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나루-공주지역을 중심으로’ 강의서 밝혀

“충남학강좌를 들으며 금강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수년 동안 금강에 매달리다 보니 이제 금강이 충남의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됐다”는 박광수(금강역사문화콘텐츠개발원)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11월 19일 공주학연구원 고마나루실에서 개최된 제48회 공주학광장 초대손님으로 나선 박광수 교수는 “역사서에 기록된 금강의 명칭은 백제시대는 웅천(熊川 1145년경 삼국사기), 사비하(泗河 삼국사기), 백강(白江 502년 삼국사기)으로 불렸고, 통일신라 때는 웅천하(熊川河 1817년 경세유표 3권),  사비하(泗河 1817년 경세유표 3권)로, 고려시대는 공주강(公州江 934년 훈요십조)로 불렸다고 한다.

이어 조선시대에서 금강(錦江 1451년경 고려사지리지)과 웅진(熊津 1431년 세종실록지리지)로 불렸다.

공주의 나루 18곳이 표시된 지도

박 교수는 “금강의 명칭이 100개가 넘는다. 또 나루의 명칭도 208개가 되는데 이는 이는 전북 장수군 뜬봉샘에서 발원하는 금강변의 마을의 이름이 다르고 거기에 살고 있는 마을의 주민들의 사용하는 언어와 정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주지역의 나루가 석장(금벽)나루, 오얏골나루, 장깃대나루(금강나루), 음암진나루(음암나루, 산성나루)의 옛 지도를 보여주는 한편 예전 신문에 기사회된 금강교의 설치와 6,25 때 폭파된 금강철교 사진을 설명했다. 

“공주지역에는 18개의 나루가 있었다”는 박광수 교수는 옛날 금강 사진의 지명이 오류를 지적, 옛사진과 요즘 촬영한 사진을 비교분석하면서“이렇게 잘못된 표기는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측 흑백사진의 '말어구나루' 표시는 잘못된 것으로 뒷쪽 느티나무가 오른쪽 고마나루 나무임을 증명하는 요즘사진

그러면서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의 삼강주막을 예로 들면서 “공주 고마나루에도 고마나루 주막을 만들면 공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공주의 역사와 함께 금강의 옛 나루문화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강과 고마나루 항공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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