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폭십한(一暴十寒)

하루 따뜻하고 열흘 춥다는 뜻으로 환경이 좋아야 도약할 수 있음을 일컫는다. [맹자 고자 상 孟子 告子 上]

양심의 양(良)자는 ‘본래’라는 뜻이요, ‘어질다’의 뜻이 아니다. 양지(良知), 양능(良能)이란 말도 태어나면서 알고 행동하는 본능을 뜻한다.

양심이란 곧 인간 본연의 마음이며, 선(善)이며 인의지심(仁義之心)인 것이다. 양심을 가장 강조한 분은 맹자(孟子)이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義)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고 마음을 접어두고 찾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사람들은 기르는 개가 나가면 찾으려 하면서 그 마음은 접어두고 찾지 않으려 한다. 학문의 길이란 바로 이 접어둔 마음을 되찾는 일이다.”

맹자는 또 양심을 산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산(牛山)은 제(齊)나라 수도 동남쪽에 있는 아름다운 산이었다. 대도시 근교에 자리하고 있어 도끼와 톱이 날로 찾아들었다. 울창한 수목이 베어지면서 아름다움은 유지될 수 없었다. 그러나 산은 밤낮으로 끊임없이 초목을 자랄 수 있게 하고 비와 이슬의 혜택도 변함없이 받을 수 있어 산에는 새싹이 나고 움이 돋아났다. 하지만 이 여린 싹을 소와 양이 뒤쫓아 다니며 잘라 먹었다. 그래서 변함없는 벌거숭이산이 되었다. 사람들은 저 벌거숭이산을 보고 본래부터 아름다운 수목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어찌 저 산의 본상이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어찌 양심이 없으랴마는 그 양심을 접어주면 도끼와 톱으로 수목을 베는 것과 같아 양심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밤낮으로 양심은 솟아나고 맑은 기운은 감돌지만 마음 씀이 남들과 같지 않음은 그가 낮 동안에 저지르는 행위가 양심을 속박하여 가능성을 소명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밤낮으로 소생하려는 양심이 존재할 수 없어 마침내 짐승의 마음에 가까워진다. 사람들은 그 짐승의 마음을 보고 그 사람은 본래 그런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상이겠는가? 배양하면 자라지 않는 생물이 없고 방치하면 소멸되지 않는 물건이 없다. 그러므로 공자(孔子)는 ‘잡으면 존재하고 놓으면 잃고 만다. 때 없이 드나들고 향하는 곳을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이다.’라고 했다.”

요컨대 양심이 물욕에 가려짐으로서 인간본연의 선을 잊어 약하게 되는 것이지 악인에게 인간본연의 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며 군왕들에게 양심에 의한 정치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군왕들은 이익의 추구만을 앞세우는 부국강병(富國强兵)과 병탄책(倂呑策)에만 과심을 기울였다. 맹자는 자신의 노력이 무위(無爲), 도로(徒勞)에 그치자 고향에서 후진양성에 전력했다.

맹자는 제자들에게 왕의 무지(無知)만을 탓하지 말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록 천하에 쉽게 자랄 수 있는 식물이라 하더라도 하루 따뜻하고 열흘 추우면(一日暴之 一日寒之 )성장하지 못한다. 나의 만남은 군왕이 나를 만나는 시간은 드물고 춥게 하는 자들만을 가까이 하고 있으니 내 아무리 싹(良心)을 틔우려 한들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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