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임시정부청사에 울려퍼진 독립군 아리랑

1.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이조왕 말년에 왜난리나니 이천만 동포들 살길이 없네.
2.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일어나 싸우자 총칼을 메고 일제놈 처부셔 조국을 찾자.
3.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내 고향 산천아 너 잘 있거라 이내몸 독립군 떠나 가노니
4.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부모님 처자들 이별을 하고서 왜놈을 짓부셔 승리한 후에
5.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태극기 휘날려 만세만만세 승전고 울리며 돌아오리라

위 노랫말은 일제 강점기 독립군들이 불렀던 ‘독립군 아리랑’ 전문이다. 이 ‘독립군 아리랑’이 6월 9일 중국 상해 임시정부청사 앞에서 불려졌다.

이번 행사는 공주아리랑회(회장 이걸재)가 중국 상해에서 개최된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주년 기념 ‘2019 제8회 중국 상하이 엠파이어스테이트 국제드럼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공연을 마친 뒤 기념관을 방문한 것이다.

이걸재와 공주아리랑회원들이 청사 앞 골목길에서 '독립군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

원래는 아리랑 3곡을 부를 예정이었지만 청사 입구 골목길에서 ‘독립군 아리랑’만 불렀다. 관광차 왔던 관광객들이 경외의 눈길로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왜냐하면 중국 당국이 이곳에서의 집회나 현수막 등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기념관 안에서 노래는 커녕 사진 촬영도 금지돼 있다. 게다가 임시정부청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모두 중국인들로 한국말을 모르기도 하지만 우리와 말을 하려고도 하지 않아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향땅을 떠나 조국독립을 위해 일군과 싸웠던 독립군들의 한 맺힌 절규와 피멍이 노랫말 곳곳에 스며든 아리랑을 공주아리랑 회원들은 조용하나 힘있게 불렀다.

중국 상해시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유적지 전경

'태극기 휘날려 만세만만세'를 부르는 이걸재 소리꾼

일반적으로 제일 많이 불리는 아리랑이 3분박의 세마치 장단인데 반하여 ‘독립군 아리랑’은 4분의 2박자인 행진곡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행진곡풍의 ‘독립군 아리랑’ 가락이 처연하게 들리는 것은 기자만의 느낌이었을까? 마지막 5절에서 이걸재 소리꾼은 특유의 한이 서린 탁음으로 “태극기 휘날려 만세 만만세”를 가슴 저미게 외쳐 이를 지켜보면서 함께 불렀던 한국 관광객들과 일행 모두의 눈시울을 적시었다. 

‘독립군 아리랑’ 노랫말은 백범 김구 선생이 지어 연변 조선족들 사이에 불러오던 것을 이십여 년 전 민속학자 故 심우성 선생이 채록하여 이걸재 소리꾼에게로 이어졌다.

김구 선생 집무실 전경

영상관에서

일제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의 상해(1919)를 시작으로 항저우(1932), 난징(1937), 창사(1937), 광저우(1938), 류저우(1938), 치장(1939)을 거쳐 충칭(1940)에 이르기까지 임시정부청사를 7번이나 옮겨가면서 나라를 찾기 위해 온갖 고초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노력했던 한 맺힌 흔적들은 그리 넓지 않은 기념관에 전시되어 후손인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청사 앞 기념비에는

이곳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26년 7월부터 1932년 4월까지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한 역사 깊은 장소이다. 이 청사는 상해시 정부와 대한민국 독립기념관 등 한 · 중 양국의 협조로 이곳을 떠난지 60년만인 1993년 4월 13일 1차 복원하였고, 2001년 12월 건축물을 전면 보수하고 전시 시설을 확장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유적지로 단장하였다.
大韓民國臨時政府旧址管理处
2001年 12月19日

라고 씌여져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복원 기념비

대한민국임시정부유적지 현판 앞에서 기념촬영

이걸재 소리꾼은 방명록에 “이제야 왔습니다. 부끄럽습니다”라고 적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자꾸 돌아보는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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