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청송의 주왕산과 주산지를 둘러보고 백암온천에서 잠을 잤다. 오늘은 오후 4시 공주대학교 문화유산대학원 수업 때문에 공주로 가야 한다.

아침 일찍 해장국을 먹고 울진 평해 시외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시골 버스 정거장, 페인트도 벗겨지고 안내판도 찢어진 시외버스 정거장이 초라해서 더 서글프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사람도 없는 대합실로 들어갔다. 딱딱하고 뻣뻣한 플라스틱 의자가 추워 보인다.

“대구행 버스가 몇 시에 있죠?”
“9시 30분인데요”
“대구 한 장 주세요.” 신용카드를 들이 밀었다.
“카드 안 받는대요. 현금 주이소.”
“네? 카드가 안 된다구요?”

아니 버스터미널이 구멍가게도 아닌데 카드 계산이 안 된다고? 할 수 없이 현금 2만원을 내고 3,100원을 거슬러 받았다. 대구 까지 16,900원.

“대구까지 얼마나 걸리죠?”
“두 시간 20 분입니대이”

버스표를 챙겨 넣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난로 한 대 없이 썰렁하기만 하다.  9시 25분, 동대구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기사님, 대구에 몇 시쯤 도착합니까?”
“몰라요, 가봐야 알죠, 맥히면 늦고, 안 맥히면 빠르고…”
“아니 평상시에 얼마나 걸리느냐구요?”
“글쎄요, 서 너 시간은 잡아야죠.”

아니 뭐야, 두 시간 반 후에는 동대구역에서 12시 18분 대전행 무궁화를 타야하는데 정거장 벽 시간표에는 ‘대구행 준 무정차 삼율-영덕-포항-대구, 2시간 20분’이라고 적어놓고, 막상 운전기사는 서너 시간 걸린다니 2시간 20분은 뭐고 서너 시간은 뭐냐?

누구의 말이 맞는 건가? 어째서 지들 맘대로 말하는 것이냐 짜증이 난다. 공주대학교에 4시까지 도착하려면 동대구역에서 12시 경에는 기차를 타야하는데…영덕 정거장에서 할머니가 올라왔다.

“기사 양반, 이 차가 대구에 몇 시에 닿능교?”
“모릅니더, 가봐야 압니더”
“아이라 우리 며늘아가 나올라캤는데 알카줘야죠”
“으흐 큰일이네, 가봐야 아는데, 고만, 11시 50분이라 카이소”
“미리 나왔다가 늦으면 추울 텐데.”
“추우면 어떠능교, 기다리뿌면 되지”

옆자리에 듣고 있던 아주머니가 거든다.

“으흐 며늘아가 다 나온다카고, 참 착하네”
운전기사, “며늘아가 할무이 기다리능교? 짐 기다리지”

아니 저놈의 운전기사, 뭘 알고 하는 말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몰라요, 가봐야 압니대이,’ 맨날 다니는 길도 모른다고 하는 놈이 본 적도 없는 남의 며느리 속마음은 우째 아는지 참 요상 시럽다.

할머니가 며늘아가 한테 전화를 하신다.

“응 나다, 12시 경에 갈끼다. 오야. 그때 보자. 그래. 알았구마”
운전기사가 또 끼어든다. “난 모릅니대이, 난 바쁜 거 없으이 천천히 갈랍니대이”
아까 그 아주머니도 거든다. “나도 바쁜 거 없으이 오늘 중으로만 가면 됩니대이”

이 사람들 아주 쌍으로 웃기고 있네, 할무이와 내 속 타는 줄도 모르고…
“딩동, 이번 정거장은 강구입니다. 다음 정거장은 용계입니다.”

이 놈의 시외버스 정말 성질난다. 운전기사와 한 통속이 되어서 남 속 태우려고 작정을 했는지 동네방네 다 찾아다닌다.

평해 정거장에서 본 ‘대구행 준 무정차 삼율-영덕-포항-대구’ 안내판을 박박 찢어버리고 올걸. 삼율-영덕-포항-대구 네 군데만 서고 막 달리나보다 라고 좋아했는데 동네 강아지처럼 이 집 저 집 다 찾아다니니 이게 무슨 심술이란 말이냐?

50대 아주머니가 전화를 한다.

“오야, 지금 내가 대구로 가거등, 근데 우리 딸아가 오늘 점심에 경찰 50명 밥을 맞찼다카대, 사람이 없다 니가 와서 좀 도와주라 으이? 그라고 나희 엄마도 연락해서 오라캐라. 알았지. 오야 이따 보자”

운전기사가 또 끼어든다. “서문시장에 불이 아직 안 꺼졌능가비네.”
뒤에 있는 아주머니 “왜 서문시장에 불났어요?”
“뉴스 안봤능교?, 600개 점포가 말캉 탔다 카대”
“아이고 우야노, 거는 3년 전에도 불나서 다 타 삤는데 왜 자꾸 불이 나노?”
“이불하고 옷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불이 쉽게 꺼지나 그거 다 탄다 다 타”
“손해가 3000억은 된다카던대. 대부분 보험도 안들었다카지?”
“아이고 우야노, 불은 나고, 장사는 못하고, 겨울은 더 추불텐데”.....
“아니 그럼 지금 딸네 집 식당에 밥해주러 가능교?”
“야, 기추하러 갈라꼬 나서는데 딸아가 빨리 오라고 전화했다 아잉교”
“뭐 할라꼬 출가외인 딸을 도와주능교?”
“사위도 도둑놈이다. 알바 쓰지, 왜 자꾸 친정 어무이를 부르는데?”
“누가 아이라캅니까, 뭐할라꼬 등골 빠지게 도와주능교?. 버르장머리만 나빠지니더, 그렇게 도와줘봐야 말캉 헛일입니대이”

버스 안은 무슨 토론장처럼 주고받고 묻고 답하고 쉴 새 없이 시끌벅적하다.

“할무이들, 건강이 최고라요. 새끼들한테 등골 빼주지 말고 건강 잘 챙기소. 그라고 뭐니뭐니해도 내 짝이 최고라요. 서로 할배 할매 잘 챙기소.”

이 버릇없는 운전기사 해도 해도 너무한다. 50대 정도 밖에 안 보이는 것이 70대 80대 어른들한테 목사님 설교하듯 계속 훈계를 하고 있다.

“아지매들 잘 몰라서 그렇지 지 얘기 좀 들어보이소. 돈 앞에 눈이 멀으면 아무것도 안보이능기라. 최순실도 그렇고 차은택도 그렇잖능교. 내가 14살에 집 나와서 이 고생 저 고생 다 해보고 환갑 진갑 지나보이까네 사람은 정신이 젤로 중요한기라요. 정신이 똑 발라야 제대로 하지 그만 돈에 눈이 멀면 헥까닥해서 다 망치능기라요.”

운전기사는 버스가 지놈 안방이라는 건지 애도 어른도 몰라보고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해대면서 떠들어댔다. 11시 50분, 대구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고 ‘동대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아니 그럼 이제 20분이면 갈 수 있겠다 싶어 또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님, 12시 18분 기차 탈 수 있겠죠?”
“모릅니다. 한참 가야하거등요. 그라고 동대구 역 옆에서 내린다캐도 한 참 뛰어가야 합니대이.”

빌어먹을 운전기사, 모르는 거 없이 죄다 안다고 떠들어 대는 놈이 왜 계속 모른다고만 하는 거야? 12시 3분 동대구역, 도로 공사가 한창인 큰 길 옆에서 내렸다. 15분 전이다. 배낭을 메고 달렸다.

바삐 뛰는 나에게 공사장 인부가 동대구 역 대합실 올라가는 비상통로를 가르쳐주었다. 삐거덕 거리는 비상 통로를 뛰어 빨리 올라갔다.

12시 10분, 매표소에 7명이 서 있다. 내 차례 “12시 18분 대전행 무궁화 한 장 주세요.” 무궁화 1352호-5호차 42번 통로석.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13번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12시 21분 동대구역을 출발했다. 그럼 대전 역에는 2시 19분이면 도착한다. 이제 공주대학교 문화유산대학원 4시 수업시간에 갈 수 있다. 아휴 숨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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