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의 지역축제와 개선방안

공주 제2의 세계유산 등재 운동 첫 걸음 4

백제역사유적지구(공주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 부소산성과 관북리왕궁지,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고분군 익산 미를사지, 왕궁리유적)가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제38회 세계유산등재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결정됐다. 우리나라 12번째 세계유산이다.
계룡산은 금강과 더불어 충청남도의 영산(靈山)으로 공주시, 게룡시, 논산시, 대전 유성구에 걸쳐있는 명산이다. 계룡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①콘텐츠로의 계룡산 토론회 ②계룡산의 자연환경과 문화자원 ③계룡산의 종교와 문화재 ④계룡산의 축제와 문제점 ⑤해외 세계유산(일본 히에이잔과 엔랴쿠지) 탐방 ⑥주민활동과 아카이브 등이다.  
-이 기사는 충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 기획기사입니다. -

Ⅲ 계룡산의 축제와 문제점

1.계룡산의 문화와 축제

국가제사처로서의 계룡산
계룡산은 신라 때에 오악에 견주어 중사(中祀)로 기록되었는데 조선에서는 명산이라 하여 소사(小祀)로 정하여 매년 봄, 가을에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려 제사하게 하였다.

▲ 계룡산의 민간신앙

국가적 제사로서 계룡산신에 대한 제의는 조선의 멸망과 더불어 그 명맥이 끊어지고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계룡산신에 대한 제사 처로 알려진 신원사(新元寺)의 중악단(中嶽壇)에서는 19세기 중엽부터 불교식으로 봄(음력 3월 10-3월 16일)과 가을(음력 10월 10일-10월 16일)에 산신제가 행해지고 있다. 또한 계룡산 주변 마을에도 산신제의 전통은 이어지고 있었고 개인적으로 명산인 계룡산에 제의를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1997년부터 공주시와 공주민속극박물관(관장 심우성)의 조사연구로 계룡산산신제가 복원되면서 계룡산산신제의 제의 장소, 제의시기, 제의절차 그리고 산신제의 행사내용의 구성 등 산신제에 대한 근원을 되찾게 되었다. 이후 계룡산산신제는 옛 법도에 따라 유·불·무(儒·佛·巫)가 함께하는 제의로서 1998년 4월 11일(음력 3월 15일)부터 4월 12일(음력 3월 16일)까지 2일간 단절 100여년 만에 봉행되었다.

단절 100여년 만에 봉행된 계룡산신제의 공식명칭도 ‘제1회 계룡산산신제’가 아닌 ‘1998 계룡산산신제’라 하여 새로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단절되었던 것을 다시 계승한다는 의지가 표현되었고 ‘계룡산산신제’로 현재에 이어지고 있다.

▲ 수신제

계룡산산신제는 유·불·무(儒·佛·巫)의 다종교가 공존하는 문화축제의 요체로서 그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 특히, 계룡산산신제가 열리는 신원사에는 1664년(인조 22)에 만들어진 국보 제199호 노사나불괘불탱(盧舍那佛掛佛幀)이 있다.

불가식 산신제를 지내는 중악단은 보물 제 1293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계룡산산신제는 명산인 계룡산도 축제공간이 될 수 있으므로 주위의 자원과 잘 연계하면 의미 있고 차별화된 문화축제가 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유기준(공주대)교수는 “계룡산산신제가 한국의 전통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계룡산산신제에 오면 흥겹고 조화로운 우리의 기층문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미지를 방문객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지역문화축제 속에는 지역문화의 모습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의 모습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계룡산산신제가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 될 수 있도록 계룡산산신제의 진정성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찾으려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전통문화 속에 들어 있는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러할 때 지역민들은 축제를 통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 되고 정신적 문화적으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찾아진 계룡산산신제 속에 들어 있는 고요성과 독특성은 지역민들에게 지역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함과 더불어 관광자원과 연계되어 문화축제의 주요한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 교수는 이어 “이러한 문화축제는 지역전통문화의 현재적 계승뿐만 아니라 지역민을 단합시키는 요소로, 그리고 축제 방문객들에게는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축제를 잘 해보겠다는 의지보다는 살아있는 독특한 전통과 문화를 기반으로 다른 지역과는 차별성을 부여하여 개발하겠다는 변화된 패러다임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계룡산 산신제

①계룡산 산신제
계룡산 중악단은 1999년 3월 2일에 보물 제1293호로 지정,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 경내에 있다. 계룡산 중악단은 일제강점기에 끊어졌다가 1998년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룡산 중악단은 계룡단을 계승하였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정확하게 없으나, 계룡산 계룡단, 고마나루 웅진단, 신원사 중악단, 양화리 특설무대 등에서 2016년 현재 19년째 행해지고 있다.

‘巫(무)·佛(불)·儒(유)’의 다종교 공존의 축제인 ‘계룡산 산신제’는 조화스러움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 민족의 심성과 충청남도의 정서에 어울리는 전통적이고도 특색 있는 향토축제이다. 계룡산 산신제는 향교에서 대한제국의 사전에 의하여 고마나루 수신제와 함께 올리고 있다.

산신제는 소사(小祀) 의례로 계룡산의 옛날 계룡단 터에서, 수신제는 고마나루에서 중사(中祀) 의례로 각각 지낸다. 고려시대에는 산신제가 중사로, 수신제는 소사로 치러졌다. 이와 함께 신원사에서 불교식 산신제를, 계룡산 산신제보존회에서 무속식 산신제를 각각 주관하여 올린다. 제의 날짜는 음력 3월 16일을 전후한 토요일과 일요일을 넣어서 잡는다.

계룡산의 연천봉(連天峰) 줄기에 자리 잡은 중악단이다. 중악단 주위에는 계룡산 굿당의 효시로 알려지는 밤나무집굿당을 비롯한 많은 굿당들이 포진되어 있다. 굿당이 이렇게 많은 것은 연천봉의 ‘도맥(道脈)’ 때문이라고 믿는 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산신제 절차는 먼저 공주향교의 산천제의(유가식 산신제례 및 유가식 수신제례)를 지내고, 다음으로 불가식 산신대제를 올린다. 이어 공주무속인연합의 법사들이 굿마당을 펼치며, 마지막으로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자체의 지역 산신제를 거행한다.

계룡산 산신제의 부대행사로는 부적 그리기, 사주 보기, 타로(프랑스어: Tarot) 점 봐주기 등이 진행된다. 또한 민화 및 무속화 전시, 풍장 놀이 및 전통 무예 공연, 그밖에 기수련 관련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 명성황후 추모제

②고종황제·명성황후 추모대재
제5회 대한제국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추모대재는 계룡산 신원사(주지 중하)주최로 매년 10월 초 신원사 중악단에서 개최한다.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은 신라시대부터 산신제를 지내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묘향산의 상악단, 지리산의 하악단과 함께 제사를 지낸 곳이다. 

명성황후는 조선 후기 대한제국의 황후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반대해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겪으며 청나라와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세력을 추방하려다 1895년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됐다.

명성황후는 생전인 1879년 계룡면 양화리에 위치한 신원사 내에 중악단을 다시 건립하고 구국과 국태민안을 염원하는 제를 계룡산 산신에게 세 차례에 걸쳐 올리기 위해 이곳에 기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명성화우추모제는 명성황후의 구국정신을 기리고 넋을 기리기위한 것으로 올해 5회쨰를 맞았다.

▲ 괴목제

③갑사 괴목제
중장리 갑사 괴목대신제는 갑사 입구에 있는 1,600년이 넘는 나무에 제를 올리는 행사이다. 갑사의 창건과 역사를 같이 한 이 괴목은 임진왜란 때에는 영규대사와 많은 승병들이 모여, 그 그늘 밑에서 작전을 세우기도 한 호국불교를 증거하는 신수(神樹)이다. 괴목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300여 년 전 갑사의 장명등 기름이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를 이상이 여긴 스님들은 밤에 장명등 기름이 없어지는 이유를 밝히고자 몰래 장명등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밤 덩치가 큰 누군가가 기름을 훔쳐가는 것이었다. 놀란 스님들이 따라가보니 바로 괴목의 당산신이었다.

기름을 훔쳐간 연유를 묻자 당산신은 사람들이 담뱃불로 나무의 뿌리에 상처를 내었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갑사의 장명등 기름을 가져가 발랐다는 것이다. 연유를 알게 된 스님들은 마을 사람들과 괴목의 주위를 잘 정리하였다. 그 후 갑사의 장명등 기름은 없어지지 않았고, 마을에 돌았던 역병도 없어져 스님과 마을 주민들은 괴목의 당산신에게 매년 정월 초사흗날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중장리 갑사 괴목대신제는 갑사와 사하촌 주민들이 주관하는 전통 민속제로, 300여 년 동안 전통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6·25전쟁의 영향으로 1960년대부터 1992까지 33년간 동네 주민들에 의해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규모가 축소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승려 장곡이 갑사의 주지로 온 뒤 마을 주민들과 갑사,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행사를 치르면서,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축제로 복원되었다. 지금은 나라와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괴목제를 지내고 있다.

갑사 입구 괴목 앞에서 승려와 신도, 사하촌인 중장리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낮 12시경에 당산제인 괴목대신제를 시작한다. ‘괴목대신(槐木大神)’이라고 새겨진 비석과 반듯한 제단에 향로가 놓여 있다. 괴목대신제가 끝난 다음에는 교통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노신제를 지낸고 마을 입구에 마련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장승제로 이어진다.

중장리 갑사 괴목대신제의 전야제 행사로 복토, 지신밟기, 금줄매기행사를 한다. 당일에는 제사 의식을 끝낸 뒤 참가자와 함께 민속놀이 및 문화공연을 한다. 길놀이, 사물놀이, 윷놀이, 살풀이 공연, 투호놀이뿐 아니라 주민 노래자랑도 열어 모든 주민들이 화합하는 장이 되고 있다.

해마다 진행되는 중장리 갑사 괴목대신제는 승(僧)과 속(俗)의 화합, 불교와 민강신앙의 융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영규대사 추모제

④영규대사대제
2000년 11월 5일 갑사 표충원에서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승병 800명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마친 승장 영규대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대제(大祭)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하여 매년 시행되고 있다. 1594년 열반 이후 408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제1회 영규대사 대제에는 육·해·공군 승단(단장 김말환 법사)의 주관으로 봉행되었다.

매년 영규대사 대제에는 부대행사가 조금씩 달라진다. 산사음악회, 시화전시회, 나눔의 장터, 자연사랑 환경사진 전시회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 상신리 장승

⑤상신리 산신제와 거리제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서 치러지는 산신제는 일 년에 2회로, 정월 초이틀과 시월 초사흘에 치러지며, 거리제는 일 년에 1회, 정월 열 나흗날에 치러진다. 상신리는 토질이 척박하고 지형이 험한 자연촌락이어서 예전부터 밭농사에 의존하여 온 곳이다. 그러한 생활환경은 평야 지역과 달리 민속 문화 자료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전승할 수 있게 해주었다.

상신리 산신제는 봄과 가을에 제를 올린다 하여 춘추산제(春秋山祭)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마을 제의가 그렇듯이 상신리의 산신제도 금기가 많고, 제의도 유난히 정성을 다해 치러진다. 혹시 제의에 소홀히 하게 되면 마을에 재앙과 불운이 온다고 믿기 때문에, 제례에 대한 금기가 엄격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다.
상신리 거리제는 공주 지역의 다른 거리제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특성이 있다.

상신리 산신제의 축관 선출에 있어 과거에는 마을 서당 훈장이 글 잘 읽고 효성스런 학동을 천거했다는데, 지금은 마을의 장로(長老)가 직접 맡는다고 한다. 산신제의 제의 절차는 유교식과 불교식의 절충으로 예전에는 200배씩 다섯 차례쯤 절을 하면 첫 닭이 울고 제의를 마쳤다고 하는데, 지금은 저녁 6시경 산신당에 올라가 밤 12시경에 내려온다고 한다.

산신당은 마을 앞쪽으로 오른쪽 산등성이에 있는데, 산신당 벽에는 산신이 호랑이를 데리고 있는 탱화가 걸려 있다. 이 산신도는 과거에 도둑을 맞아서 1990년대에 새로 사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산신당 내부 단은 철(凸)의 모양으로 꾸며져 있다. 마을 입구 좌우에는 장승과 선돌이 서 있다.

제일에 당주는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한 후 망건을 쓴다. 밥만 당주 집에서 짓고 나머지는 산신당에 가지고 올라간다. 이때, 나무꾼들은 미리 화목(火木)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다른 제사와 달리 산신제에는 4명의 제관 외에는 누구도 동행할 수 없으며, 더구나 여자는 제관에 선출될 수도 없다. 제관은 모두 깨끗한 옷을 입고 그 중 축관은 선비의 옷차림을 한다. 그것은 유교식 제례 영향 때문이다.

지금의 산신제 제물은 간소해졌다. 산신당 앞에 3계단에 모두 3개의 상을 차리고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제의 절차는 유교식과 불교식의 절충형으로 제일 당일 저녁 6시경 산신당에 올라가 12시경에 내려왔다고 한다.

음력 정월 14일이 되면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유사의 집에 모여 아침술을 들고는 길(吉)한 방위를 가려서 장승 감으로 쓰일 재목을 구하러 나서는데, 이때 풍물패가 풍물을 치며 뒤를 따른다. 좋은 방위에서 재목을 베어 마을로 나무를 옮겨 곧 장승을 깎기 시작한다. 장승은 한 해에 남·여 하나의 장승만 세우는데, 마을 어귀 산기슭에 밤이 되기 전에 세운다. 상신리의 장승 한 쌍의 교체는 번갈아가며 장승을 세우기 때문에 2년이 걸린다

▲ 하신리 산신제

⑥하신리 산신제
계룡산의 사대명찰 가운데 하나인 구룡사지(九龍寺址)에 위치한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는 100여 가구가 사는 규모가 잡힌 자연 촌락이다. 소작농이 대부분인데다가 척박한 토질, 불편한 교통으로 인해 가난한 마을이기도 하다.

경사진 산골이라서 자연히 논농사보다는 밭농사에 많이 의존하는 관계로 평야 지역과는 달리 독특한 민속 문화 자료가 아직껏 고스란히 보존·전승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산신제와 거리제이다.

산신제의 경우 계룡산 중턱에 산신당을 마련해 놓고 제사를 올리며 풍요와 건강, 행운을 기원한다. 하신리의 거리제는 다른 마을의 거리제와 마찬가지로 마을사람으로 구성된 농악대의 굿과 유교식의 제사가 융화된 모습을 보인다. 특히 풍물의 성격이 매우 강한 것이 특색이다. 거리굿은 동네의 무사태평과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며, 재앙과 질병을 퇴치하려는 목적이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행해진다.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 앞에 있는 계룡산을 올라가다 보면 산 중턱에 산신당이 나온다. 그 안에는 위패는 없지만 옛날 근엄한 장군들과 위엄 서린 산신의 그림이 있다.

보름날 자정이 되면서부터 유사 집은 제물 준비로 더욱 바빠진다. 새벽 2시에 이르면 굿물패가 하게 한다. 다른 지역에서 성주신(집터귀신)과 조왕신(부엌신)에게 공양 굿하는 것과는 달리, 샘굿을 하는 하신리의 독특한 점은 거리제의 이질적 요소라 하겠다.

샘굿을 할 때면 집안의 평안과 풍요로움을 빌어줬다는 수고한 굿물패에게 머릿돈 형식의 음식과 술상을 내준다. 샘굿이 큰 몫을 하는 이유는 마을 이름과 상통되는 것인데, 하신리는 유난히 물이 풍부하고 맑아 물의 혜택을 입은 수향(水鄕)이라서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샘굿을 모두 마치면 구룡사지 당간 지주에 가서 당간주 제사를 지내고 해뜨기 전에 장승제까지 마친다. 거리제의 노른자위인 당간주 제사에서 유사는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교식의 제사를 집행한다. 제상에는 부정 타지 말라고 하얀 종이를 꽂아 세운다. 유사가 축문을 읽으면 참석한 마을 사람(대부분 호주)들은 소지를 들어 올려 한 해의 무사태평과 소원을 빈다.

그러고 나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데 붉은 팥이나 콩이 박힌 시루떡을 먹으면 일 년 내내 고삭부리라도 잔병을 막는다고 믿어 한 조각씩 골고루 음복한다. 모든 거리굿을 마치면 거의 정월 보름날 아침이 되는데 이때서야 각각의 집에서는 집안의 조상께 제례를 올리게 된다. 산신제 때는 단술이 아닌 쓴술을 쓴다.

▲ 계룡산 봄꽃예술제

⑦계룡산벚꽃문화예술제
계룡산 동학사 지역번영회에서 매년 4월마다 열고 있는 봄꽃 축제이다.

1993년 4월 동학사봄꽃축제로 시작한 행사로 제1회 동학사봄꽃축제는 계룡산에 있는 박정자삼거리에서 동학사에 이르는 약 3㎞ 거리의 벚나무 가로수 길과 동학사 제3주차장 일대에서 문화·예술의 공연과 체험, 참여 프로그램으로 각종 행사와 공연들이 열렸다. 축제 기간 동안 분청사기 체험과 참여가 상설 행사로 진행되기도 하였다.

동학사봄꽃축제는 2007년 행사 명칭을 계룡산봄꽃문화예술제로 바꾸었으며, 행사 기간도 11일로 늘렸다. 행사도 산신제, 한국춤무리 공연, 이종철 화백 봄꽃제 퍼포먼스, 계룡산 굿제, 주민 화합 한마당, 공주시 충남연정국악원 공연, 밸리댄스, 통키타 공연, 섹소폰 공연, 스포츠 댄스, 오카리나 공연, 각설이 공연, 노래 자랑, 재즈 댄스, 풍물 놀이, 야회 음악회 등이 함께하는 민속과 예술이 접목된 축제로 거듭났다.

▲ 분청사기 축제

⑧계룡산분청사기축제
지역의 독자적인 문화예술 유산인 철화분청사기의 우수성을 알리고 계승시키기 위해 매년 10월 초 반포면 상신리 도예촌 일원에서 계룡산철화분청사기 축제가 개최된다.

제1회 행사는 500여 년 전 이름도 없이 흔적만 남긴 조선 도공의 넋을 기리는 선인 철화분청사기장 추모제를 시작으로, 한·일국제도자교류전, ‘계룡산의 도자 문화’에 관한 학술세미나, 한·일작가워크숍, 국내·외 도예작가전시회, 철화분청사기 그리기 행사, 물레 경연 대회 등이 동학사 일원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계룡산철화분청사기는 전남 강진의 청자, 경기도 이천의 백자에 비해  형태와 문양이 자유분방하고 서민적이면서 예술성이 뛰어나 ‘계룡산 분청’이라는 별칭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또 작가들의 작품 위주의 도자기 전시, 판매로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적인 생활용품으로의 개발로 관광객을 끌어들여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계룡산에서의 춤

⑨계룡산에서의 춤 
1996년 자연 속에 펼치는 춤판의 기획 공연으로 시작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무용 예술제이다. 매년 10월 셋째 주 주말에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동학사 일주문 앞에서 개최된다. 엄정자춤무리의 창작 한국무용을 비롯하여 해외무용가도 참여하여 다양한 발레, 현대 무용, 행위 무용 등의 공연이 펼쳐지며 매년 공연을 기록한 춤 사진 전시회도 부대행사로 펼쳐져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유기준(고마나루 2013.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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