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鷄肋)

닭갈비라는 뜻으로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나 남 주기는 싫음을 일컫는다.
[후한서 양수 전 後漢書 楊修 傳]

양수(楊修)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이다. 뛰어난 재능에 많은 배움이 있고 풍부한 식견에 담이 크고 달변이었다.

효렴(孝廉)이란 관리등용 과목에 추천되어 조조(曹操)의 주부(主簿)가 되었다. 조조는 양수의 재능을 몹시 아꼈고 사랑하면서도 속으로는 시기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느 날 조조는 조성된 화원(花園)을 돌아보고 문 위에 활(活)자를 써놓고 돌아갔다. 관리인은 ‘활’자를 써놓은 조조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양수를 청해 물었다. 양수는 좌우를 둘러보고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문(門)에다 활(活)자를 썼으니 활(闊)자가 분명하오. 문이 넓다는 뜻이니 좀 좁히도록 하시오.”

관리인은 양수의 말에 따라 문을 좁히고 조조에게 보고했다. 조조는 문을 살펴보고 기뻐하며 관리인에게 물었다.

“이제는 제법 어울린다. 누가 내 뜻을 짐작하고 문을 고쳤느냐?”
“주부 양수가 가르쳐주었습니다.”

조조는 양수의 기지를 칭찬했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유비(劉備)가 익주(益州)를 영유(領有)하고 한중(漢中)을 병탄(竝呑, 남의 재물이나 다른 나라의 영토를 한데 아울러서 제 것으로 함)하자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유비의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전과는 조조에게 유리하지 못했고 군의 보급로도 원활치 못했으며 병사들의 사기도 저하되었다.

조조는 회군(回軍)하고 싶었으나 적의 비웃음을 살까보아 그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하후돈(夏候惇)이 오늘밤의 군호(軍號, 암호)를 물었다. 조조는 무심코 ‘계륵(鷄肋)’이라고 말했다.

조조는 본래 닭고기를 즐겼다. 거의 매일 닭고기를 먹었다. 하후돈이 군호를 물어 왔을 때도 저녁식사에 닭을 뜯고 있었다. 하후돈은 돌아가 예하 각 부대에 군호를 전달했다. 양수의 부대에도 전달되었다.

군호를 받은 양수는 소속 부대장병에게 짐을 꾸려 철수할 준비를 서두르라 명했다. 이 소식이 하후돈에게 알려졌다. 하후돈은 깜짝 놀라 양수를 불렀다. 양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계륵이란 먹으려니 맛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입니다. 지금 조조의 심정은 이곳을 지키자니 소득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마치 계륵과 같다고 생각하신 거십니다. 내일이면 철군령(撤軍令)이 내려질 것입니다. 영이 내려진 뒤에 서두르는 것보다 미리 해두는 것이 오히려 분주하지 않고 여유 있으며 질서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여 짐을 꾸리라 했습니다.”

하후돈은 양수의 말을 듣고 감탄해 마지않으며 부장들에게 철군에 대비하라고 일러 놓았다. 이날 밤 조조는 영내를 순시하다 하후돈의 진영에서 짐을 꾸리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급히 불러 물었다.

하후돈은 양수의 이야기를 낱낱이 아뢰고 철군령이 내려지기 전에 미리 준비하려는 것이라 했다. 조조는 속으로 몹시 놀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내심 불안했다.

‘이 자가 어찌 이다지도 내 마음을 꿰뚫는단 말인가? 이 자를 살려두었다가는 앞날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 기회….’

조조는 양수를 불러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짐을 꾸리라 했느냐?”

양수는 주저 없이 말했다.

“계륵이란 군호가 대왕의 의증을 나타내신 것으로 판단하여 뜻을 받들어 짐을 꾸리라 한 것입니다.”

조조는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네 감히 헛된 생각으로 군심(軍心)을 어지럽혔으니 어찌 살기를 바랄 수 있단 말이냐. 이자를 빨리 끌어내라!”

이때 천하기재(天下奇才) 양수의 나이는 아깝게도 38세였다. 그 후 조조는 얼마 안 되어 양수의 판단과 같이 소득 없이 철군하고 말았다.

출판사 다할미디어 (02)517-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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