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이도령(掩耳盜鈴)

귀를 가리고 방울을 훔친다는 뜻으로 올바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제고집만 내세우는 어리석은 행동에 비유하여 일컫는다. 제 귀를 막고 듣지 않으면 남들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한 어리석은 행동에서 생겨난 속담이다. [여씨춘추 자지 呂氏春秋 自知]

여불위(呂不韋)는 진(秦)나라 양적(陽翟)의 큰 상인이었다. 제후국(諸侯國)을 돌며 교역을 하였는데 이때 진나라 왕자 자초(子楚)가 조(趙)나라에 볼모로 와 있었다.

진나라가 자주 조나라를 침공하였으므로 자초는 조나라의 냉대를 받았고 또 본국의 무관심으로 몹시 곤경에 처해 있었다.

여불위는 조나라에 왔다가 자초를 보고 ‘진기한 재화(奇貨)로서 투자 할 가치(可居)가 있다’ 판단하고 자초와 접촉을 가지며 아낌없는 지원을 하였고 잦은 술자리도 가졌다.

여불위는 무희(舞姬)출신 조희(趙姬)를 현지처로 두고 있었다. 자초와의 술자리에 참석하게 한 바 있었는데 자초가 보고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하였다. 여불위는 내심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불쾌히 여겼으나 기회로 여겨 많은 투자를 하는 마당에 아깝지만 하는 수 없이 조희를 자초에게 내주었다.

이때 조희는 임신 2개월이었고 자초에게 간 지 10개월 만에 아들 정(政)을 낳았다. 정이 누구의 자식이란 의심은 할 수 없었고 후일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었으니 여불위의 장삿속 혜안은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라 하겠다.

당시 진나라 소왕(昭王)의 태자는 안국군(安國君)이었다. 아들 여럿이 있었으나 정이 두터운 적실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여불위는 고귀한 패물을 들고 화양부인의 언니를 찾아가 여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게 했다.

‘미모로 사랑을 받는 사람은 나이 들면 사랑이 시들고 몸소 낳은 아들이 아니면 후일 뒷방신세를 면키 어렵다. 여러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을 가려서 후사로 삼아 돌본다면 장래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다. 조나라에 가 있는 자초가 지혜롭고 효성이 지극하니 후사로 삼게 하라’

화양부인은 이 말을 옳게 여기고 남편에게 승낙을 받고 자초를 돌보았고 자초는 조희를 부인으로 삼은 것이다.

소왕이 죽자 안국군이 왕이 되었고 자초가 태자가 되었다. 1년 만에 왕이 죽고 자초가 왕이 되니 장양왕(莊襄王)이다. 조희는 왕후가 되고 여불위는 승상(丞相)에 오르고 문신후(文信候)에 봉해졌다. 3년 만에 장양왕이 죽고 13세의 태자 정이 왕위에 오르니 여불위는 상국(相國)이 되고 중부(仲父)란 칭호로 높여졌다.

왕이 어려 여불위가 나라 일을 요리하였는데 지난날의 애인 태후와 다시 인연을 잇다가 죄가 드러나자 자살하였다. 여불위가 상국으로 있을 때 문객(門客)을 시켜서 「여추춘추(呂氏春秋)」를 짓게 하였다.

「여람(呂覽)」이라고도 일컫는데 총 26권이다. 유가(儒家)의 말이 주가 되고 도가(道家)·묵가(墨家)의 말을 끼워 넣었으며 육경(六經)이 많이 인용되었다. 다음은 그 자지편(自知篇)에 나오는 내용이다.

진(晉)나라 지백(智伯)이 범씨(范氏)를 멸망시킬 때 종을 도둑질한 백성이 있었다. 등에 지고 달아나려 했으나 종이 커서 짊어질 수 없었다. 깨뜨려가져 가려고 망치로 내려치자 종은 커다란 소리를 냈다.

사람들이 듣고 달려들어 빼앗을까 보아 겁이 난 이 백성은 엉겁결에 제 귀를 막았다. 제가 듣지 못하면 남들도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군주가 제 허물의 지적을 달가워하지 않아 못들은 체하는 것과 같은 경우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정(善政)을 베푼다고 자부한 위(魏)나라 문후(文候)가 술자리에서 여러 대부(大夫)에게 자신을 평해 보도록 명했다. 어느 대부는 군주가 지혜롭다 하였으나 임좌(任座)는 “내세울 만한 군주라 할 수 없습니다. 중산(中山)을 얻고도 군주의 아우에게 봉해 주지 않고 아들에게 봉해 주었으니 이 일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라 다스림을 잘한다는 칭찬이 있을 것으로 여겼던 문후는 얼굴에 불쾌한 빛이 드러났다. 임좌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적황(翟黃)의 차례가 되었다.

“현명한 군주이십니다. 군주가 현명하면 그 신하의 말이 올곧다고 합니다. 지금 임좌의 말은 곧습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임좌가 돌아올까?”

문후는 좋아하며 물었다.

적황이 “왜 안 그러겠습니까? 충신은 충성을 다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임좌는 틀림없이 문에 있을 것입니다.”

적황이 불러들이게 하니 임좌는 문에 있다가 곧 들어왔다. 문후는 뜰로 매려가 정중히 맞이했고 마침내는 임좌에게 최상의 예우를 하였다.

출판사 다할미디어 (02)517-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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