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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콘텐츠 해외 탐색-③
일본 속의 작은 백제,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와 백제사(百濟寺)
2018년 01월 04일 (목) 14:22:52 신용희 기자 s-yh50@hanmail.net

 

백제 제25대 무령왕은 461년(혹은 462년)에 태어나 웅진시대 재위 23년간 백제를 갱위강국(更爲强國)으로 중흥시킨 인물이다.

그는 중국 남조의 ‘양나라’ 그리고 ‘왜’와의 외교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정책을 펼쳐 해상왕국 백제로서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를 이루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주인공은 무령왕릉이고 2021년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이 된다. 3년 후에 우리는 세계유산인 백제문화를 어떻게 콘텐츠化하여 세계에 알리는 한편 백제의 후예로써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지금부터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본지는 무령왕과 관련한 해외 유적을 찾아 무령왕 콘텐츠를 발굴, 백제역사문화 개발에 기여하고자 ‘무령왕 콘텐츠 해외 탐색’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현재 일본에서 백제와 관련된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오사카지역이다. 오사카에는 백제촌, 백제역, 백제초등학교 등 백제 국명을 사용한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다.
무령왕 콘텐츠 해외탐색 세 번째는 7~8세기 백제왕 후예들이 세거했던 히라카타(校方)의 ‘일본 속의 작은 백제,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와 백제사(百濟寺)’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답사일은 2017년 5월 12~15일이다.

일본 속의 작은 백제,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와 백제사(百濟寺)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

현재 일본에서 백제와 관련된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오사카지역이다. 오사카에는 백제촌, 백제역, 백제초등학교 등 백제 국명을 사용한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다. 특히 7~8세기 백제왕 후예들이 세거했던 히라카타(校方)의 백제왕신사와 백제사는 ‘일본 속의 작은 백제’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백제왕신사 전경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는 일본 오사카부(府) 히라카타시(校方市)의 주큐(中宮)에 있는 사당으로 제신(祭神)으로는 백제국왕과 우두천왕(牛頭天王)을 모시고 있다. 이 신사의 창건연대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원래 이곳은 백제에서 이주하여 살던 난파(難波)에서 그의 씨족을 이끌었던 지역으로 의자왕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선광(善光 601~687)의 증손인 경복(敬福 697~766)이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의하면 선광(善光)은 형제인 부여 풍(夫餘 豊)과 함께 631년경 일본에 왔다가 백제 부흥군을 이끌고 나당 연합군과 싸우다 660년 백제의 멸망으로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체류하였다 한다. 일본 조정에서는 왕족인 선광을 중용하였고 ‘백제왕씨’라는 성씨를 쓸 수 있도록 예우하였고 선광과 자손들을 고위 관직에 중용하였다.

   
백제왕신사를 답사하는 공주무령왕국제네트워크협의회

   
백제왕신사 현판

선광과 후손들은  백제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 히라가타(당시 가타노)로 터전을 옮겼는데 이는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차원이 아니라 백제인의 신도시 건설이 목적으로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나라에 일본 최초로 무쓰(陸)의 금광을 개발(749년)하여 도다이지(東大寺) 국가사찰을 건설한 경복의 탁월한 지도자 능력때문이었다.
이 공으로 일본 조정으로부터 백제왕씨의 번영을 약속받게 되고 경복은 국내경(宮內卿, 왕실장관)겸 가와치(河) 태수에 임명되고 형부경(법무부장관)까지 역임하게 되었으며 이때 백제왕신사와 백제사가 세워졌다.

 

 

백제사(百濟寺)

오오사카부(大阪府)에는 2곳의 국가 지정 특별사적이 있다. 오사카성(大阪府)과 백제왕신사 옆의 백제사적(百寺跡)이다. 백제사적은 1950년 특별사적으로 지정된 뒤 지난 2005년 11월부터 유물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백제사는 일본 오사카부(府) 히라카타시 지큐산(字宮山)에 있었던 절로 그 터만 남아 있다. 이곳에 간무천황(桓武)이 자주 들렸다는 기록은 백제왕씨와 천황가의 밀접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백제사터의 큰 주춧돌이 옛 백제사의 위용을 짐작케 한다.

「百濟寺跡」은 히라카타시는 물론, 우리나라에 중요한 유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절은 백제가 멸망한 뒤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왕족의 후예들이 그들의 씨족사찰로서 경복이 창건하였다. 당시 중요한 당우로는 금당 앞의 동쪽과 서쪽에 각각 탑이 있었으며, 또 회랑(廻廊) 등도 아울러 갖추고 있었다. 바로 옆에 일렬로 정렬된 커다란 주초석과 ‘講堂라 씌여진 표지석, 그리고 한쪽켠에 모아둔 ‘중문지(中門)’ ‘남대문지(南大門)’라 쓴 10개의 주초석이 옛날 백제사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사찰을 건립한 백제왕씨는 다른 한국의 이주민들과는 달리 일본정부에서는 특별히 우대하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높은 지위를 얻어 상류계층의 귀족에 준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 까닭은 간무(桓武)천황이 즉위하자 그의 생모인 다카노노 니이가사(高野新笠)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야마토씨(和史氏)의 출신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왕들은 자신의 외척이 되는 이들 백제왕의 후손들을 우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설에 의하면 “일본 조정의 중신이던 백제왕 남전(南典)이 서거하자 쇼무(聖武)천황(724-748)이 애통해 하며 사묘(祠廟)와 백제사를 세우도록 조칙을 내림으로써 일본 왕실이 관장하는 새로운 성지가 됐다”고 전한다.

   
백제사터를 둘러보는 일행
   
백제사의 입구

 백제사는 고대 일본과 한반도와의 교류관계를 아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건축물은 여러 번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고 기단과 초석을 복원하는 형태로 ‘백제사적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백제사(百濟寺)는 나라(奈良)시대 말기부터 건축이 시작되어 칠당 가람이 완성된 것은 헤이안(平安)시대 초기로 보인다.
히라카타시에서는 백제사 유적지를 국가 특별사적으로 지정하는 한편 사적공원으로 조성하여 역사학습의 장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그 결과 2006년에는 일본의 역사공원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면적으로 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이곳을 한일문화교류의 상징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오오사카부(大阪府)에서백제사적(百濟寺跡)을 국가지정 특별사적으로 지정한 것은 왕인박사 묘와 함께 히라카타의 백제사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제사의 중요건물 기둥들

한편 무령왕과 관련한 백제왕족을 찾아가는 KBS대전방송국팀(이명용PD, 박지호, 강주진 촬영)과 동행한 이번 3박4일간의 답사는 ‘백제 무령왕’ 특별기획프로그램으로 제작되어 대전방송(1회), 전국방송(2회)으로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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