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된 애비 수탉이 9개월 된 새끼 수탉을 죽도록 쪼아댔다.

온 몸이 피투성이다. 싸움을 포기한 새끼가 둥지 구석에 죽은 듯이 머리를 쳐 박고 있는데도 애비는 오며가며 엉덩이를 계속 쪼아댄다.

부리나케 닭장 문을 열고 들어가 불쌍한 새끼를 안고 나왔다. 숨을 할딱이면서 떨고 있다.

우리 집 토종닭 5마리. 붉은색 수탉 한 마리와 노란 갈색 깃이 반지르르 윤기가 나는 암탉 4 마리다. 수탉 한 마리가 암탉 4마리를 봐주면서 알을 낳고, ‘꼬오끼오오오’ 시간 맞춰 울어주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작년 여름, 암탉 한 마리가 그 무더위를 견디면서 장마가 끝날 무렵에 품고 있던 알 8개 중에 4 마리를 부화시켰다. 병아리 한 마리는 족제비가 물어가고, 또 한 마리는 고양이가 물어가고 또 한 마리는 한 밤중 어떤 짐승의 습격을 받아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용케도 잡혀가지 않고 잘 살아 준 숫병아리 한 마리는 잘도 자랐다. 덩치가 훤출한 것이 애비만큼 늠름해졌다. 가슴과 배는 흰색이고 등은 노란 갈색에 검은 줄무늬 목도리, 힘차게 감아 솟아 올린 푸른빛이 반짝이는 검정색 꼬리와 빨간 진홍색 벼슬이 당당해서 아내와 나는 ‘白虹’이라고 불렀다. 무지개처럼 아름다워서.

그런데 이 새끼 수탉 白虹이가 7, 8개월 자라 올해 봄이 되면서 수컷 행세를 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암탉들 옆에서 날개 춤을 추면서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후다닥 달려온 애비 수탉이 수컷 행세를 하는 제 새끼를 쪼며 공격을 퍼 부었다.

놀란 새끼 白虹이가 길길이 뛰다가 울타리 너머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날이 갈수록 암탉을 넘보는 때가 많아지더니 결국 父子간의 血鬪가 벌어지더니 픽 쓰러지고 만 것이다.

외출약속을 취소하고 철망과 각목을 사다가 작은 닭장을 지어서 죽어가는 白虹이를 隔離시켰다. 그리고 하이 얀 색깔에 빨간 벼슬이 유난히 선명해서 착하고 귀여운 암탉 白順이를 같이 넣어 주었다.

“꼬오끼오오오”

오후가 되자 白虹이가 우렁차게 소리쳐 울었다. 젊은 놈이어서 회복이 빠른 모양이다. 맞은 편 우리에서 애비도 맞장구를 치면서 “꼬오끼오오” 소리쳐 울었다.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꼬끼오’로 시간을 알리며 태연했다. 하지만 나는 불안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계속 격리시킬 수도 없고 수시로 닭장 문을 열어 마당과 잔디밭을 돌아다니며 풀도 뜯어먹고 벌레도 잡아먹고 운동도 시켜야 하는데 이제 둘이 만나기만 하면 血鬪를 벌일 테니 “우야먼 좋노?”

작년 봄에는 또 다른 새끼 수탉과 血鬪를 벌였다. 목덜미와 등 쪽의 털이 숭숭 빠져버리고 얼굴과 전신은 피범벅으로 시뻘개 지고 눈까지 공격을 받아 양 쪽 눈을 뜨지 못하는 참변을 당했었다.

새 우리를 지어서 격리 시키고 물과 모이를 넣어 주었다. 그러나 사흘 동안을 선채로 비틀거리며 코앞에 갖다 준 모이도 보지 못하고 골골거리며 괴로워했다. 저러다가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 도와 줄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동료의 위로라도 받으라고 암탉 한 마리를 넣어 주었다. 햐, 이게 특효였는지 이튿날 아침에 활짝 두 눈을 뜨고 모이를 먹기 시작했고 이내 원기를 회복해서 “꼬오끼오오오” 훼를 치며 살아났다.

주일 아침, 교회에 다녀왔다. 진돌이 새봄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고 白虹이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이게 웬일인가? 달려 나온 白虹이가 피투성이이다. 닭장으로 뛰어갔다. 애비 수탉이 없어졌다. 또 이놈들이 血鬪를 벌인 것이다. 오리정 뒤로 퇴비장으로 창고 뒤로 구석구석 사방을 뒤졌으나 보이지 않았다.

“여보, 애비 수탉이 없어졌어요. 白虹이는 피투성이이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지게 작대기로 장작더미 밑이고 나무 밑이고 쿡쿡 찌르며 찾아다녔다.

“여보, 여기에요. 창고 뒤 낙엽더미요”

애비가 창고 벽 철판에 피범벅을 한 채 고개도 가누지 못하고 낙엽더미에 누워 있다. 父子간의 血鬪, 이 번엔 애비가 쓰러지고 말았다. 얼른 애비를 안아서 우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비실비실하면서 혼미한 상태이다. 이러다가 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새끼한테 역공을 받아 죽게 되다니.

‘어떻게 한담?’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없애버려야 한다. 애비냐?, 새끼냐? 애비는 검붉은 색깔에 덩치도 크고 전통적인 토종이어서 맘에 들고, 새끼 白虹이는 하 이얀 가슴과 배를 바탕으로 등은 노란 갈색에 검은 줄무늬 목도리에 힘차게 감아 솟아 올린 검정색 꼬리와 빨간 진홍색 벼슬이 당당해서 맘에 드는데다가 걸음걸이도 씩씩하고 목소리도 우렁차고 청명해서 좋다. 애비는 4살, 새끼는 1살, 둘 중에 한 마리는  없애야 한다.

父子간이라도 수컷 두 마리는 함께 살 수가 없으니 우야면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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