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고(泣辜)

어여뻐 여긴다는 뜻으로 죄지은 자를 불쌍히 여김을 일컫는다.
[삼국사기 三國史記 권 6]

신라 제30대 문무왕 법민(法敏)의 아버지는 태종 무열왕 김춘추(金春秋)요, 어머니 문명왕후(文明王后)는 삼국 통일의 대업을 도운 명장 김유신(金庾信)의 막내 누이 문희(文姬)이다. 문희는 오라버니 김유신 못지않게 지혜로웠다.

어느 날 문희의 언니 보희(寶姬)가 꿈을 꾸었다. 서형산(西兄山)에 올라 소피를 보는데 오줌이 흘러 온 장안을 흠뻑 적시는 것이었다. 보희는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문희는 슬기로운 눈을 깜박이며 언니에게 그 꿈을 팔 것을 제의했다. 보희는 별 생각 없이 문희에게 비단 바지 한 벌을 받고 꿈을 팔았다.

며칠 뒤 김유신이 김춘추와 축국(蹴鞠)이란 경기를 하다가 김춘추의 옷을 밟아 바지 말기가 뜯겨졌다. 김유신은 뜯겨진 바지를 꿰매자며 김춘추를 집으로 데려갔다.

김유신은 뜯겨진 김춘추의 바지를 꿰매게 하려고 보희를 찾았으나 보희는 외출하여 없고 막내 누이 문희만 있었다. 그래서 문희가 불려나와 김춘추의 바지를 꿰맸다. 둘은 결혼했다. 언니의 꿈을 사들인지 며칠 만에 문희에게 국모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신라 문무왕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650년(진덕여왕)에는 당(唐)나라에게 대부경(大府卿)의 벼슬을 받았고 654년(무열왕 원년)에는 파진찬(波珍湌)으로 병부령(兵部令)이 되었으며 다음해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660년(무열왕 7)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이 백제를 공략할 때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군사 5만을 이끌고 백제를 무너뜨렸으며 무열왕이 갑자기 승하하자 661년 왕위에 올랐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의 유업을 받들어 즉위 이듬해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 정복에 나섰다. 방효태(龐孝泰)가 거느린 당나라 군대가 고구려 군에게 전멸됨으로써 제1차 고구려 정벌은 실패로 돌아갔다. 문무왕은 장군 복신(福信), 도침(道琛) 등이 백제 왕자 부여픙(扶餘豊)을 왕으로 삼고 벌인 백제부흥 운동을 진압했다.

668년(문무왕 8)왕의 아우 김인문(金仁問)과 요동행군대총관(遼東行軍大摠管)이적(李勣)이 거느린 나당연합군을 동원하여 다시 고구려를 공격하여 멸망시킴으로써 일단 삼국 통일을 이룩했다. 그러나 당나라는 백제, 고구려를 정벌한 땅에 도호부(都護府)를 설치하고 자국의 영토로 통치하려 했다.

문무왕은 강력히 저항하여 마침내 당나라 군대를 북쪽으로 몰아내고 한반도 통일의 성업을 당성 할 수 있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문무왕은 9년 2월 21일 신하들을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지난 날 우리 신라는 두 나라를 사이에 두고 북으로 고구려를 정벌하고 서쪽으로 백제를 공략하느라 잠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전사들은 황야에 백골을 드러냈고 머리와 몸은 속을 달리했다. 선왕(先王 무열왕)께서 백성들의 피폐(疲廢)를 안타깝게 여기서 군왕의 고귀한 몸으로 당나라 원병을 위해 거듭 바다를 건너셨다. 이어 양국을 평정하여 길이 이 땅에서 전쟁을 없애고 여러 대에 걸친 깊은 원한을 씻고 백성의 잔명(殘命)을 안전케 하려 하셨다. 그러나 백제는 평정하셨으나 고구려는 멸하지 못하셨다. 과인이 이 유업을 이어 마침내 이룩하게 되었다. 지금 두 적은 평정이 되고 사방이 안정되었다. 싸움터에서 공을 세운 자에게는 상이 내려졌고 전사자에게는 진혼(鎭魂)의 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감옥 안의 죄인(辜)을 불쌍히(泣)여기는 은택이 미치지 못하여 질곡(桎梏)의 고통에서 경신(更新)의 기회를 주지 못했다. 이를 생각하면 잠자리가 편치 않다. 오역(五逆 임금·부모·조부모를 죽인 행위)을 범한 중죄인을 제외하고 수감자 전원에게 석방의 은전을 베풀도록 하라.”

하고 문무왕은 대사령을 내렸다. 21년 7월 1일 문무왕이 서거하자 유언에 따라 동해의 구대석(口大石) 위에 장사 지냈다. 속전(俗傳)에는 왕이 용으로 변했다 하여 그 바위를 대왕암(大王岩)이라 했다.

‘읍고(泣辜)’는 문무왕 교지(敎旨)에 나오는 한 구절이기는 하나 본래는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우왕이 외출하다가 죄인을 만나 그 죄상을 물어보고 울었다(禹出見辜人 問而泣之)’라고 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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