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페의 벽에 ‘마음아 쉬어 가자.’란 말이 적혀 있었다.

어찌 보면 낙서 같아보였는데 여주인의 말로는 음악치료 발표회에 갔다가 이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아서 벽에 적어 놓았단다.

그리 생각해보니 우리들은 너무나 바쁘게 살면서 내 마음한번 쉬게 하지 못하게 하고 혹사를 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돌아보아도 그렇다. 무엇이든지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못하고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끊임없이 일거리를 찾아다니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정말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내 삶의 만족도를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나 한번 사는 인생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데 행복이란 무엇일까?

최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행복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강렬하게 끓어오르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사랑을 한다거나 복권이 당첨되었을 때 느끼는 순간적인 행복감을 말하는데 이것을 헤도니아라고 한단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은 반복할수록 익숙해지거나 둔감해져서 끓어오를 때와 똑같이 금방 식는다.

이러한 헤도니아를 쫒는 사람이 더 큰 행복을 느끼려면 더 큰 자극이 될 강렬한 경험을 계속 찾아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결국엔 우울감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행복의 또 다른 한 가지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삶의 만족감으로 에우다이모니아가 있다.

분노, 질투, 두려움 등에서 벗어나 평온하고 긍정적인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수련을 하다보면 삶에 헤도니아와 같은 특별한 즐거운 순간이 없어도 깊은 충만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이도 우리는 살면서 삶의 지혜를 스스로 터득한다. 헤도니아와 에우다이모니아와 같은 말은 몰라도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내가 알게 된 것은 행복이란 내 마음에 있기 때문에 일상의 소소한 일에도 긍정적이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면 행복할 수 있다.

즉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내 사춘기 시절에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었다. 무척 금술이 좋으셨던 부모님 이셨는데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았으나 외롭게 자라신 엄마는 많은 자식을 낳으셨고 하루 종일 동동대며 일하시는 엄마가 참 딱하고 불쌍해보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항상 즐겁고 콧노래를 부르시면서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셨다.

부지런하셔서 새벽에 일어나서 가게문을 열고 하루종일 일하시고 저녁에 들어오셨는데 언제나 즐겁고 행복해 하셨다. 내가 볼 때 아빠 혼자만 행복해 보이는 것이 싫었고 엄마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또 싫었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살아보니 자식들에게 큰소리 한번 안하시고 짜증한번 내지 않고 항상 행복해 하셨던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에우다이모니아 행복을 누리셨던 것이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셨기에 항상 행복하게 사셨던 것이다.

바쁘게만 살다보면 모든 것이 다 급하고 여유가 없다. 가끔씩은 쉬어가며 내 마음도 다독여주고 달래주며 헤도니아가 아닌 에우다이모니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마음아~ 잠시 쉬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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