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졸업한 지 한 두 해 밖에 되지 않은 제자 둘이 인사차 연구실로 찾아왔다.

그 어려운 교육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직무연수를 받고 있는 중이라니, 요즘 같이 취업의 관문을 뚫기가 어려운 때에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잘 모르긴 해도 합격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간난신고를 겪었을 것이다.

구경꾼에 불과한 내가 쉽고 빠르게 합격한 것처럼 말하니 서운한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합격한 기쁨의 감정이 워낙 커서 그런지 연신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기쁜 소식과 함께 모처럼 만났기 때문에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같이 했던 많은 이야기를 다 기억하거나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한 가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연수를 마치고 현장에 나가게 되면 행정실과 교무실 사이에 존재하는 행정직원과 교사간의 갈등이라는 문제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한다. 또 그런 일들을 당하게 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행정직원과 교사간의 갈등의 문제는 특정의 학교에 국한되는 것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으로만 볼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1979년 내가 처음 학교에 부임했을 때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내 경험만 가지고 봐도 무려 거의 40여 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문제인 셈이다. 이런 것이 바로 적폐(積弊)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나는 이러한 적폐를 끝낼 만한 권능(權能)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 제자들을 그러한 적폐의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줘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에 대한 나의 견해를 말했더니 두 사람 모두 그 문제로 인한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고 반색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같은 적폐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이번 칼럼에서는 꿈에 관한 나의 지론을 쓸 생각이었지만 학교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라고 하는 제목으로 바꾸게 되었다.

학교의 행정직원과 교사와의 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 견해는 아주 간단하다. 학교교육의 주체가 과연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인지하면 바로 그 순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사회가 학생운동으로 몸살을 앓았던 80년대에 학교교육의 주체에 대한 논쟁이 빈번하게 제기되었었다. 전통적으로 교수들은 그들이 대학사회의 주인공이라고 믿어왔다.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와 기성세대의 권위에 도전하는 학생들은 그들이 대학사회의 핵심이라고 주장하였다.

행정직원들 또한 그들 나름대로 역할론을 제기하면서 총장 선거를 비롯한 대학행정에서 그에 상응하는 지분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학사회의 주도권 논쟁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흔히 대학사회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3주체를 인정하자는 쪽으로 임시 봉합되고 말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대학이든 중·고등학교든 학교교육의 3주체라고 하지만 교사나 학생 또는 교직원은 어떤 경우에도 일방적으로 또는 다른 한편을 배제할 수 있는 학교교육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엄밀하게 따지면 국가가 바로 학교교육의 주체일 뿐이다.

국가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학교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가 교사에게는 가르치는 일을 위탁한 것이고, 교직원에게는 가르치는 일을 지원하는 행정업무를 위탁한 것이다.

국가의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공무원 아니겠는가. 이것은 사립학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사립학교도 국가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점에서 국가나 지방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피교육자이니 그들을 주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학교교육에서 교사, 학생, 직원이 중요한 구성원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중에 어떤 하나만 중요하다거나 다른 쪽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지양(止揚)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소위 3주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상호보완적 관계 속에서 인재 양성이라고 하는 국가적 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서로 질시하거나 갈등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학교체제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현상은 대개의 경우 학교교육의 근본 취지나 목적보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지엽적 견해가 우세할 때 나타나는 소모적인 논쟁에 불과한 것이다.

소모적인 집단간의 다툼을 끝내려면 근본을 앞세우고 지엽을 뒤로 하는 근본회귀(根本回歸)의 정신과 자세가 정립되어야 한다.

아무튼 제한된 지면에 피력하는 나의 엉성한 견해가 소집단간의 갈등 문제로 고민하는 나의 제자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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