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의 만추 소정 변관식(1899~1976) 1957, 종이에 수묵담채, 115.3 x 264㎝. 국립현대미술관

잠잠하던 수묵화 전시가 풍년이다. 국립 중앙박물관 근대 서화전, 현대 화랑과 갤러리 현대에서는 청전, 소정 전시가 열렸다. 수묵을 드로잉 재료로 사용하는 정도인 문외한이 한 수 배우기 위해 전문가와 동행하기로 했다.

80년대에 소정과 청전 전시가 동산방화랑에서 있었고 리포트를 쓰기위해 전시를 보고 뭐라고 썼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호방한 필선, 단아한 필선, 한국적인 풍경… 이런 단어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소정과 청전 이름마저 오락가락해서 변관식인가? 이상범? 그림과 이름, 호를 연결하고 그림을 구분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동양화(그 당시는 한국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에는 관심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 이후 대학 졸업작품으로 먹물을 쏟아붓고 덧칠하고 번지는 기법과 아크릴, 안료로 효과를 낸 추상작품을 하며 재료를 실험하기도 했다. 먹은 다양한 색과 분위기, 울림이 있는 강렬한 색채이다.

서양의 유명한 화가들에 비해 한국화가는 일반에게 덜 알려져 있다. 한국화와 작가 연구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정 변관식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면, 조선시대 마지막 화원화가 조석진의 외손자이고 조석진은 어해도로 유명했던 조정규의 손자였으니 화가로서의 재능을 타고났다.

1916년경 서화미술회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하며 조석진, 안중식 등으로부터 화풍을 이어받는다. 이 시기에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출품하여 4년 연속 입상하며 화가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23년에는 당시 화단에 확산되는 일본화풍을 전통화단에 접목하고 서구의 사생개념을 도입해 근대적인 산수화를 개척하려고 했던 젊은 화가 그룹인 동연사(이상범, 노수현, 이용우)를 조직했다.

1925년에는 선전 심사위원 고무로 스이운과 인연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고 우에노 미술학교 청강생으로 일본 신남화를 접하게 되고 몽환적이고 둥글고 부드러운 신남화풍 영향을 볼 수 있는 그림을 선전에 출품한다.

1928년 귀국한 후로는 금강산을 주유하고 묘사한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고 선전출품을 중단하며 해방 이전까지 방랑과 사생으로 전국을 여행하며 한국의 향토미와 아름다움을 그렸다. 1937년 내선일체, 민족말살정책으로 서화협회가 해산되자 금강산에 들어가서 사생과 소묘를 제작한다.

해방 이후에는 민족미술 확립을 목표로 조선미술 건설본부가 세워지자 이에 참여하였고, 국전 심사위원을 맡았으나 심사위원 선정의 비 공정성을 폭로하고 국전 출품을 중단하며 편파적인 심사를 비판한다.

이 시기부터 재야작가로 금강산도 제작에 몰두하여, 젊은 시절 망국의 한을 달래며 주유하던 금강산 봉우리와 골짜기는 현장감 있는 실경산수로 탄생한다.

‘농촌의 만추’는 전통산수와 다른 구도가 눈길을 끈다. 하늘과 원경, 근경이 일반적인 산수와 다르게 하늘이나 언덕에서 내려 본 땅이 화면에 가득 차게 과감한 구성을 했고 그 사이로 크고 작은 나무를 원근에 따라 그렸다. 짧고 습한 묵선과 묵점을 촘촘히 쌓아 산등성이를 구축하였다.

묵필들 사이로 보이는 먹의 다양한 층차는 여러층의 먹이 쌓여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꿈틀대는 듯한 화면을 만들고 움직이는 3D 화면을 보는 것 같다. 추수가 끝난 논의 구획, 구릉, 초가와 쌓아 놓은 낯가리는 층층이 쌓은 묵선과 묵점으로 음영을 만들어 양감을 준다.

굽은 둥근 획 풀포기, 초가 뒤의 대나무밭은 선이 중첩되어 가볍게 흔들린다. 당당한 필치로 그린 짙고 단단한 나무, 짧은 선과 점으로 그린 구릉과 언덕, 굽은 선으로 그린 풀과 대나무,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필선으로 표현한 풍경은 다양한 모습의 선명한 음영으로 한 화면에 어울려있다. 해질녘 소를 몰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홀로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을 따라 함께 흙길을 걷는다.

소정과 청전의 전시를 보며 격동기에 화가로 살며 치열했을 그들의 삶과 그림을 생각한다. 그리고 각각 다른 그림 만큼이나 다른 그들의 일상도 생각해 본다.

소정 변관식, 마로니에북스 201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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