지게 하였다. 정감록 속의 십승지(十勝地)는 화가 들어오지 못하고 삼재(三災)의 난이 머물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계룡산은 이러한 승지(勝地)로서 어느 명승지보다도 지기·지령이 뛰어난 곳으로 유명하였다.

 

계룡산 전경

 2. 계룡산의 주요 봉우리

  ① 쌀개봉(827.8m) 모양이 디딜방아의 쌀개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현재 출입금지구역)

② 관음봉(816m) 탐방객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 후덕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닮음

③ 삼불봉(775m) 부처님 세분이 천황봉을 향해 반원을 그리듯이 서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④ 천황봉(845.1m) 계룡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군사시설보호구역)

⑤ 연천봉(740m) 산봉우리가 구름(하늘)과 맞닿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⑥ 도덕봉(535.2m) 흑룡산이라 부르며 대전전경이 한 눈에 펼쳐짐

⑦ 장군봉(500m) 계룡산의 용의 꼬리에 해당 되는 곳, 암반으로 된 세 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음

  

계룡산 능선과 봉우리들

3. 계룡산의 계곡

  ①. 동학사계곡 관음봉 고개~학바위(1.8km) 사계절 중 봄이 으뜸

② 갑사계곡 수정봉~갑사(1.5km) 수려한 가을 단풍

③ 상신계곡 금잔디고개~하신리(2km) 바위와 나무의 아름다운 조화

④ 화산계곡 금수봉~화산(1.3km) 억새 등 수생식물의 보고

 

천황봉 일출

 4.계룡8경

 계룡산 제1경 천황봉 일출

계룡산 제2경 삼불봉 설화

계룡산 제3경 연천봉 낙조

계룡산 제4경 관음봉 한운

계룡산 제5경 동학사계곡 신록

계룡산 제6경 갑사계곡 단풍

계룡산 제7경 은선폭포 운무

계룡산 제8경 남매탑 명월

  

5.계룡산의 풍수지리

 - 풍수지리로 본 계룡산-

계룡산의 풍수지리는 흔히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의 형세라고 한다. 이는 계룡산과 주위 산천의 형세가 계룡산을 중심으로 산과 물이 태극모양처럼 펼쳐 있다하여 예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 매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왔다. 백두대간 중 금남정맥의 끝부분에 위치하며 천황봉을 중심으로 관음봉, 연천봉, 삼불봉 등의 봉우리와 동학사 계곡, 갑사 계곡 등의 계곡으로 형성되어 있다.

 -신도안의 유래-

신도안은 계룡산 남쪽에 위치한 산야평원지대로 장차 도읍지가 된다는 도참풍수의 발원지로 널리 알려져 왔고, 한 때는 신흥종교의 집산지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1984년 6.20사업으로 모두 철거되고 삼군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태조가 즉위하여 계룡산 남쪽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기초공사까지 하다가 물길이 멀어서 중지하고 말았는데, 그 뒤 그곳을 신도(新都)라 부르며 군데군데 남아있는 주초석들은 신도안이 과거 조선 태조가 나라의 중심으로 삼으려했던 대궐 터임을 알려 주고 있다.

계룡산 중에서도 대궐 터가 있는 신도안 일대는 특히 풍수설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다. 신도안을 둘러싸고 있는 선인봉(仙人峰)은 청룡(靑龍)이 되고 국사봉(國師峰)은 백호(白虎)이며 삼불봉(三佛峰)은 현무(玄武)가 되고 대둔산(大芚山)은 주작(朱雀)이라고 한다. 계룡산의 풍수지리적 특징에 대해서는 이미 이중환의 ≪택리지≫ 에서 명쾌하게 밝혀져 있다.

  산 모양은 반드시 수려한 돌로 된 봉우리라야 산이 수려하고 물도 또한 맑다. 또 반드시 강이나 바다가 서로 모이는 곳에 터를 잡아야 큰 힘이 있다. 이와 같은 곳이 나라 안에 네 곳이 있다. 개성의 오관산, 한양의 삼각산, 진잠의 계룡산, 문화의 구월산이다.

 

계룡산 천단

 6 계룡산의 자연환경과 문화자원

  ①자연환경

계룡산의 각 봉우리 사이에는 7개의 계곡과 3개의 폭포 등 자연경관이 빼어나 1968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계곡과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잘 발달하여 산계를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정감록(鄭鑑錄)에서는 이곳을 십승지지(十勝之地)라 했으며 도참사상으로 인해 한때 무속신앙, 신흥종교 및 유사종교가 성행했으나 종교정화운동의 일환으로 1984년 이후 정비되었다

계룡산 일대의 지질은 대체로 중생대 쥐라기 및 백악기에 형성된 화강암질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차령산맥과 금강을 따라 형성된 잔구성 산지로서 산세가 웅장하고 경관이 뛰어나다. 특히 노성천, 구곡천, 갑천 및 용수천 등이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든다. 연평균 기온은 11℃ 내외, 연평균 강수량은 1,280mm이며 6~9월에 강우량의 90%가 집중된다.

  ②문화자원

-계룡산성-

신원사 주차장에서 연천봉을 향한 능선 해발 440m 지점에 매우 많은 잡석이 쌓여 있는 산성터가 확인된다. 자연지형을 포함하여 전체 둘레 3.8㎞이며 인근에서 발견되는 다른 성에 비해 매우 큰 규모이다. 1994년 이후 여러 차례 현장 및 문헌조사를 실시하였고, 현재 일부 성벽은 양호한 상태로 잔존한다(그림 25). 내성은 600m 정도로 계곡부에도 흔적이 남아있으며, 성터를 따라 토기와 기와조각이 산재한다.

산제단

-산제단-

계룡산 천황봉에서는 예로부터 산신제를 지내왔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임금이 직접 참여하여 산제단에서 천신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한일합방 이후 산제단이 유실되고 1941년 동학교주에 의해 복원하였으나, 1953년 이후 대형 통신용 철탑이 설치되면서 또 다시 훼손되어 표시석만 남은 채 방치되어 왔다. 1972년에는 군 통신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천황봉 지하 20m 지점에 160평 규모의 지하벙커를 조성하였다. 1984년 국방부로부터 한국통신으로 지하벙커가 인수된 뒤 통신용 철탑을 새로 설립하고, 군인들이 사용하던 지하벙커는 새롭게 복원하였다.

 

신도안 주초석군

 - 신도안 주초석-

신도안 주초석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6호(지정일 1976년 6월 9일)로 주춧돌은 신도안 내(內)의 부남리를 비롯한 정장리·석계리 일대에 흩어져 있던 것을 계룡시 남선면 부남리에 모아 놓았다. 석재의 크기는 대개 직경 1.2mx1.8m의 것으로 궁궐 건축용 주춧돌로 판단되며 석재의 수량은 115개이다.

신도안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동국여지승란(東國輿地勝覽)에서는 태조가 즉위하여 계룡산 남쪽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기초공사까지 하다가 물길이 멀어서 중지하고 말았는데 그 뒤 그곳을 신도(新都)라고 불렀으며 아직도 군데군데 주춧돌이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형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꼽히며, 계룡산은 신라 말, 고려 초부터 한국 고유 신앙인 산신 숭배 관념으로 치제하던 곳이다.

 

무학대사의 '불종불박' 필적

 무학대사의 필적-불종불박(佛宗佛朴)

불종불박(佛宗佛朴) 바위는 태조 이성계가 처음 신도안에 도읍을 정하려고 3일 동안이나 역사(役事)할 때 갖다 놓은 돌인데 무학대사의 필적으로 불종불박(佛宗佛朴)을 새긴 것이라 한다. 이 뜻은 ‘장래에 불법이 주교(主敎)가 되고 그때의 부처님은 박(朴)씨임을 예시한 것’이라 한다.

  -갑사구곡 석각군-

곡(曲)은 지리적으로 습곡작용(褶曲作用)에 의해 변화되는 지형, 지세가 아름답거나 특이한 산수 경치를 가진 장소를 말한다.

구곡(九曲)은 지형적인 특색에 의해 정해진 산수가 수려한 장소에 정사(精舍)경영을 하는 장소로 구곡을 설정하며 구곡이 설정된 곳은 경승에 해당되며 무릉도원인 선경을 의미한다.

‘용산구곡’과 ‘갑사구곡’은 각각 상신리와 갑사의 골짜기를 따라 조영된 석각물로 조성배경, 인물, 현황이 역사적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일제강점기 계룡산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윤덕영의 간성장

 간옹 윤덕영(1884~1941)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갑사와 30년 기한으로 임대하여 ‘간성장’이라는 별장을 짓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큰 바윗돌에 갑사계곡 용추교 하단을 시작으로 신흥암까지 골짜기 바위에 새겨진 각자를 한 것이다. 설정모티브는 ‘처음 닭이 울며 노니는 곳’으로 주요사상은 계룡산의 입지성과 상징성을 주역의 의미로 풀이한 것으로 추정이다.

  <유래>

제1곡 용유소(龍遊沼) 용이 노니는 소

제2곡 이일천(二一川) 수정봉과 연천봉 발원 계곡의 합수지점

제3곡 백룡강(白龍岡) 여름우기에 물보라가 마치 흰 용이 꿈틀대는 것과 같 은 곳

제4곡 달문택(達門澤) 연못에 배를 띄워 놓고 풍류를 즐긴 곳

제5곡 금계암(金鷄巖) 새벽을 알림

제6곡 명월담(明月潭) 달 밝은 밤 잔잔한 물위에 비친 달빛이 마치 하늘이 물속에 있는 듯한 절경

제7곡 계명암(鷄鳴巖) 계룡산이 처음 열릴 때 산속에서 닭이 날개 짓을 하 며 울었다는 바위

제8곡 용문폭(龍門瀑) 낙수광경이 절경인 폭포

제9곡 수정봉(水晶峰) 산봉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바위산

 

갑사구곡 탁본

 -용산구곡 석각군-

1932년 대한제국의 내부 판적국장, 시종원 시종, 진도군수 등을 역임한 취음 권중면이 용산구곡을 계룡산 상신계곡에서 금잔디고개와 남매탑 갈림길로 향하는 계곡을 따라 설정 각각의 골짜기마다 다양한 이름과 시구가 암벽에 각인했다. 권중면이 한일합방의 비보에 관직에 버리고 상신리에 들어와 용의 일생을 비유하며 해방의 그날을 표현하고자 했다.

  <유래>

제1구곡 심용문(尋龍門) 용을 찾아가는 문

제2구곡 은룡담(隱龍潭) 용이 승천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곳

제3구곡 와룡강(臥龍剛) 용이 엎드려 있는 바위

제4구곡 유룡대(遊龍臺) 용이 헤엄치며 노는 물

제5구곡 황룡암(黃龍岩) 용이 노는 바위

제6구곡 현룡소(見龍沼) 용이 모습을 나타내는 늪

제7구곡 운룡택(雲龍澤) 용이 구름과 함께 하늘로 오를 준비를 하는 못

제8구곡 비룡추(飛龍湫) 용이 하늘로 날아간 못

제9구곡 신룡연(神龍淵)용이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된 못

설정모티브는 ‘승천을 준비하는 용’으로 주요사상은 ‘선도’, ‘단학’이다.

용이 태어나서 승천할 때까지의 이야기 흐름 전개를 통해 국권회복을 염원하는 마음을 자연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용산구곡 탁본

-연천봉 및 천황봉 석각군-

계룡산 연천봉 석각군은 조선 초기 정감록과 관련한 도참사상이 연계되어 있다. 연천봉 정상 바위에는 ‘방백마각 구혹화생(方百馬角 口或禾生)’, ‘나무염불’이라고 각자되어 있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풀이하자면 ‘482년 후에 나라를 옮긴다’는 뜻이다.

또한 계룡산은 풍수지리적 특징으로 인하여 조선 태조부터 신도건설 공사와 함께 각종 예언과 연결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정감록은 조선시대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온 대표적 예언서로 ‘조선이 망하고 계룡산에 도읍을 정한다’는 미래국토의 이상이 담겨있다.

 

연천봉 석각

 참고문헌

*이찬희 논문 - 계룡산의 자연경관과 문화자원

*계룡산 - 국립공주박물관 발간

*계룡산국립공원 대표 석각 자원 - 계룡산국립공원사무소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