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 프랑스를 여행하며 니스현대미술관에 갔다. 많은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 이브클라인, 니키 드 상팔 같은 프랑스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작가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영국작가 구스타프 메츠거 전시가 있었다. 2010년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로 상까지 받았는데 그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역시 작가의 일대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울림이 크다. 그리고 작가가 생각하고 얘기하려는 것에 공감해야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소멸과 파괴를 도구로 새로운 시각을 연다.

메츠거는 1961년에 런던 사우스뱅크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먼저 길거리에 큰 나일론 천으로 천막을 쳤다. 관객은 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치장을 하는 행위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메츠거는 방독면을 끼고 등장하여 염산을 천에 부었다.

천이 녹아 구멍이 커지고 그 자리로 성당이 보였다. 천을 녹이는 파괴로 새로운 시야를 열었다. 눈앞에 있는 풍경은 그저 평범하지만 좁은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특별해진다. 구멍은 주변에 있는 것을 가리고 그 대상에 집중하게 한다.

“염산을 쏟을 때 나는 매우 공격적이었다. (…) 자본주의 구조를 공격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전쟁과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을 비난하고 상징적으로 파괴하고 싶은 마음을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2009년 메츠거가 자신의 회고전을 기획한 서펜타인 미술관장 줄리아 페이턴존스에게 한 말)

폴란드계 유태인이었던 부모를 강제 수용소에서 잃고 형제는 구출되어 영국을 떠돌며 자랐다. 그의 암울한 유년시절은 예술 활동에 영향을 주었다. 독일과 유럽 곳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학살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평생 반전, 반핵, 조직, 권력을 거부하는 환경주의자였다.

뿌리를 가지처럼 허공을 향하여 콘크리트 박스에 거꾸로 쳐 박힌 나무가 있고, 거대한 신문 더미가 전시장 중앙을 가득 채우고 있다. 벽면에는 불어와 영어로 멸종, 오염, 공해, 재앙, 소멸…등 단어가 들어간 문장이 있다. 한쪽에는 가위가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관람객은 신문 더미에서 신문기사를 찾아 오리고 벽에 붙인다. 벽에는 아직 빈 곳이 있지만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도 열심히 읽고 오리고 붙이는 사람을 보았다.

쌓여있는 신문 더미에 아무렇게 앉아서 지나간 기사를 뒤적이며 읽고 있다. 매일 인쇄되어 나오는 신문은 시간이 지나며 그저 지난 일일 뿐이고 기억에서 잊혀지는 사건들이다. 메츠거는 그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고 채집해 보기를 권유한다.

“나는 12살 때 독일을 떠나 이 나라에 왔다. 내 부모는 1943년에 사라졌고 아마 나도 그들과 운명을 같이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언제나 사람들이 말살될 수 있었던 부헨발트(나치 강제수용소로 25만 명이 수감됐고 최소 5만여 명이 이곳에서 사망)보다 훨씬 더 야만적이다. 내가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것, 그것 외에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투쟁하기를, 완전한 비폭력의 원칙을 택했다.” 반핵 단체 활동으로 법정에 기소된 메츠거의 말이다. 그가 바꾸고 싶었던 세상에서 그는 떠났고 지금도 세계는 전쟁 중이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서 배를 타고 떠난 최해갑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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