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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탐방-일본 히에이잔과 엔랴쿠지
공주 제2의 세계유산 등재 운동 첫 걸음 6
2016년 11월 29일 (화) 05:37:58 신용희, 나정희 기자 s-yh50@hanmail.net

 

백제역사유적지구(공주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 부소산성과 관북리왕궁지,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고분군 익산 미를사지, 왕궁리유적)가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제38회 세계유산등재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결정됐다. 우리나라 12번째 세계유산이다.
계룡산은 금강과 더불어 충청남도의 영산(靈山)으로 공주시, 게룡시, 논산시, 대전 유성구에 걸쳐있는 명산이다. 계룡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①콘텐츠로의 계룡산 토론회 ②계룡산의 자연환경과 문화자원 ③계룡산의 종교와 문화재 ④계룡산의 축제와 문제점 ⑤주민활동 ⑥해외 세계유산(일본 히에이잔과 엔랴쿠지) 탐방 등이다.
이번 6번째 기획은 해외 세계유산(일본 히에이잔과 엔랴쿠지)을 탐방하여 세계유산에 등재된 과정과 자자체의 사후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그리고 주민들의 활동에 대해 취재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본 시가현 히에이잔(比叡山)은 계룡산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곳으로 수 백 년간 일본인들에게 신성시되어온 것과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것. 그리고 산의 높이(848m)가 계룡산(845m)과 비슷한 것 등이다. 또 일본의 3대 사찰 중 하나인 히에이잔 엔랴쿠지(延曆寺)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 외에도 신라 해상왕 장보고의 자료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불교와 연관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일정은 2016. 8. 26-29(3박4일)까지이고 취재에는 전문가 윤용혁(공주대) 교수와 기획취재로 신용희 기자와 나정희 기자가 통역 및 취재기자로 참여했다.
현지 취재에는 교토시 문화시민국  문화재보호과 마사키 니시모리(西森 正晃)문화재보호기사와 호리 다이스케(堀 大輔)씨의 설명을 들었으며 히에이잔에서는 엔랴쿠지 후쿠이치 코바야시(小林 福一)사무장의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를 받았다./편집자
-이 기사는 충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 기획기사입니다. -

   
히에이잔 전경 지도

Ⅴ 세계유산 탐방-일본 히에이잔과 엔랴쿠지

1.천년 고도 교토의 세계문화유산

일본 역사와 함께한 천년의 고도 교토는 모두 1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1.카미가모신사 賀茂別雷神社 (上賀茂神社)2.시모가모신사賀茂御祖神社(下鴨神社) 3.동사 教王護国(東寺)4.기요미즈데라(清水寺) 5.히에이잔 엔랴쿠지(比睿山 延暦寺) 6.다이고지(醍醐寺) 7.닌나지(仁和寺) 8.뵤도인(平等院) 9.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 10.고잔지(高山寺) 11.사이호우지(西芳寺) 12.텐류지(天龍寺) 13.킨카쿠지金閣寺)14.긴카쿠지(銀閣寺)15.료안지(龍安寺) 16.니시혼간지(西本願寺) 17.니죠죠(二条城) 이다.

교토에는 천여개의 신사(사찰)가 있다고 하는데 17건의 세계유산 중 15건이 신사(神社)이다. 이렇게 한 도시에서 17건의 세계유산을 갖고 있으니 교토 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 같다.

먼저 교토시 문화시민국  문화재보호과를 방문, 마사키 니시모리(西森 正晃)문화재보호기사와 호리 다이스케(堀 大輔)씨로부터 안내를 받고 인터뷰를  했다. 

△히에이잔과 엔랴쿠지의 특별성은 무엇입니까? 즉 어떤 점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교토는 모두 1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교토는 794년 수도를   옮겨왔고 천 년 간 일본의 수도였기 때문에 건물, 정원 등 신사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입니다.

△새로 등재를 준비하고 있는 유적이 있습니까?

-교토 17건의 세계유산은 1994년에 등재되었고 평성 1200주년 기념식에서 기타 세계유산 등재 언급이 있었습니다. 세계유산이 관심을 증폭시키면서 신사나 사찰 등에서 등재 요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름이 알려진 20건이 거론되긴 하나 이 중 4-5건으로 압축될 듯 합니다. 

△ 히에이잔과 엔랴쿠지가 3개 시(市)에 걸쳐있는데 관리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전체 관리체계는 따로 없고 각 시의 관리 체계로 운영합니다. 왕궁인 니조조(二条城)를 제외하면 종교단체에서 각각 별도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 보수를 할 때 비용은 어디서 부담합니까? 절에서? 아니면 시에서?

-사적, 명승 등 문화재는 정부의 보조금으로 관리합니다. 세계유산 등재 이전부터 50~80% 정부의 보조금과 종교단체의 지원을 받았는데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부터는 교토시에서 조금 지원을 해 줍니다.

△ 세계유산 등재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있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교토는 천 년동안 수도로써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세계유산에 등재 이 후의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유적은 기본적으로 국가사적으로 관리하고  지원을 받으니까요. 그리고 교토에는 세계유산 특별관리법은 제정하지 않았습니다.

△ 세계유산 등재 후 시민들의 재산 규제에 따른 보상제도는 어떻게 합니까?

-원래 사적으로 지정될때부터 규제 등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사적지가  대개 절이나 신사이기 때문에 교토시의 경우에는 규제가 필요없지요.

   
월별 관광객수 평준화 비교표


 △ 교토가 세계유산 등재 22년째인데 관람객은 증가했습니까?

-교토는 오래 전부터 전통의 도시이다보니 관람객은 그리 크게 증가한  편은 아니고 꾸준히 평균을 유지하는 편입니다. 1995년은 고베지진과 신종풀루로 일부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 입장료는 어떻게 쓰여지나요?

-사적지가 사찰 소유이기 때문에 입장료는 사찰에서 관리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사찰은 부자가 많습니다.

 △ 세계유산 등재 후 시민들의 활동상황은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세계유산을 포함한 사적지가 오랜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교토의 문화와 문화재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교토는  일본 정신문화의 본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 시민들의 문화유산에 갖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그래서 세계유산 관리는 사찰이 관리를 잘하고 있고 시민은 자부심을 갖고 조용하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토 교육청을 방문, 관계자와 인터뷰 장면.

2.히에이잔(比睿山)과 엔랴쿠지(延暦寺)

히에이잔은 일본 시가현 시와호 부근 교토 시내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 계룡산을 영산(靈山)으로 여기듯이 일본인도 히에이잔을 마음 의 고향 영산(靈山)으로 여기며 또 깊은 산속에 있는 엔랴쿠지(延0寺) 는 년 중 성지 순례하듯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히에이잔 엔랴쿠지는   1994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히에이잔에는 엔랴쿠지라는 당과 탑은 없다. 리플렛의 동탑(東塔), 서탑 (西塔), 광천(撗 川)은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확하게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있다는 뜻이다. 히에이잔은 그 자체가 엔랴쿠지이며 이 산의 자연,   불당 그리고 그곳의 수행자와 참배객 등이 한데 모여 하나의 승가를 구 현한다.

엔랴쿠지 경내에 최징의 불교철학인 ‘社會の一遇を照らす’ 글귀가 쓰여진  석조물을 보여주며 후쿠이치 코바야시(小林 福一)사무장은 “이것이 바로   최징 스님의 철학이며 세계유산도 결국은 한 작은 일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교토역 옥상에서 바라본 히에이잔 원경. 교토 시내를 감싸 안고 있다.

히에이잔 엔랴쿠지에는 일본 황실의 상징인 16잎의 국화 문양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설명에 따르면 “히에이잔은 일본 황실 모태의 산이기 때문 에 황실만이 사용하는 16잎의 국화 문양을 엔랴쿠지에서는 사용할 수 있다”면서 16잎의 국화 문양이 그려진 찻잔에 커피를 내 주는 등 히에이잔 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다. 후쿠이치 사무국장은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하더니 입구에 걸린 일본 천황 부부와 아들 황태자 부부가 엔랴 쿠지를 방문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또 일반인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곤폰 츄도(根本中堂) 내부와 다이코도(大講堂) 내부의 최징, 성덕태자, 칸무천황의 초상화 촬영을 허락하는 배려를 해 주었다. 

   
곤폰츄도 내에 모셔진 칸무천황(좌)과 최징 스님(우)

계룡산이 한국의 영산(靈山)이며 히에이잔과 성격이 비슷하고 높이도 (히에이잔 848m, 계룡산 845m) 비슷하다고 하자 관심을 보이며 언제 한번  꼭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후쿠이치 사무국장은 일행에게 엔랴쿠지 종을 치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동종은 보기보다 꽤 무게가 나가 종을 치기가 버거웠지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에 일행은 한번씩 종을 울렸다. 일반인에게는 돈을 받고 종을 치게 한다는 얘기에 이곳에도 관광객을 유치하기위한 노하우가 도사리고 있었다.

엔랴쿠지 입구와 경내 곳곳에 ‘2016년부터 10년간 대보수를 한다’는 대자보를 붙였다. 보수에 10년이라... 물론 엔랴쿠지가 건물도 많고 넓지만 10년을 보수기간으로 계획공사하는 그들의 장기적인 안목과 느긋함이 부러웠다. 더구나 안내서에는 후원금(1구좌당 2만원)을 모집하는 우편엽서를 첨부하여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아이디어도 괜찮다.     
  

   
엔랴쿠지의 후쿠이치 사무국장

   
일본 국보로 지정된 곤폰츄도 전경

   
곤폰츄도 내부 회랑


3.전교대사 최징과 장보고

히에이잔 엔랴쿠지는 일본 불교의 모태산으로 일본 천태종의 본산이자 토   착화된 일본 불교의 요람이다. 덴교대사 사이초가 산 위에 초암을 지은 이래 많은 고승을 배출해온 사찰로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엔랴쿠지는 최징(崔澄)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개창한 천태종의 본산으로 공해의 동사(東寺)와 함께 헤이안시대 일본 불교의 상징이다. 

최징은 22세 때인 788년 히에이잔 산속에 작은 암자를 짓고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일승지관원(一乘止觀院)이라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엔랴쿠지의 핵심건물인 국보 근본중당(根本中堂)의 시원이다. 그리고 불상 앞에 기름등잔을 놓고 등불을 밝혔는데 이 등불은 1200년간 꺼지지않고 이어져와 ‘불멸의 법등’이라 불린다.

   
곤폰츄도 내의 불멸의 법등. 1200년간 꺼지지않고 이어졌다고 한다.


최징은 전교대사 칭호를 받을만큼 교육자로서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그래서 엔랴쿠지에서 일본 불교의 중요한 종파를 개창한 고승들이 많이 배출됐다.

엔랴쿠지에서 우리가 꼭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신라 해상왕 장보고 유적이 있다는 점이다. 최징스님의 제자 엔닌스님은 838년 견당사 일원으로  당나라에 갔다가 장보고가 창건한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에 묵었다.

장보고를 흠모한 엔닌은 장보고에게 서신을 보내 신라인의 도움으로 오대산을 거쳐 장안에 이르는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 10년의 순레를 기록하여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남겼다. 그런 인연으로 엔닌 스님은 장보고 의 신세를 잊지 않고 적산법화원의 신라명신(新羅明神)을 일본으로 모셔왔다.

엔랴쿠지 서쪽 5분 거리에는 2001년 12월에 전남 완도군(청해진)이 해 양수산부,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사)장보고연구회, 장보고해양사 연구회, 일본 엔랴쿠지 등의 후원으로 건립한 장보고비가 우뚝 서 있어  일본에서의 장보고를 보는 감정은 또 다른 의미를 가져왔다.

   
엔랴쿠지 경내의 장보고비. 완도군에서 여러단체와 협력해서 세웠다.

4. 세키잔젠인(赤山禪院)

888년에 천태종의 종정(엔랴쿠지의 주지)안네가 지카쿠대사 엔닌의 유언에 의해 창건한 천태종의 사원이다. 교토 동북쪽에 적산선원(赤山禪院)에는 장보고의 흔적을 곳곳에 볼 수 있었다.

본존의 세키잔 묘진은 지카쿠대사가 중국의 세키잔에 있는 태사부군(음명도 조상신)을 권청한 것으로 신체는 비사문천과 닮은 장군을 본뜬 모습으 로서 연명부귀의 신으로 알려진다. 고미즈노오 상황의 슈카쿠인 별궁 행차시에는 상황으로부터 신전의 수리 및 세키잔 다이묘진의 칙액을 하사받았다.

   
적산선원 가는 길. 마을 뒤 안개낀 히에이잔의 광경이 보인다.

   
적산선원 정문.

이곳은 교토의 동북쪽 표귀문에 해당한다 하여 방제신으로서 사람들부터 숭앙을 받고 있다. 또한 세키잔 묘진의 제사 일에 해당하는 5일에 이곳에  참배한 뒤 수금을 돌면 수금이 잘 된다고 하여 상인들의 신앙도 두터워 이로 인해 ‘5일 지불’이라는 상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한적한 이곳에는 소나무   와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에는 단풍의 명소로서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도리이 현판에 적산대명신이라 쓴 명문이 보인다. 엔닌스님이 장보고를 기리기위해 당나라 적산법화원에서 모셔왔다고 한다. 

5. 사회의 한 구석을 비추다- 최징 화두

교토 지하철역을 가다가 최징의 불교철학이 담긴 글귀가 보였는데 일본 기업체에서는 ‘社會の一遇を照らす’라 쓴 광고문구가 눈에 띈다. 나정희 기자에게 통역을 부탁하니 안전(세큐리티) 그룹의 모집 광고인데 “사회의 한 구석을 비추다.(社會の一遇を照らす)

어디서든 자기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사람이 바로 사회의 한  구석을 밝히는 것이고, 그런 것이 이어져서 어두운 이 사회가 밝아지는  것입니다”라고 일러준다.

작은 한 사람이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 뜻이다.이것은 엔랴쿠지 최징 스님의 화두라고 후쿠이치 코바야시 사무국장은   열심히 설명해 주었었다. 일본의 기업체에서 사원 모집 광고에 번듯하고 그럴싸하게 젊은이를 유혹하는 문구가 아닌 ‘작은 구석을 비추라’는 문 구로 사원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또 엔랴쿠지 경내의 ‘제44회 全國學生比睿山競書大會’ 홍보 포스터에도 ‘一遇を照らす’ 주제가 보였다.   이것이 일본의 힘이 아닐런지!    

   
'사회의 한 구석을 비추다' 엔랴쿠지 창건한 최징의 불교철학 화두이다.

6. 엔랴쿠지의 주요 문화유산

①곤폰츄도(根本中堂) – 국보
히에이잔 제일의 불당으로 천태종의 창시자인 덴교대사(최징)가 엔랴쿠 7년(7880에 이치죠시칸인으로 창건한 것이 유래이다. 본존불에는 덴교대사가 직접 만들엇다고 전해지는 비불약사여래가 모셔져 있고 보물전에는 창건 이래의 ‘후메츠노호토(불멸의 불등)’가 1200년의 시간을 넘어 빛을 발하고 있다.

②샤카도 - 중요문화재
샤이토의 중심으로 정식 명칭은 ‘덴포린도’라고 한다. 현재 건물은 오다 노부나가의 히에이잔 화공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온죠지의 미로쿠도를 옮겨 수리한 것으로 산 위의 건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었다. 본존불은 덴교대사의 작품인 석가여래입상으로 불당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엔랴쿠지 다이코도 전경


③다이코도(大講堂) - 중요문화재  
제1세 천태종의 종정 기신(義真)스님이 건립한 것으로 승려가 학문 연찬을 위해 논의하는 도량이다. 특히 지에 대사(慈恵大師)가 수련을 시작한 이래 매 5년마다 행해지는 히에이잔의 오래된 의식인「법화 대회 고가쿠류기(広学竪義 선문답)」는 어엿한 천태승이 되기 위한 중요한 의식, 계제로서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쇼와 31(1936)년 옛 건물이 소실된 후 산록 사카모토(山麓 坂本)에 있던 것을 이축한 것으로 당내에는 히에이잔에서 수행한 각 종파 개조의 존상이 안치되어 있다.

④가이단인-중요문화재 
828년에 창건하였으며 본존불로는 석가모니여래가 모셔졌다. 천태종의 승려가 수계하는 중요한 불당.

⑤니나이도- 중요문화재  
홋케도, 조교도라는 동일한 형태의 두 불당이 복도를 통해 이어져 속칭 ‘벤케이도 니나노’라고 불린다. 뻐화와 염불은 일체라는 엔라쿠지의 가르침을 건물로 표현하고 있다.

   
히에이잔을 오르는 케이블카. 조선인 노동자의 부역이 담겨져 있다.

7.히에이잔과 사카모토 케이불카
히에이잔을 가기 위해서는 사카모토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가야 한다.   1927년에 개업한 일본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는 엔랴쿠지역까지 11분만에 연결해 준다. 히에이잔은 높이가 848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경사가 심하고 길이 험준하여 일찍이 케이블카를 설치했다.

올라가는 동안 양쪽의 깊은 삼나무 숲은 신비한 기운을 느끼게 하였다. 히에이잔역에서  비와호의 드넓은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은 또 하나의 보너스였다. 

히에이잔역 건물은 ‘경관중요건조물 제 6호’로 지정돼 있다.  히에이잔 케이블카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온 것은 우연이 아 닌 필연이라고 여기고 싶다.

교토에 간 김에 고려미술관에 가보자고 윤용혁 교수의 권고로 일행은 미술관에 갔다 우연히 ‘교토와 한국의 교류역사’ 책을 넘기다가 히에이잔 케이블카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케이블카 공사에 조선인 노동자가 대거 끌려와 험난한 공사에 부역했다는 내용이 실린 것이다. 시인 정지용의 얘기도 있어 길지 않아 여기에 전문을 소개한다.

Ⅱ-9 히에이잔 케이블공사와 조선인 노동자

히에이잔 산 정상에 가기 위해서 현재는 드라이브웨이를 많이 이용합니다만. 전쟁 전에는 라쿠호쿠(교토 북쪽을 가리키는 말)의 야세부터 케이블카와 로프웨이를 이용했습니다. 이 케이블카(현재는 케이후쿠 전철 에이잔케이블카)가 만들어진  것은 1925년 경 입니다.  

케이블 아래에 있는 야세역과 케이블 위에 있는 히에이역의 고저차는 561m 이며  이것은 일본 최대의 고저차입니다. 이 험난한 산의 경사면에 케이블카 노선을 놓는 것은 상당히 험난한 공사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 시인을 대표하는 정지용은 그 당시 동지사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 어느 날 타카노가와(강)를 따라서 상류까지 산책했다고 합니다.  야세마을까지 걸어서 간 그는 케이블카의 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조선인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살던 판잣집이 있었고 정지용이 조선인 유학생인 사실을 안 부인들은 식사를 하고 가라고 계속 권했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은 조선남부의 방언을 이야기하고 지방의 민요를 노래하는 등 민속적인 색채가 깊은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정지용은 그때 상황을 기록했습니다. 

울퉁불퉁한 산 경사면에 돌을 쌓아 올려서 다리 모양으로 한 곳에 케이블카 노선을 놓는 공사를 했습니다만 돌을 자르는 일은 중국인 노동자가 했습니다. 조선인 노동자의 일은 공사에 필요한 재료를 짊어지고 급한 경사를 오르거나 노선을 놓기 위해서 깎은 바위랑 흙을 옮기거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케이블카가 완성된 후 더욱 더 그 위에 로프웨이공사(1928년 개통, 현재의 로프웨이와는 다른 위치에 있었음)와 엔랴쿠지전철의 노선을 쿠라마까지 연장하는 공사(1929년 개통)에도 조선인 노동자가 일을 했습니다. 

이와같이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야세와 구라마, 키부네가 관광지로서 개방되었습니다만 그것은 조선인 노동자의 힘에 의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미즈노  나오키)

글을 쓴 사람은 ‘미즈노 나오키’로 일본인인 것 같은데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히에이잔의 세계유산 등재에는 우리 조선인 노동자들의 숨은 공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함 보다는 한편 가슴이 아린 것은 동족의 정이 아니랴!

윤용혁 교수는 “일본 역사와 함께한 천년의 고도 일본 교토(京都)는 아스카(飛鳥)시대와 나라(奈良)시대를 거치면서 중국과 한반도의 백제, 신라로부터 문물을 도입, 고대 일본의 토대를 쌓았다. 칸무(桓武)천황이 794년 지금의 교토로 수도를 옮기면서 교토의 헤이조코(平城京)를 중심으로 한 헤이안(平安)시대를 열게 되었다”고 교토의 천 년 수도 역사를 설명하며 “1868년 도쿄(東京)에 수도를 내어주기까지 천 년 간 수도 역할을 해 온 교토는 일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왕궁, 사찰 등과 함께 일본 전통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17건의 세계유산 등재가 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히에이잔 엔랴쿠지는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일본인들에게 정신적 터전인 곳으로 이번 답사로 히에이잔의 일본 불교에서의 영향력을 다시 조명하게 되었다”며 “우리의 계룡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계룡산이 갖고 있는 특별성과 진정성, 그리고 다양한 종교의 차별성까지 심층적인 정리를 해야 한다”면서 지자체의 행정적 지원과 함께 주민추진협의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신용희 기자 s-yh50@hanmail.net
나정희 기저 3777@k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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