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형, 공주학광장서 풀어놓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정년 후 제2의 인생을 활동적으로 보내고 있는 황규형(93) 선생이 흑백필름같은 감동의 인생역정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 황규형 선생이 특강을 하고 있다.

8월 21일 오후 3시부터 공주학연구원 고마나루실에서 개최된 제35회 공주학광장 손님으로 나선 황규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나는 내 나라 모국어를 외국어로 배운 사람”이라며 “당시 일본어는 일주일에 6시간, 조선어는 1시간 가르쳤다”고 술회했다.  

또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아동들을 근로동원(모심기, 벼베기 등)시킨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대해 비판하면서 “우리 교육헌장과는 상반되는 ‘교육 칙어(勅語)’를 낭독시키는 한편 아동들에게 ‘학교’는 ‘부대’로, ‘선생’은 ‘대장’으로 부르게 하면서 나라(일본)에 충성하는 군대식 교육이었다”고 얘기했다.

1945년 8월 1일 징병제로 소집되어 마을(한산)을 떠날 때 주민들에게 “우리는 죽지 않는다. 올 가을에 깃발을 들고 올 때 떡을 준비해 달라고 말을 했는데 전쟁이 끝나고 천우신조로 살아 고향에서 영웅대접을 받았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 공주학광장 전경

황규형 선생은 “해방은 되었지만 자력(自力)으로 해방하지 못한 민족의 설음을 잊지 못한다”며 “우리는 자생력을 가져야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황규형 선생은 1991년 오랜 교직 생활을 마치고 국립공주박물관 운영자문위원과 자원봉사자회장 등으로 활동 중이며 특히 일본에 능통하여 관련 초청강연과 일어 가이드 해설시범 및 지도를 해 왔다.

수훈으로는 △국민훈장 석류장 △문교부장관 표창장 3회 △법무부장관 표창장 △감사장 각각 1회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장 2회 △충청남도지사 포상장 1회 △공주교육대학장 표창장 등이 있으며 88 올림픽 때 공주를 대표로 성화봉송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 황규형 선생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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