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일이다. 공영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서울대 모 교수가 일본군 종군 위안부는 강제 동원된 것이 아니며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발언을 해서 큰 파문이 일었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그는 다음 날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고 계시는 곳에 가서 사죄를 했다. 할머니들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용서를 빌었지만 할머니들은 끝내 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자로서 당시의 자료들과 증언을 모아 연구하고 분석해서 그런 주장할 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 주장이 아무리 선의로 이루어진 객관적인 것이라 해도 결과적으로 일본 극우 보수파들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데 있다.

메이지 유신의 토대가 되었던 정한론(征韓論)과 그에 따른 식민사관에 뿌리를 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의 한국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기본 논리다. 그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는 우매한 한국을 근대화시킨 은혜로운 일이며 따라서 미개한 한국에게는 축복이었다고 주장한다.

일부 일본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겠지만, 식민 지배를 당한 한국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 만약 이를 용납한다면 목숨을 걸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운 독립투사들이나 독립운동의 역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그들 말대로 하면 유관순은 깡패고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 것이다.

왜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가. 여러 원인을 댈 수 있지만 나는 광복 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을 때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라를 팔아 호의호식했던 사람들을 철저히 색출해서 단죄하는 것이었다. 그게 인륜을 지키는 일이고 역사를 두려워하는 상식을 실천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는 일은 수포로 돌아갔다. 광복 후 숨죽이며 살 길을 모색하던 친일파들이 찾은 돌파구는 공산주의 반대였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강경하게 빨갱이 타도 대열에 앞장섰다. 테러와 암살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을 보호하고 반대파들을 타격하기 위한 빨갱이 척결은 그들의 가장 유효한 생존 수단이 되었다. 나아가 6.25전쟁은 이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친일파의 오명을 지워주는 것은 물론 일제시기에 누렸던 권력과 지위를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친일 정치군인의 집권과 더불어 그들은 승승장구하여 정계는 물론 재계, 학계, 법조계를 장악하는 우리 사회의 주류 세력이 되었다.

30여 년의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흔히 하는 분류에 따르면 진보 정권 10년, 보수 정권 9년, 그리고 다시 현재의 진보 정권이 들어섰다. 그런데 현재 여당과 야당의 정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선진국의 보수와 진보 정권의 작동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정책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려는 경쟁이 아니라 어떻게든 상대방을 꺼꾸러뜨려서 정권을 빼앗겠다는 진흙탕 싸움에 빠져 있다. 그 가운데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조롱, 혐오와 막말뿐이다. 나는 이 싸움을 큰 범주에서 친일파적인 사람들과 진보적인 사람들의 지속적인 대결로 파악하고 싶다.

그래서일까. 요즘 야당에서는 입만 열면 현 정권을 가리켜 종북좌파라고 공격한다. 현 정권이 종북이고 좌파라면 이건 정말 큰일이다. 우리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되어 있으니 좌파 정권이라면 이건 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또한 국가보안법에서는 북한을 반국가단체 취급을 하고 있으니 종북이라면 이는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 속히 법원에 제소하여 법 저촉 여부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야당에서는 이런 공격만 할 뿐 그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 이는 종북좌파란 게 실체라기보다 정치적인 공격의 수사임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현재 일본 민간기업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로 인한 불매 운동과 반일 감정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일부 보수 진영과 언론에서 일본의 혐한 표현과 유사한 보도를 해서 말썽이 되고 있다.

제발 일본의 보수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고 배우길 바란다. 보수의 가치인 애국은 정권 공격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말든 정권만 무너뜨리면 된다는 생각은 ‘노적에 불 질러 놓고 튀밥 주워 먹는다.’는 속담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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