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사 주지 해월스님

오늘 원효유치원에 갔다가 큰 샘 앞에 새로이 설치한 조형물이 있어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두 분 어머니들은 한분은 빨래를 하고 또 한 분은 저녁 밥 지을 쌀을 씻으시는 듯 보이고 그 모습을 바라 보는 딸이나 동네 어린이가 등에 어린 동생을 업고 있는 모양입니다.

엄마들은 가족들 옷가지를 빨래 방망이로 탁탁 쳐서 세탁을 하면서 일상의 고단함을 이겼을 것이고, 어린 아이들은 언니 동생이 서로 힘을 합해 부모님의 힘겨운 삶의 날 들 영상 위에서 작은 즐거움과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봉황동 큰 샘

내가 원효유치원을 짓기 전 원효사 포교원에 살기 시작한 것이 1984년 출가한 때입니다. 그 때는 큰 샘 위로 박씨댁 가게가 있고 샘 위로는 함석을 씌운 덮개가 있고 앞쪽으로 물을 길어 빨래를 하거나 여름 더위를 이기도록 근방 집들에서는 김치통과 수박등을 넣어두고 시원하게 내서 나눠 먹던 정경이 눈에 선합니다.

가게가 있으니 남정네들은 모여 저녁에 소주를 한 잔 하기도 하고 마을 여인네들은 들마루에 모여서 차를 나누며 이런 저런 가족사 이야기에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였습니다.

동네 어린이들 가운데 개구진 아이들은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목간을 하기도 하고 더 한 녀석은 우물에 매달렸다가 떨어져서 끄집어 내기도 하는 등 위험한 순간도 없지 않았지만 백제시대 아마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오는 큰 샘의 역사는 공주의 역사에 다름 아닙니다.

89년에 유치원을 짓고 개원하니 동네 아이들 모두가 유치원 놀이터에 와서 노느라 밤이 깊어서야 몰아낼 만큼 바글바글 댔던 동네인데 지금은 동네 아이들 노는 소리가 끊어지고 유치원 아가들 노래와 함성 소리만 남았습니다.

그랬던 큰 샘이 원효유치원을 짓느라 길 모양이 조금 달라지고 그 뒤로 소방도로가 생기는 과정에 가게와 주변 집들이 헐어지면서 덮개조차 벗겨 내더니 저 지난 해인가 목조 기와 지붕으로 덧씌우고 우물 주변을 정비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 큰 길로 내려 가는 도로를 정비하면서 저렇게 조형물을 만드니 나름 운치 있는 명소가 될 듯 합니다. 저 조형물을 보면서 나는 아직 공주에는 세워 지지 않은 소녀상을 대신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저렇게 어린 소녀들이 왜놈들의 노리개로 끌려 갔을 것이고 특히 큰샘이 있는 봉황동은 일제 강점기 왜구들이 제일 많이 살았던 근거지가 되었었기 때문입니다.

궁정이라고도 소개되는 큰 샘은 아직도 물이 철철 넘쳐 흐르는지라 그 수량이 적지는 않을 터, 시청 바로 옆에 있는 해지개 물과 아울러 금학, 봉황, 반죽동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샘입니다.

큰 샘에서 봉황산 기슭 서역골로 넘어가는 고개 말랭이에도 샘이 하나 있어서 그곳에도 시에서 목조 기와 지붕으로 덮개를 해 비 가림 조치를 해 놓았으니 대략 200여 미터 거리를 두고 두개의 샘물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오늘 공주시와 문화원에서 주도한 공주의 옛이야기를 나누는 연세드신 분들 모임이 있어 갔었습니다. 구 의료원 건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였지만 일단은 노후된 건물을 헐어내고 공주 목 관아 건물을 재건하는 쪽으로 중의가 모여지는 것 같습니다.

고려 성종조에 지정된 공주 목 관아가 만들어 지면 당시에 관할이었던 대전 유성과 진잠, 세종시로 편입된 연기군 연산, 진산, 온양 등이 공주 목의 관리하에 있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될 것입니다. 속으로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하면서 점심 식사와 이야기가 마쳐질 무렵 나는 제안하였습니다.

지금 참여하신 20여분의 머리 속에 있는 공주의 이야기를 우선은 생각나는대로 공책에 제목을 적어 보고 이야기를 붙여 가며 거듭 만나는 모임에서는 각자의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 내어 공주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해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건과 인물 학창시절 전통놀이, 공주의 변천사 제민천과 금강
공산성과 앵산공원의 추억, 수원지와 봉화대 우금치와 서역골
백제문화제 참여기와 고마나루의 추억 등등

아마도 스무명이 모이면 스무권의 공주 이야기가 만들어 질것이니 이 좋은 만남을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분기별 혹은 이삼개월에 한번씩 뵙고 이야기 나누자 하였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대통사지 주변에 유물관을 만들고 대통사 당간지주가 공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도록 해보자 제안할 생각입니다.

물론 유네스코 등재된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들이 공주를 대표하지만 시민들의 삶의 터전 중앙부에 있는 대통사와 당간지주야 말로 그에 못지 않은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주 목 관아 건물이 지어지고 대통사지가 중간에 위치하며 충청감영이 봉황산 아래 복원이 되면 세가지의 역사성 있는 건물과 사지가 대통사와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일직선 상에 놓이게 되는데 공산성이 중심이 되던 역사 이야기가 일반 민초들의 삶과 애환의 이야기로 한단계 더 승화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금방은 안 되겠지만 이번 주말에 문화재 야행 행사에서 대통사지 당간 앞에 성불도를 펼치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면서 마당놀이, 성불도놀이를 하는 것으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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