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오랑주르미술관, 파리

밝은 빛이 쏟아지는 둥근 방에 하얀색 천으로 가려서 살짝 빛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은은한 달빛이 비추는 것 같은 방이다. 벽면에는 빙 둘러서 그림이 걸려있고 가운데 놓여 있는 의자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있다.

마치 경건한 종교의식을 치르는 듯 조용히 그림을 응시하고 있다. 가끔 카메라 셔터 소리만이 그 고요함을 깨우고 현실 세계로 끄집어낸다. 여기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랑주르미술관.

바람이 불고 버드나무는 조용히 흔들리며 연못에 그림을 그린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 바람이 수면을 잔잔하게 어루만지고 연꽃이 물위를 수놓는다. 다리도 있고 꽃이 만발하다. 미술관 의자에 앉아 따뜻한 빛이 내리 쪼이는 정원, 풀 향기, 꽃향기를 코끝에 느낀다.

모네 가족이 소풍바구니를 들고 그곳을 지나가는 상상을 한다. 모네가 이젤을 펼치고 햇볕을 받으며 그림을 그린다. 웅덩이를 파서 연못을 만들고 꽃나무를 심고 정원을 돌보는 모네를 본다.

60초, 60분, 24시간, 모두가 규칙을 정하고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그 시간은 때때로 빠르고 또 느리다.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춘 듯이 느끼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낀다.

그림 그리는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에 몰입한 시간, 내 맘을 잘 이해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잠깐이었는데 벌써 몇 시간이 휙 지나갔다. 어린 시절에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골목길에 가득했다.

어두워지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뛰어 놀다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그 시간은 얼마나 짧고 아쉬웠던가. 어지럽고 불완전한 현실에서 불만을 해소하려고 도연명은 복숭아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을 만들어 냈고 우리도 이상향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림 몇 점을 팔고 기차로 지베르니를 지나던 모네에게 분홍색 집이 눈에 띄었다. 풍족하지 않은 생활에 대가족이 살기에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 모네는 지베르니에 분홍색 집으로 이사한다. 그리고 정원을 가꾸며 그곳 풍경을 그린다. 지베르니는 모네의 무릉도원이었다.

다시 찾은 수련이 있는 방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유난히 검은 머리인 조율사가 열심히 피아노 조율중이다. 그 소리마저 아름답게 들린다. 조율을 끝내고 한곡 멋있게 연주한다.

곡이름은 모르겠는데 수련그림과 피아노 소리가 어울려 더 강한 인상이다. 지베르니에 있는 환상을 본다. 이제 문 닫을 시간이라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다.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

*안혜경 화가는 현재 프랑스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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