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는 지난 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이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웅진동 송산리 고분군에 숭덕전을 지은 일입니다.

이 숭덕전에는 백제 시조인 온조왕과 문주, 삼근, 동성, 무령 등 5왕의 신위를 모셨으며 백제문화제에 앞서 백제왕 추모제 등에 사용하는 전각입니다.

예전 백제문화제 사왕 추모제를 봉행하면서 왕릉 앞에서 임시 단을 설단하고 초라하게 지내던 것에 비하여 숭덕전을 건립하여 여법하게 추모제를 지내겠다는 공주시민들의 마음을 담아 이룩한 전각이라 사모의 마음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숭덕전에 대하여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전각의 이름인 숭덕전이 처음이고 전각에 모신 왕들의 신위에 대한 것이 두 번째며 전각의 방향이 세 번째이고 네 번째는 전각이 앉은 자리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전각의 규모와 건축양식입니다.

애초에 숭모전이라 이름 하기로 하였다가 후에 숭덕전으로 바뀌게 된 것의 사유를 들으니 동학사에 숙모전과 발음이 비슷하여 혼동을 줄까봐 숭덕전이라 하였다 들립니다. 이름이 비슷하다면 역사에 근거를 두고 다시 생각해 보았어야 하는데 어디선가 내가 찾아 지적한 대로 숭덕전이라는 이름은 경주에 있는 신라왕의 시조 박혁거세 사당 이름이 숭덕전입니다.

백제 4왕들을 모시면서 시조인 온조왕을 모신 것은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지만 경기도 광주에 있는 온조왕의 전각 이름은 숭열전입니다. 그렇다면 숭덕전보다는 숭열전이 차라리 백번 나은 이름이 될 것입니다.

백제왕의 신위를 모신 전각 이름이 신라왕의 전각 이름과 같아서야 어찌 백제왕의 신위를 모신 곳이라 하겠습니까. 참고로 고구려 시조의 사당 이름은 숭의전입니다.

역사에 근거를 댑니다.

1795년 9월 18일 백제(百濟) 시조(始祖)의 사당의 명칭인 묘호(廟號)를 숭렬전(崇烈殿)이라 하였다. 광주 판관(廣州 判官) 이시원(李始源)이 아뢰기를, “광주부(廣州府)에 백제 시조의 사당이 있는데 아직도 그 이름이 없으니 외람스럽기만 합니다. 마전(麻田:경기 연천)의 숭의전(崇義殿)이나 평양(平壤)의 숭령전(崇靈殿)과 같은 예에 의거하여 예문관으로 하여금 편액(扁額)의 이름을 정하게 한 뒤 광주부(廣州府)에서 써서 편액을 거는 것이 좋겠습니다.”하니, 정조가 하교하기를, “역대 후왕(后王)을 제사지내는 곳에는 모두 부르는 이름이 있으니 단군(檀君)과 동명왕(東明王)의 숭령전(崇靈殿)이나 신라(新羅) 시조의 숭덕전(崇德殿)이나 고려(高麗) 시조의 숭의전(崇義殿)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유독 백제 시조의 사당에만 아직껏 전호(殿號)가 없다니 이는 흠이 되는 일일 뿐만이 아니라 공사(公私) 간의 문적(文跡)에 이름을 가지고 임시로 일컫는 것은 외람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일단 그런 줄 안 이상에는 즉시 바로잡아 고쳐야 마땅하니, 숭렬전이라는 칭호로 문헌비고(文獻備考)와 대전통편(大典通編)·오례의(五禮儀) 등 책을 즉시 세보 개정(洗補 改正)토록 하라. 그리고 마침 연석(筵席)에서 하교하는 일이 있게 되었으니, 숭렬전의 편액(扁額)은 대신에게 명하여 쓰도록 하고, 편액을 거는 날에는 수신(守臣)을 보내어 제사지내 주도록 하라. 제문(祭文)은 내가 직접 짓겠다.”하였다.

두 번째는 숭덕전에 모신 왕들의 신위에 대해서입니다.

문주왕부터 무령왕까지 4왕을 모시던 제향이 지난해 숭덕전을 짓고 나서 의례를 집전하는 집사가 오왕 추모제라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온조를 모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거기에 더하여 공주에서 태어나 왕세자로 30년을 살고 30여세에 왕위에 올라 무령왕의 국상을 치르고 대통사를 건립하며 백제 율장을 완성하느라 45세까지 갱위강국의 기반을 닦은 성왕의 치세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성왕은 그 사이에 부여에 천도해 갈 준비를 하면서 궁성을 짓고 사비백제의 근간을 마련하였을 것이니 그 공과 노력을 생각한다면 숭덕전에 성왕의 신위를 모신다 하여 흉이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는 5왕 64년에서 4왕 49년으로 축소시켜 성왕의 치세 15년을 외면하는 자충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전각의 방향에 대해서입니다.

옛 부터 군왕이나 성현은 남면이좌 한다 하여서 궁성을 짓고 어좌를 모실 때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게 합니다. 그런데 숭덕전의 방향은 서향이면서 국궁장에서 쏘아 대는 화살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형국으로 방향이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백성들이 왕의 무덤을 향해 활을 쏜다며 식자들이 지적하였었는데 이번 숭덕전의 방향이 남쪽을 향해 지어졌다면 이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신위를 향해 매일 활을 쏘아대던 형국을 벗지 못했습니다.

네 번째는 숭덕전의 위치입니다.

숭덕전이 지어진 곳은 예전에 왕릉을 관람하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의 공용 화장실이 있던 자리로 추정됩니다. 하필이면 자리를 정한다는 것이 화장실로 사용하던 자리이니 이는 진정으로 왕의 신위를 모시는 명당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현재의 숭덕전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구릉을 넘어가면 왕릉 주차장이 나옵니다. 이 주차장의 윗부분 구릉을 자리로 하여 남향으로 전각을 지었거나 매표소 근처에 지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올해 부여도 6대왕 숭모전을 짓겠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부여와 공주가 대비되는 것이 있습니다. 공주는 20여억원을 들여서 숭덕전을 정면 삼칸 집 20여 평으로 지었는데 부여는 30억을 들여서 정면 5칸 집 30여 평으로 짓는답니다.

경비와 칸수와 면적도 비교되지만 부여의 숭모전 건축 양식은 백제의 건축 양식인 하앙식 기법을 써서 짓는다는 것입니다. 이 하앙식 기법이라는 것은 지금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화암사에만 유일하게 남아 전해지는 백제식 건축 양식을 말합니다.

부여는 백제식 건축 양식을 추모관 건립에 적용하여 오래도록 역사에 남을 건축을 하겠다고 하는 모습에서 우리 공주가 지은 숭덕전의 모습은 비교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기왕에 지어 진 건물이니 그냥 쓰자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한번 잘 못 된 것을 그냥 넘기면 이것이 관행이 되어 또 다른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조차 없어지게 됩니다.

하여 나는 숭덕전의 이름을 숭열전 혹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위치와 방향도 주차장 뒷부분 산언덕이나 왕릉 매표소 쪽으로 옮기고 남쪽을 향해 위치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성왕의 신위도 한분 더 모셔서 웅진백제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도록 숭덕전의 이동을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습니다.

요즘은 지어진 건축물을 있는 그대로 해체하지 않고 옮기는 최신 공법이 있다 들었습니다. 애초에 자리가 아닌 자리이고 방향이나 위치는 물론 이름도 이름이 아닌 이름을 썼다면 이제는 이와 같은 점에서 다각도로 논의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훌륭한 인사들의 의견을 듣고 문화재청의 허가를 득하고 지었다지만 “아닌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뜻있는 학자들의 고견을 경청합니다. 백제의 얼과 정신문화를 살리는데 이만한 일보다 더 급한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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