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전국에서 이와 관련한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 영명학교 뒷산 언덕에 건립된 ‘유관순 소녀와 사에리시 선교사 부부 동상’

‘3·1 만세운동’하면 먼저 ‘유관순 열사’를 떠 올리는데 천안 목천이 고향인 유관순 열사가 공주 영명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유관순은 13세(1914년)에 공주제일교회 선교사인 미국인 사에리시를 만나 공주 영명학교에 입학한다. 유관순의 총명함을 눈여겨본 사에리시 선교사는 그녀를 양녀로 삼고 2년 후 근대교육을 받도록 서울 이화학당(보통과 3학년)으로 전학 시킨다.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은 학생단 시위운동 참여 후, 1919년 3월 천안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가족을 잃고 공주형무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친오빠인 유우석도 4월1일 공주에서 시위 주도로 붙잡히게 된다.

유관순은 공주법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선고에 항소하였지만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고 옥중에서 받은 모진 고문으로 인해 출소 이틀을 남기고 순국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 19세였다.

유관순의 청소년기, 사에리시 선교사와 공주에서 함께 보낸 2년의 시간은 조국을 빼앗긴 우리 민족과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는 소중한 시간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만약 ‘공주에서의 2년’의 시간이 없었다면 3·1운동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정부는 3·1운동의 상징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어 지난 2월 국가 유공자 1등급 ‘건국훈장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또 공주시는 ‘이달의 역사인물’을 선정, 3월의 인물로 유관순 열사(1902~1920)와 김현경(1897~1986) 두 여성독립운동가를 선정했다.

김현경은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었을 때에 면회를 가는 등 뒷바라지를 했으며, 1920년 9월 옥중에서 순국한 유관순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루었다. 김현경은 영명여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활동 중 공주시장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지난 3월1일 영명학교 뒷산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등록문화재 제233호) 옆 언덕에 ‘유관순 소녀와 사에리시 선교사 부부 동상’이 건립됐다.

유관순 소녀를 독립열사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에리시 선교사 부부의 사랑과 헌신적인 교육의 힘이 아니었을까?

※ 이 원고는 도정신문  '생생현장리포트' 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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