累卵(누란)

계란을 쌓는다는 뜻으로 이루기도 어렵거니와 위험스럽기 이를 데 없음을 일컫는다. 누안지세(累卵之勢), 누란지위(累卵之危)라고도 한다. [사기 범수전 史記 笵睢傳]

범수(笵睢)는 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 출신이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객경(客卿 타국 출신으로 경이 된 사람)이 되었다가 수상이 되어 부국강병책과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이웃 나라를 잠식, 병탄하여 진나라를 최강국으로 이끈 인물이다.

범수가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탈출하여 객경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범수는 본래 위나라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문객(門客 세력 있는 집에 머물면서 밥을 얻어먹고 지내는 사람)이었다.

수가가 제(齊)나라에 사절로 갈 때 범수는 보좌역으로 따라갔다. 제나라 양왕(襄王)은 범수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고 황금 열 근을 내려줬다. 범수는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그런 위나라로 돌아온 범수에게는 질곡(桎梏 고통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나라에 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였다. 범수는 재상 위제(魏齊)에게 태형을 받아 갈빗대와 이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졸도했다.

위제는 범수를 거적에 둘둘 말아 변소에 처넣어 뭇사람의 오물세례를 받게 했다. 큰 인물에 대한 위제의 질투심이 범수에게 잔혹 행위를 하게 했던 것이다.

의식을 회복한 범수는 간수를 붙들고 억울한 사정을 말하고 뒷날 틀림없이 보답하겠으니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간수는 범수를 죽은 것으로 보고하고 도망치도록 해주었다. 범수는 친구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숨어서 장록(張祿)이란 이름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때 진나라 외교사절로 왕계(王稽)란 사람이 위나라에 왔다. 범수는 정안평의 도움으로 왕계를 만날 수 있었다. 밤새 이야기하는 사이, 왕계는 장록의 웅변과 원대한 포부에 매료되었다. 왕계는 내심 그 인물됨으로 보아 소문에 듣던 범수가 아닌가 생각하고 은근히 진나라로 같이 갈 것을 종용했다.

범수는 그제야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으며 통행이 자유롭지 못함을 이야기 했다. 왕계는 크게 반기며 “선생을 제사 모시고 가겠으니 걱정 마십시오. 다만 교외까지만 비밀리에 나와 주십시오.”

범수는 이렇게 해서 출생지 위나라를 벗어나 무사히 진나라로 갈 수 있었다. 왕계는 소왕에게 위나라와의 외교 사무를 보고하고 장록 선생은 세상에 드문 인물이며 위나라에서 박해를 받고 있었으므로 모시고 왔다고 했다.

“장록이 진나라 장래를 점치기를 ‘진나라는 국내적으로나 국외적으로 계란을 쌓은 것(累卵)처럼 위험을 안고 있다. 국정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그 방책을 글로 대왕께 아뢸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하기에 데리고 왔습니다.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소왕은 왕계의 말을 믿지 않았고 범수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다가 1년여 만에 범수를 만나보고 객경에 임명했다. 드디어 기회를 잡은 범수는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그 능력을 인정한 소왕은 범수를 수상으로 임명함으로써 진나라는 천하 최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출판사 다할미디어 (02)517-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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