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5개국 수도원을 찾아서 떠난 여행

1. 여행을 시작하며

이번 수도원 기행에 동참을 하게 된 동기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침묵으로의 여행(진동선, 문예중앙, 2012년)’의 겉표지 사진 때문이다. 이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숨이 탁 막혔던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강렬한 흑과 백의 조화, 짙은 다크니스(darkness)에 강렬하게 솟구치는 화이트(white) 색의 칼라(collar), 이 강렬함에서 베어나는 범접하지 못할 신성(神聖)...

▲ 수녀복, 뭐스테어, 스위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수도원 기행’은 뿌리칠 수 없었고 꼭 가보고 싶었다. 과연 무신론자인 내게 중세시대부터 내려오는 수도원의 깊은 어둠과 고요와 신성을 보여줄까? 또 사진으로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까? 아니면 그 어떤 또 다른 신성이 내게 다가올까? 하는 기대를 하며 2017년 5월 24일부터 7박 9일 일정으로 여행은 시작되었다.

2. 꼬모(Como) 대성당

서울에서 장장 11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이태리 밀라노(Milano)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21시, 첫 숙박지인 꼬모에 있는 호텔로 향한다.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의 아름다운 노을이 이번 여행이 어떨지 예감하게 한다.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이태리의 짠 피자와 진한 맥주로 유럽에 와 있음을 만끽한다.

사진가로서 사진 여행의 별미는 공식 일정 이후인 야간 촬영과 새벽촬영이다. 장시간 비행으로 몸은 무거웠지만 어찌 야간 촬영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진한 맥주로 피로를 달랜 후 야간 촬영을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서 야간 촬영은 종료 되었다. 내일을 위해서 취침을 하라고, 카메라 건전지가 방전되었기 때문이다. 내일 새벽 촬영을 기약하고 잠자리에 든다.

▲ 꼬모 대성당, 이태리

▲ 꼬모 대성당, 이태리

새벽 5시, 새벽 촬영을 시작한다. 벌써 날이 밝아 있다. 새벽의 신선함과 고요함을 만끽하며 꼬모 대성당(Cathedral of Como) 쪽으로 이동을 하면서 촬영을 시작한다. 성당을 완공하는데 무려 400여년이 걸려서 지어졌다는 꼬모 대성당은 이른 시각이라 문이 열려있지 않다. 르네상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그 위용을 자랑하며 고고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우뚝 솟아 있다. 대성당 앞의 아름다운 가로등이 유독 눈길을 끌며 유혹한다. 성당과 가로등을 넣고 빼면서 사진에 담는다. 이렇게 첫 날 새벽촬영은 마무리 되었다.

3. 성 아본디오 교회

루가노 호수위에 아름다운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성 아본디오 교회(Church Sant’Abbondio), 헤르만 헤세(Herman Hesse)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더욱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 성 아본디오 교회, 스위스

▲ 헤르만 헤세 묘지, 스위스

이른 시각이라 한산하다. 사이프러스 나무와 성 아본디오 교회를 사진에 담으며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교회 안에는 오전 미사를 준비하는지 신부님이 계신다. 촬영을 허락해 주시고, 손수 모델이 되어 주신다. 첫 방문지부터 예상외의 성과다. 교회 맞은편에 있는 묘지에 들러 헤르만 헤세의 묘지를 찾아 알현하고 첫 방문지를 간단하게 스케치 한다. 다음 방문지를 위한 워밍업 수준이다.

4. 뮈스테어 수도원 가늘길

성 아본디오 교회를 떠나 뮈스테어의 성 요한 베네딕트회 수도원을 향하여 출발한다. 고도 1,475미터의 스프뤼겐(Splugen)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고도 2,000미터가 넘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는 코스다.

알프스 산맥은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걸쳐 있으며, 알프스라는 이름은 ‘산’을 뜻하는 켈트어 ‘alb’, ‘alp’ 또는 ‘백색’을 뜻하는 라틴어가 어원으로 빙설로 뒤 덥힌 ‘희고 높은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하는 것처럼, 5월 말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산 정상에는 빙설이 남아있어 장관을 이룬다.

▲ 알프스 풍경, 스위스

▲ 알프스 풍경, 스위스

고준산맥을 넘고 넘어, 돌고 돌아가는 길, 온통 짙푸른 초록과 민들레꽃의 노랑 물결, 청량한 하늘,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젖소들, 그 뒤에 높이 솟아있는 봉우리엔 하얀 빙설이 남아 있는 목가적인 풍경, 알프스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눈이 행복해 지고 마음이 행복해 진다. 이런 곳에서 사는 것은 행복이자 축복이다. 소와 양떼들도...

이 청량함을, 이 신선함을,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말로, 어떻게 사진으로 기록 할 수 있으랴! 그래도 지나가면서 보았던 풍광들을 사진에 담는다. 어째서 이런 아름다운 곳에 깊은 어둠과 고요가 있는 수도원이 있단 말인가. 가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넘 언발란스라고...

5. 뮈스테어의 성 요한 베네딕트회 수도원

“사람들이 신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 인간이 가진 부족함과 모자람에서 나오는 본능적 불안감을 절대자를 믿음으로써만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 그것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수도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신성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 신의 평안을 누리면서 참여의 노력이 주는 고통에 아파하며 신음하는 곳, 이곳이 바로 수도원이다.” (최형걸, 「수도원의 역사」, 살림, 2004) 

아름다운 꽃길, 알프스 산맥을 넘어 뮈스테어 수도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경, 호텔에 여장을 풀고 주변을 산책한다. 시골의 조그마한 산골 마을이라 한가롭다.

뮈스테어의 성 요한 베네딕트회 수도원은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도원으로 ‘침묵으로의 여행‘ 책 표지 사진인 수녀복을 촬영했던 수도원이다. 즉, 이번 수도원 기행을 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했던 수도원인 것이다.

수도원 내부 방문은 내일 오전으로 잡혀있다. 내일 본 게임에 앞서 수도원 주변을 스케치 한다. 가볍게 산책을 하면서 알프스 깊은 마을의 한적함을 즐긴다. 마을 한 바퀴를 여유롭게 둘러보는데 30분이면 족하다. 

다음날, 드디어 오늘 방문이다. 수녀복이 수도원 몇 층 어디쯤에 있는지 애기를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1층부터 천천히 신성이 깃들인 오브제에 떨어진 빛과 묵직한 어둠을 사진에 담는다.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깊은 어둠과 고요를 음미하며 천천히 그리고 숨을 죽이며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드디어 신성이 깃들어 있는 수녀복을 대면한다. 옷장 문이 한 쪽 문은 잠겨 있고 한 쪽 문만 열려 있어 수녀복의 반쪽 밖에 허락을 하지 않는다.

▲ 뮈스테어 수도원, 스위스

잠깐의 대면 후 방을 빠져 나온다.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을 보려고 지구 저편에서 날아 왔건만 단 몇 분만 허락 하다니, 넘 아쉽다. 이산가족 상봉 후 이별의 장면이 오버랩 된다.

아쉬움을 달래며 다른 방으로,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온다. 2층에서 창밖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뒤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서광이 번쩍하며 수녀님이 짱하고 나타나셨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끓고 수녀님을 사진에 담는다. 한 컷을 허락하시고 유유히 문을 열고 들어가신다. 문을 닫고 들어가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 첫 발은 초점을 잡지 못하여 불발, 다시 한 번 셔터를 누른다. 수녀님은 유유히 문 저쪽으로 봉쇄 구역으로 사라지신다. 이게 환영인가 현실인가?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현실이라면 카메라에 상이 맺혔을 것이고 환영이라면 찍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궁금하다.

▲ 수녀복, 뭐스 테어, 스위스

▲ 테레사 수녀님, 뭐스테어, 스위스

수도원을 빠져 나온 후 카메라에 찍혀진 이미지를 검색한다. 수녀님 상이 보인다. 환영이 아니라 현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뷰 파인더에 보이는 수녀님은 ‘침묵으로의 여행’에 나오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아닌가. 그때 모습 그대로다. 그때 그 수녀복에 그 웃음과 그 앞치마 그리고 그 반지에 한 손에 든 열쇠까지 또한 그 인자하신 미소와 수도원 내부로 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그 가슴을 찌르는 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표정까지... 단지 5년이라는 시간이 말해주듯 얼굴이 좀 야왼 모습이다. 등골이 오싹하다. 이것이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오늘 이 신성의 만남을 위하여 하느님은 나에게 아픔을 주셨나보다. 오늘 새벽 촬영 시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왼쪽 무릎에서 피가 나는 찰과상을 입었다. 다행인 것은 다른 곳은 아픈데도 없고 카메라도 무사했다는 것이다. 수녀님을 보는 순간 나는 아픈 무릎을 끓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인간이 얼마나 이성적이고 냉정한가를 실감한다. 뮈스테어여 안녕! 수녀님 건강하게 계세요.

6. 비르나우 수도원 교회

오늘은 5시 출발이다. 이번 여행기간 중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새벽 촬영 일정이 잡혀있는 날이다. 아침은 호텔에서 준비한 도시락이다.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린다. 이제 날이 차츰 밝아오기 시작한다. 모처럼 맛보는 상쾌함이다. 사진을 처음 배울 때 일출 촬영을 위하여 새벽잠을 설쳐가며 다니던 시절이 생각난다. 모든 만물이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에 밝은 공기를 마시며 느꼈던 그 상쾌함을 오늘 머나먼 독일 땅에서 느낀다. 감회가 새롭다. 즐거운 마음으로 동트기 시작하는 여명을 사진에 담으며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간다.

▲ 비르나우 교회 가는 길, 독일

▲ 비르나우 교회, 독일

프리드리히샤펜에 있는 비르나우(Birnau) 수도원 교회에 도착하니 교회의 종탑부터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종탑에 비친 햇살은 황금빛으로 변하여 그 신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종탑을 점령한 햇살은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숨을 죽이며 천천히 시선을 확장해 나가며 카메라에 담는다. 아름다운 아침이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교회 주변을 산책하며 이른 아침의 여유를 즐긴다. 모두들 행복한 눈치다. 호텔에서 준비한 빵에 컵라면을 곁들여 아침을 먹고 다음 목적지인 취리히를 거쳐 루체른으로 이동한다.
 
7. 취리히를 거쳐 루체른으로

오늘 일정은 빠듯하다. 이른 아침 5시에 일어나 비르나우 수도원 교회를 거쳐 취리히에서 시내를 관광하고 루체른으로 이동하여 숙박을 하는 일정이다.

취리히(Zurich) 도시 중심가에 있는 프라우뭔스터 수도원(Fraumunster Abbey)과 그 주변을 촬영한다. 도시 중심지로 인파가 북적인다. 한 낮의 강렬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사진을 찍는다. 1960년대 현대사진을 이끌었던 게리 워노그랜드(Garry Winogrand)와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를 생각하며 도시의 역동성과 삶의 격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려 촉각을 곤두세우며 문화의 약탈자가 되어 바삐 움직인다.

▲ 취리히 도시, 스위스

이렇게 도시를 배회하고 루체른(Luzern)으로 이동하여 호텔에 여장을 푼다. 호텔에서 로이스 강까지는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로이스 강 주변과 카펠교(Kapellbrucke)를 건너며 사진을 찍는다. 로이스 강  북쪽에 있는 호프 베네딕도 수도원에 내린 석양의 긴 그림자와 마주한다.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자 로이스 강 벤치에 않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나그네로서의 여유와 풍치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8. 플뤼엘리 란프트 성당

아침햇살이 포근하고 상큼하다. 청량한 하늘과 따스한 햇살,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목장의 싱그러운 풀들과 마냥 행복해 보이는 젖소들, 알프스의 깊은 매력으로 빠져든다. 그 아름다음과 향기에 취해 우리가 어디를 가는지 잠시 잊고 행복해 한다. 이렇게 자연에 취해 감탄하며 도착인 곳이 플뤼엘리 란프트이다.

플뤼엘리 란프트 성당은 스위스에서 ’조국의 아버지‘ 또는 ’평화를 이룩한 분‘으로 존경하고 있는 성 니콜라오 폰 플뤼에(Nicholas von Flue)가 은둔 생활을 했던 곳이다. 성 니콜라오 폰 플뤼에는 1417년 알프스 산자락에서 태어나 군 장교이자 대지주, 지역 유지로서 5남 5녀의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다가 1467년 나이 50세에 주님의 부름을 받고. 가족의 동의하에 고향 근교인 란프트 움막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여 1487년 돌아가실 때가지 20년 동안 성당 안에서 생활하시면서 성덕과 지혜로 명성이 드높았던 성인으로 스위스에서 유명한 카톨릭 순례성지이다. 성인으로 추앙받던 이 분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지어 주었다는 성당이 아직 그 자리에 있고, 성당 아래쪽에 1501년 후기 고딕 양식의 성당이 하나 더 세워졌다.

▲ 플뤼엘리 란프트 성당, 스위스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계곡에 있는 성당 쪽으로 내려간다. 걸어서 10분 거리다. 좁은 비탈길을 막 돌아서는 순간 전면에 보이는 플뤼엘리 란프트 성당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스럽다. 아담한 크기에 흰색으로 칠해진 성당의 외벽, 순결 그 자체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속에 이런 아름다운 모습의 성당이 있다니, 너무나 잘 어울리고 너무나 신성하다. 감격 그 자체이다. 잠깐이나마 이런 곳이라면 나도 은둔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불경스러운 마음을 가져본다.

▲ 플뤼엘리 란프트 풍경, 스위스

란프트 성당 촬영을 마치고 예정에 없었던 마을 위쪽 교회로 이동하여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알프스 특유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망중한에 잠시 빠져본다.

9. 아이니겐 교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슈피츠(Spiez)와 인터라켄(Interlaken)을 경유하여 베른(Bern)으로 이동을 한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목적지를 급히 찾는다. 툰 호수(Lake Thun)를 보면서 5년 전에 우연히 만났던 아이니겐 교회(kirche Einigen, 묘지교회)가 생각났던 것이다. 5년 전에도 우연히, 오늘도 우연히다, 인연이 닿으면 찾아 갈 수 있을 것이고 하느님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 찾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차창 너머로 보이는 툰 호수의 에머랄드빛 수면에 비친 호반의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달리는데, 갑자기 차를 멈추라 한다. 일명 묘지 교회를 발견한 것이다. 이것도 우연히다. 
 
호숫가 작은 마을에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은 종탑, 무덤주위에 아름다운 꽃을 심어 공원처럼 만들어 놓은 교회, 옛 수도사들이 성지순례 중에 둘러서 기도를 했던 교회라 한다. 문을 열고 교회 내부로 들어간다.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조그만 창문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에 의하여 신성한 사물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사진에 담는다.

▲ 아이니겐 교회, 스위스

아름다운 꽃이 있는 묘지와 교회, 에머랄드빛 툰 호수와 교회, 우뚝 솟은 종탑과 구름, 천년의 깊은 어둠을 카메라에 담는다. 우연히다.

10. 안시 공원묘지

오늘은 오전 11시에 출발이다. 어제 안시에 도착 후 야간에 릴르궁전과 중세시대 건축물이 남아 있는 골목길을 느긋하게 둘러보았기 때문에 오늘 아침은 여유롭다. 어제 밤에 둘러 본 길을 따라서 이번에는 안시 대성당까지 올라가 본다.

▲ 안시 대성당, 프랑스

여유롭게 아침 촬영을 마치고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출발하기 전에 호텔에서 5분 거리인 공원묘지로 향한다. 공원묘지는 도시의 생성과 소멸을 같이 하는 생활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사진여행에서 시내 중심가에 있는 공원묘지는 필수 코스이다. 오전 9시의 강렬한 햇살 속에서 묘지에 떨어지는 빛과 어둠을 탐닉한다. 콘트라스트가 강렬하다. 보여주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은 튀어 오르고, 은닉하고 싶은 것은 어둠속에 꼭꼭 숨는다. 유럽의 강렬한 햇살 속에서 1시간여를 피사체에 집중하며 사진을 담는다. 공원묘지는 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 날도 좋지만 강한 햇살이 비치는 날의 명암의 강렬함도 좋은 피사체다.

▲ 안시 공원묘지, 프랑스

11. 오로빠 수도원

이번 수도원 기행에서 스페셜 일정은 오로빠 수도원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이다. 15세기부터 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지어진 수도원 숙소에서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도록 이곳을 선택한 것은 최상이다.

안시에서 출발하여 장장 4시간을 이동하여 오로빠 수도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지금부터 내일 8시 30분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자유시간이지만 어찌 이 좋은 곳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랴! 이제 각자 본인들이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찍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도 되는 것이다.

각자 방을 배정받고 호실로 이동한다. 이번 여행에 동참한 12명중 여자 분들이 9명이다. 여자 분들의 가방을 운반해 준다. 가방을 운반해주기 위해 방을 처음 열었을 때의 그 신성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천사들이 살 것 같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방, 하얀 색으로 칠한 방과 올 백의 침대보, 창문에 가지런히 묶어둔 하얀 커튼, 감히 범접하지 못할 신선함이다. 마치 수녀들이 생활할 것 갖은 환상을 가지며, 흥분된 마음으로 내게 배정된 방으로 향한다. 

2층에 배정된 내 방은 1차 문을 통과하자 조그만 탁자가 있는 공간이 나오고 다시 2차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런 구조다. 순백에 혼이 나갔던 나는 우리 방도 당연히 순백의 침대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순백의 침대보가 아니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에서 보여주었던 그 꽃무늬 식탁보와 같은 침대보였기 때문이다. 이것도 숙명이다. 실망은 잠시 뿐이고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눈인사를 하며 마음에 새긴다. 호텔방에 여장을 풀고 천천히 긴 복도를 따라가며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흥분되지만 여유를 같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저녁 황혼의 햇살을 보내고 어둠을 맞이한다. 이번 수도원 기행의 마지막 밤을 수도원에서 와인을 곁들인 만찬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 오로빠 수도원, 이태리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본다. 내가 누은 침대에서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봉쇄수도원에 들어와 첫 날밤을 눈물로 보냈을 이름 모를 수녀님을 생각해본다. 창문에 나폴대는 커튼과 그 자리로 비집고 떨어지는 달빛을 보면서 고향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하룻밤을 지새웠을 그 순간을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잠 못 이루는 긴 밤이다.

▲ 창문, 오로빠 수도원, 이태리

12. 수도원 기행을 마무리하며

“어린 수녀였던 저도 그 분의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분은 너무 작았습니다. 그 분은 너무나 말랐고 무릎 아래는 거의 푸른빛이었습니다. 너무도 오랜 시간 끓어 앉아 있었기 때문이지요. (…) 부끄럽게도 눈에서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너무 마르고, 너무 작고, 너무 푸른 무릎, 그 푸른 무릎이라는 대목에서 참기가 힘이 들었던 것이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에 나오는 나자레나(Nazarena) 수녀님의 마지막 모습이다.

나자레나 수녀님은 1940년대 후반 미국 사교계의 오페라 가수로 활동했으며, 파티를 좋아하고 친구가 많았던 젊고 유명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날 하느님의 영감을 받고 속세를 떠나 봉인된 수도원에서 44년간 감옥 같은 골방에서 헌신과 기도로 몸을 바치신 분이다. 이번 수도원 기행을 떠나면서 내심 나자레나 수녀님이 기거하셨던 봉쇄 수도원, 더 나아가 봉인된 수도원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찌 보면 무신론자인 내가 너무나 과분한 망상을 했던 것이다.

▲ 고해성사 실, 산 암브로지오 성당, 이태리

이번에 방문한 수도원은 봉쇄 수도원도 아닌 개방된 수도원, 그것도 일반 여행객을 위하여 제한된 공간만 개방한 수도원으로 내가 원했던 수도원의 깊은 어둠과 내밀한 곳에 있는 신성이 깃든 속살은 만날 수 없었다.

이번 수도원 기행은 알프스 산맥을 기점으로 이동한 탓에 알프스의 아름다운 대자연에 연일 탄성을 지르며 눈도 마음도 행복했다. 비록 개방된 수도원이었지만 깊은 어둠이 있는 수도원도 만날 수 있었고, 유럽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여 중세시대의 건물들을 감상하고 골목길을 걸어보는 호사도 누렸다. 특히 뮈스테어 수도원에서의 노 수녀님과의 우연한 조우는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극적인 만남이었다. 아무쪼록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곳에서 사진에 푹 빠졌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멋진 수도원 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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