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 1809 ~ 1865)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 장작 패는 사람(The Railsplitter), 위대한 해방자(The Great Emancipator)라는 별칭이 딸려있다.

이 중에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미국의 법은 채무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 채무가 면제되었지만 링컨은 자기가 점원으로 일하던 방앗간과 상점을 인수하여 파산하였을 때 그 지역에 남아 우체부, 울타리 만드는 일을 하여 채무를 모두 변제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별칭이 생긴 것이다,

링컨의 어릴 때 가정환경은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고 불우하였다.링컨은 켄터키의 시골 오두막에서 잉글랜드에서 매사추세츠로 이민 온 직공 견습공의 후손인 아버지 토마스 링컨과 굽은 어깨와 야윈 가슴에 신앙심이 깊은 여성 낸시 행크스 사이에서 2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어머니 낸시는 링컨이 9세 때 사망하였고 2년 뒤 새어머니 사라가 1남 2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나마 새어머니는 특별히 링컨을 사랑하여 후일 링컨이 “천사 엄마”라고 불렀으며 새어머니가 링컨에게 책 읽는 습관을 붙여준 것으로 알려졌다.

링컨은 장성한 뒤에도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루지 못하였다. 링컨은 33세 때 미모의 명문가 출신 메리 토드와 연애결혼을 하여 4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외에는 18세 이전에 모두 죽었다.

부부관계는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미국 작가 데일 카네기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된 것은 그의 결혼에 비교하면 비극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라고까지 하였다.

남편과 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소크라테스의 경우와 같이 사랑보다 질책하는 부인을 둔 경우 성공한 남편이 나온 경우가 많아 “악처가 좋은 남편을 만든다.”는 책까지 출판 되었는데 이는 남편이 일에 몰두해서 부부관계가 나빠진 경우는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한다. 링컨도 정치에 열중하다보니 부인의 질투와 신경질이 크지 않았나 싶다.

링컨의 사회생활도 파란만장하였다. 링컨은 25세 때 일리노이주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생을 시작하였는데 주요선거에서 7번의 낙선과 7번의 당선을 거두는 등 순탄하지 못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한 독학으로 법률공부를 하여 27세 때 변호사가 되었으나 주로 대초원 지역에서 원거리를 순회하며 재판을 하였고 변호사 생활 20년 뒤에야 미국에서 성공한 변호사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51세 때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55세 때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지만 5개월 뒤 포드 극장에서 연극관람 도중 남부출신 인기 배우였던 존 윌크스 부스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링컨은 이와 같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학교도 못 다녔고 심신의 건강도 좋지 않았고 실패가 연속된 불우한 삶을 살았지만 모든 것을 극복하고 성공하여 인류사상 예수 다음으로 존경받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미국의 리더십 분야 탁월한 저술가이자 강연가인 도널드 T. 필립스(Donald T. Phillips)는 「링컨의 리더십(Lincoln on Leadership)」에서 “링컨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리더십의 교과서이다.”라고 평하였다.

요즘 우리나라는 리더십의 실종 시대라고 한다. 링컨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대통합을 이뤄냈고 노예해방을 통해 도덕적 리더십을 보여주었으며 민주주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자유와 인권을 존중한 휴머니스트였다. 이러한 링컨의 리더십은 현재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링컨의 리더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현장을 발로 뛰는 행동하는 리더십이다. 링컨은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백악관이 아니라 주로 전쟁터에서 보내 병사들이 있는 곳에 링컨이 있다는 말까지 있었다.

병원 위문 중에 생명이 위독한 병사의 편지를 대필해 주고, “당신의 아들을 위해 에이브라함 링컨이 대필했습니다.”라고 썼을 때 병사가 대통령인 것을 알아보고 감동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둘째, 능력 중심 인재 발탁의 리더십이다. 육군성 장관으로 임명한 스탠턴은 링컨보다 유명한 변호사였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링컨에 대해 경멸적 언사를 하였지만 발탁하고 결재서류에서 스탠턴 서명만 확인 할 정도로 신뢰하여 링컨 사람이 되도록 하였다.

링컨 암살 당시 그는 “이제 링컨은 시대를 초월한 인물이 되었다.”고 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라이벌 관계였던 수어드(Seward)를 국무장관에 임명하였는데 그는 러시아로부터 남한 면적 16배에 달하는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 현재가치 환화 약 2조원정도에 구입하는데 주역을 담당하였다.

알래스카 구입은 링컨 당시 협상이 마무리 되었고 실제 할양은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 때 이루어졌다. 구입 당시 여론은 ‘수어드의 우행’ ‘수어드의 얼음 상자’ 심지어 대통령 앤드류 존슨은 ‘북극곰 정원’이라고 비판하였지만, 오늘날 그 가치는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크다.

셋째, 희망과 혁신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연방제 남북 대통합을 달성하여 미국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고 노예를 해방하여 인류역사 발전을 이뤄냈으며 민주주의의 전형을 제시하였다.

그는 1854년 스프링필드 피오리아 연설에서 노예제를 비판하여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했고, 1863년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은 272자 3분의 짧은 연설이었지만 그를 불멸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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