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 니키 드 생 팔 Niki de Saint Phalle, 장 팅겔리, 스트라빈스키 광장, 파리

무더위로 옆에 있는 사람도 거추장스럽고 밖에 나가기도 겁나는 뜨거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한 달은 비가 오지 않고 더울 것이라고 한다.

수년의 오랜 기간을 땅속에서 지낸 매미는 자신을 알아 달라고 우렁차게 울고, 밭에 작물은 새벽이슬로 간간히 목을 축이고, 풀도 힘을 잃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무성하고, 그 풀을 깎는 예초기 소리가 요란하다.

산속에 있는 작업실이지만 실내온도는 30’C,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른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다. 괜스레 짜증이 나고 옆에 있는 누군가와 부딪히면 주먹이라도 올라갈 판이다. 더위 때문에 싸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불새, 높은음자리표, 나선 스파이럴, 코끼리, 여우, 뱀, 개구리, 대각선, 죽음, 사이렌(인어), 나이팅게일, 사랑, 생명, 심장, 모자, 래그타임 등 16개의 조각품들이 물을 뿜으며 열심히 움직인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옆에 스트라빈스키 광장에 분수는 색색의 재미있는 형태가 동화 속 세상 같다. 색이 화려한 다양한 조각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팅겔리는 전통적인 조각처럼 장엄하고 우뚝 선 것이 아니라 모터와 기계 장치를 결합하여 조각이 움직이게 만들었다. 모든 조각은 천천히 빙글빙글 돌며 그 자리에 있는 관람자들에게 전체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퐁피두센터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도 하지만 분수 주변은 늘 젊은이와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현대음악연구소(IRCAM) 작곡가와 지휘자였던 피에르 불즈는 분수의 주제로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파리시에 제안했고 키네틱 아트 조각가 팅겔리와 니키 드 생 팔 부부가 그 일을 하였다.

팅겔리는 전기동력을 이용하여 조각들이 움직이도록 했으며, 동시에 대중들의 안전을 위해 전력을 낮추는 기술을 사용했다. 봄의 제전이 초연될 때 관객은 새로운 낯선 음악에 야유와 박수를 동시에 보냈다고 하는데, 스트라빈스키 분수도 새로운 시도였다. 청동이나 돌로 만든 전통적인 분수 조각과는 다른 느낌으로 친근하게 우리의 눈높이로 움직이는 분수를 만들었다.

니스를 여행하며 니스 현대 미술관에서 니키 드 생 팔의 사진을 처음 보았다.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 뚫어질 듯 직시하는 시선은 평범하지 않았다. ‘보그’와 ‘라이프’지 표지모델을 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십대에 아버지에게 받은 성적 학대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그림을 접하였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아버지와 나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사랑이었던 모든 것이 증오로 변했다. 나는 살해되었다고 느꼈다.”

니스의 한 병원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림 수업에 매달렸고 그림은 그를 변화시켰다. 초기 ‘아상블라주’ 연작에는 그의 상처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무딘 칼, 부러진 쇠꼬챙이, 녹슨 못과 가위, 파편, 인형, 옷 등 자르고 잘리고 깎고 구멍 내고 다치게 하는 것이 화면에 가득하다. 상처받은 사람이 밖으로 드러낸 뾰족한 것들 이다. 피 흘리던 괴물 같은 모습은 파괴를 지나 화려한 색으로 바뀌며 풍만하고 즐거운 ‘나나’로 친근하고 따뜻해진다.

그의 작품에서 따스함이 묻어나기까지는 자신을 바라보고 피 흘리고 치유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알록달록한 환희와 풍요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작업은 자신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술작품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 사회, 그들의 삶을 관통하며 대변한다. 그리고 치유한다.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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