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환 “뛰노는 아이들이 바로 풀꽃”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먼 몽골 울란바타르에서도 피어 화제가 되고 있다.

▲ 한글 형성 과정과 간단한 한국어(몽골어 번역)

“지난 주말에 산에 올랐어요. 긴 겨울의 얼어붙은 땅에서 풀꽃이 피어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풀꽃은 뒷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우리 58번 학교에도 있어요. 저기 뛰노는 아이들이 바로 풀꽃이에요. 아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풀꽃이에요.”

유네스코 아태교육원(APCEIU)과 교육부 주관으로 2018년 3월부터 3개월간 몽골 울란바타르 58번 종합학교(교장, Д.Болд 볼드)에 교육교류사업에 참가하고 있는 장재훈(공주탄천중)교사와 박효석(울산구영중)교사가 이번 주간에 8학년에서 1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회화 시간에 수업한 대화이다.

▲ 장재훈 교사(오른쪽에서 두번째)

두 교사는 기초 한국어 회화 시간에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를 소개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Талын цэцэг”(뜰의 꽃) - На Тэйжү(나태주) -
Талын цэцэг чамайг / Таньж ажиглавал гоёхон
Өнгийн цэцэг чамайг / Өнгийж ажиглавал хөөрхөн
Чи минь ч бас тийм / Чин сэтгэлийн хайр хүргэм (Л. Хонгорзул, 헝거러 번역)

두 교사는 이 시를 시작으로 한글 자모음의 형성 원리와 발음, 그리고 간단한 한국어 회화 수업을 진행하였다. 몽골의 학생들은 자신들을 풀꽃에 비유한 시를 배우고 매우 큰 기쁨을 갖게 됐다.

겨울이 6개월이 넘는 몽골에서의 꽃은 더 귀한 의미가 있는 듯하다. ‘체첵(꽃)’ 이라는 이름의 여학생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도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몽골 아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롱게렐(10학년) 학생은 “이 시를 읽고 제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꽃이란 그 예쁜 식물을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국어로 따라서 말할 때 음을 넣어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헤헤,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과 통역 언니가 매우 고맙습니다”’ 라는 소감을 적기도 했다.

이렇게 자신의 <풀꽃> 시가 소개된 소식을 듣고, 나태주 시인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행복이라는 시를 보내주면서 몽골 학생들의 행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파견된 두 교사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유목민의 생활에서 도시 정착민의 사회로 변화하는 가운데에도 밝고 순수하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몽골의 미래가 ‘풀꽃’같은 저 학생들에게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몽골에서의 남은 한 달 동안 한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몽골의 오늘을 서로 나누며 몽골의 미래인 저들과 함께하는 기쁨을 갖는다는 생각에 두 교사는 오늘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 몽골 한국 교사 교류 교환 사진

2018. 4. 30.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장재훈 쓰다.

※ 위 기사는 몽골 인터넷 신문(http://ikon.mn/n/18jm)에 실린 ‘몽골-한국 교육교류관련 뉴스’ 기사를 장재훈 교사가 본지에 보내온 것을 정리한 것이다.

다음은 나태주 시인의 격려 글 전문이다.

울란바타르의 젊은 벗들에게 씁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한국의 공주에서 살면서 시르 쓰는 나태주란 사람입니다. 나이는 74세이고 오래 동안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11년 전에 정년퇴임을 한 사람입니다. 학교에서 물러난 뒤, 8년 동안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했고, 지금은 문화원장에서도 물러나서 시를 쓰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시를 쓰면서 새로운 책을 짓기도 하고 문학강연 청탁이 많아 한국의 전국을 찾아다니며 문학강연도 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풀꽃>이란 시 한 편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서 그런 것입니다. 참으로 이건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몽골의 우리 젊은이들도 나의 시를 안다고 아니 더욱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풀꽃>이란 시는 결코 긴 시가 아니고 빼어난 시도 아닌 매우 간결하고 소박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작품을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선택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이지요. 그것은 오로지 내가 시를 잘 써서 그런 것이 아니고 독자들이 그 시를 요구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인 ‘너도 그렇다’는 문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과 치유를 준다고 그럽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예뻐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데 그런 소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시인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시를 썼으니 예쁘지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도 자세히만 보면 예쁘고 오래만 보면 사람스러울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성하는 말하셨습니다. “한국인 잘 사는 것 맞다. 그러나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잘 살기는 하지만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마음의 작용, 즉 만족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짧은 시 <풀꽃>을 외우는 것이고 또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우리 몽골의 젊은 친구들은 안 그러겠지요? 충분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겠지요. 더구나 한국에서 오신 장재훈 선생님한테서 한글도 배우고 한국의 시도 배워서 좋으시겠어요.

부디 앞으로도 좋은 공부 많이 하면서 행복하고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자기가 노력한 만큼 잘 사는 곳이고 자기가 생각한 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부디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세상 살다 가시기 바랍니다.

나의 시에 <행복>이란 작품도 있어요. 그 시를 한 번 적어 볼게요.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그래요.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 있지요.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거예요. 그래서 나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들이다, 라고 말해줍니다. 그것이 내가 하는 문학강연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누구나 어딘가 알지 못할 먼 별나라에서 이 지구로 잠시 살러 온 또 다른 별이거나 꽃이거나 그런 사람들이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천국을 꼭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천국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부디 예쁘게 아름답게 잘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만나는 기회가 있으면 더욱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텐데 많이 아쉽군요. 한국의 글인 한글을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주시고 한글로 쓴 시들도 많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장재훈 선생님께 나의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보내드립니다. 그럼, 예쁘게 잘 있기 바래요. 안녕히!

2018년 4월 24일

한국 공주에서 나태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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