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이란 우리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것을 통틀어 일컫는다. 그것에는 문화재로 등록된 국보급 유물에서부터 지방 민속자료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유산이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조상들의 삶의 단면과 정신적인 흔적을 보면서 오늘을 재조명하면서 보다 나는 내일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것이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을 물려주어야하는 이유이다.

○일신천돌다리

△ 2004년 6월 6일
정안천의 옛 지명은 ‘일신천(日新川)’이다. 공산지(1859년)에 ‘일신북천(日新北川)은 공주에서 북 10리 쌍령(雙嶺)에서 발원하여 웅진으로 유입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전라도에서 올라 와 금강의 장깃대나루나 오얏나루를 거쳐 일신천을 따라 전의, 천안으로 해서 한양으로 올라간 옛길에는 ‘일신역(日新驛)’에 머무르거나 인근 하주막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면서 쉬어가기도 했다.

이곳에 ‘일신천돌다리’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있다가 금강의 골재 채취로 하상이 낮아지면서 2000년대 초 돌다리가 드러났다.

△2019년 2월 14일
2008년 3월부터 정안천 생태공원 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일신천돌다리가  모습을 감추었다. 현재 모래사장 위로 돌다리의 흔적인 큰 돌과 돌을 지탱해주는 목척 만이 일신천돌다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2004년 6월 6일
정안천 제방 위에서 본 일신천돌다리 전경이다. 일신천돌다리가 언제 건설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지만 일신역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실에서 이곳이 공주의 중요한 곳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2004년 6월 9일
공주향토문화연구회에서 일신천돌다리를 답사하는 모습이다. 멀리서 보아도 꽤 큰 돌들이 정교하게 쌓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2019년 2월 14일
현재의 모습으로 주차장 아래 쪽에는 일신천돌다리의 큰 돌들이 나무 수풀 숲에 가려져 있다.  정안천 생태공원 조성 당시 이 돌다리를 활용하였더라면 우리의 유산도 지키면서 공주의 명물이 되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지금이라도 일신천돌다리를 복원하여 공주의 문화유산을 하나 더 찾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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