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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가 높을수록 겸손 하라
2018년 01월 23일 (화) 16:38:11 홍혁기 3777@kknews.co.kr

   

곡돌사신(曲突徙薪)/초두난액(焦頭爛額)

방고래를 굽게 하고 땔감을 옮기라는 뜻으로 재난을 미연에 방지함을 일컫는다. 불에 머리를 데고 이마를 데었다는 뜻으로 몹시 고달파 녹초가 되었음을 비유하여 일컫는다. [漢書 권 68]

곽광(霍光)은 한(漢)나라 무제(武帝)때의 대장군이다.

무제를 가까이에서 모시기 20여 년이었으나 삼가고 신중을 기하여 자그마한 실수도 범하는 일이 없었다.

무제는 죽음에 이르자 각광에게 어린 태자를 보좌하도록 이르는 유조(遺詔)를 남겼다. 태자는 여덟 살이었다. 이 사람이 소제(昭帝)다. 이로부터 한나라의 정치는 곽광의 손에서 요리되었다.

곽광은 딸을 좌장군 상관걸(上官桀)의 아들 안(安)에게 출가시켰고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이 황후가 되었다. 황후는 곧 곽광의 외손녀인 것이다. 상관걸은 사돈 각광에게 사적인 부탁을 했다가 거절당한바 있었고 곽광이 국사를 맘대로 하는데 불만을 품었다.

상관걸은 곽광을 몰아내려고 몇 차례 계획을 세웠으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상관걸은 장공주(長公主)와 밀의하여 곽광을 연회석으로 불러 무사를 시켜 죽이고 황제를 바꾸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곽광은 상관걸을 비롯한 관련자 모두를 처형했다.

B·C 74년(원평 원년)소제가 후사 없이 죽자 곽광은 창읍왕(昌邑王) 하(賀)를 맞아들였다. 하는 즉위하자 주색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곽광은 크게 걱정하여 중신들과 논의하고 태후에게 아뢰어 창읍왕 하를 추방하고 선제(宣帝)를 세웠다.

당시 곽광의 아들 우(禹)와 조카 운(雲)은 중랑장이었고 조카 산(山)은 봉거도위(奉車都尉)로서 호월병(胡越兵)을 거느렸으며 두 사위는 동서궁(東西宮)의 위위(衛尉)였다. 형제·매부·외손들도 모두 대부의 지위에 있어 곽광의 근친들이 조정의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곽광은 선제가 즉위한 뒤 직접 정사를 돌보도록 건의했다. 그러나 선제는 사양하여 모든 정무를 곽광에게 관백(關白, 아룀)한 뒤에 올리도록 했다. 곽광은 그럴수록 겸손하여 예의가 깍듯했다. 곽광이 죽고 아들 우가 아버지를 이어 박육후(博陸候)가 되었다.

우와 사촌 산은 앞 다투어 저택을 거대하게 세우고 의복 거마(衣服 車馬)를 황실에 비길 만큼 화려하게 꾸몄다. 그러나 감히 누구 한사람 탓하는 이가 없었다. 이때 무릉(茂陵)의 서복(徐福)이 선제에게 글을 올렸다.

“사치하면 불손해지고 불손하면 반드시 윗사람을 얕보게 됩니다. 윗사람을 얕보는 행위는 반역입니다. 폐하께서 곽씨네 선대의 공로를 생각하여 적당히 억제하셔서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서복은 같은 내용으로 세 번이나 올렸지만 선제는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거 선제가 황제위에 올랐을 때 황후는 허(許)씨였다.

곽광의 부인 현(顯)은 막내딸 성군(成君)을 위해 남편 몰래 전의(典醫)를 매수하여 허 황후를 독살하고 남편 곽광에게 요청하여 성군을 황후로 들여보냈다. 극비로 부쳐진 일이었으나 곽광이 죽자 황후 독살설이 시중에 떠돌기 시작했다.

이 소문을 들은 선제는 몹시 경악했으나 확증을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곽씨네를 무한정 방치할 수도 없었다. 우선 곽씨네 사위부터 요직에서 옷을 벗게 했고 다음은 우와 산을 차례로 요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허 황후의 독살설은 끈질기게 나돌았다. 곽씨네는 몹시 불안했다. 곽씨 문중은 죽음으로 몰릴 바에는 차라리 먼저 손을 써서 선제를 추방하고 새 황제를 맞이하자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실행에 옮겨지기 전에 일이 발각되어 운과 산은 자살하고 곽광의 부인과 우는 처형되었으며 연좌되어 처벌된 자가 수백이나 되었다. 이에 곽씨네의 음모를 밀고한 자들은 모두 벼슬을 받았으나 서복은 이 가운데 끼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서복을 위해 선제에게 글을 올렸다.

“과객이 지나다가 어느 집 주인을 찾아 말했습니다. ‘댁의 온돌방 고래는 곧고 굴뚝에 땔감이 쌓여 있습니다. 곧은 고래는 굽어지게 고치고 굴뚝의 땔감은 옮겨 놓아야 화재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하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과객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과연 그 집에 화재가 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 불을 끄느라 머리도 데고 이마도 데었습니다. 주인은 그들을 더 없이 고맙게 여겨 머리와 이마를 덴 사람들을 불러 상석에 앉히고 고기와 술을 내어 대접했습니다. 그러나 방구들을 고치고 섶(薪)을 옮기라고 한 사람은 초대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인에게 ‘과객의 말을 들었더라면 화재가 나지 않았을 것이고 고기와 술도 소비할 일이 없었을 텐데….’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그제야 과객의 고마움을 느끼고 서둘러 과객을 찾아 사례했다고 신은 듣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도 서복의 간하는 말을 받아들었더라면 나라에 공헌한 곽씨네를 멸망에서 구제했을 것이고 고발한 자들에게 주어진 국고의 지출도 없었을 것입니다.”

선제는 비로소 곽씨네의 멸망을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즉각 서복을 불러 상금과 벼슬을 내렸다.

출판사 다할미디어 (02)517-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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