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통신사 콘텐츠와 한일 교류 -

조선통신사 발자취를 찾는 두 번째 발걸음인 일본 시즈오카현(縣) 답사가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됐다.

무령왕국제네트워크협의회와 공주향토문화연구회가 주최한 이번 답사에는 주관처인 조선통신사 충청남도연구회 윤용혁 회장을 비롯한 회원 10명이 참여했다.

작년 일본 시즈오카 답사가 일본에서의 조선통신사 발자취를 찾기 위해 문을 두드린 답사였다면 이번에는 일본 시즈오카의 조선통신사 행사 참여와 민간단체와의 교류, 그리고 시즈오카縣 가와카쓰 헤이타(川勝 平太) 지사를 예방하는 일정으로 진행, 한걸음 나아간 본격적인 교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조선통신사, 평화의 사절단

조선통신사는 에도시대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외교사절을 말한다. ‘통신(通信)’이란 ‘신의를 교환한다’는 의미이며 조선통신사를 통한 교류는 조선과 일본의 평화와 선린우호를 상징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침공(임진왜란 1592-98)은 조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조선과의 국교를 회복하기 위해 조선통신사의 일본방문을 중요시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여 년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12차례에 걸쳐 방문했다. 제2회 방문은 교토(京都)의 후시미(伏見)까지, 제12회 방문은 쓰시마(對馬島)까지였으나 그 외에는 모두 에도((江戶)까지 왕복했고 제4회부터 제6회까지는 닛코(日光)에도 방문했다.

정사(正使)·부사(副使)·종사관(從事官)의 삼사(三使) 이하, 화원(花園)·의원(医圓)·역관(訳官)·악사(樂士) 등 총 300명에서 5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절단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출발해 일본의 수도인 에도(江戶)까지 약 3,000km의 길을 반년 이상 걸쳐 왕복했다.

긴 여로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많은 문인들과 필담으로 시가(詩歌)를 주고받고 술잔을 나누었다. 조선통신사의 행렬은 일본의 민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일본 각 계층의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조선통신사가 제2회와 제12회를 제외하고 10차례 방문했는데 특히 제1회 때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은퇴를 하고 순푸(駿府)에 있던 시기로 세이켄지(淸見寺)에 들른 통신사를 위해 미호(三保)에서 후지산 전망을 즐기며 유람하도록 배를 내는 등 환대했다.

조선통신사 정사를 태운 가마는 일본 사무라이들이 메고 갔다.

2.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 참가

구노잔(久能山) 도쇼구(東照宮)를 오르는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

사전에 조선통신사 행사에 참가해 달라는 일본측의 초청에 의해 답사 이틀째인 10월 19일,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에 참여한 조선통신사충청남도연구회와 민들레(일본의 시즈오카코리아장구교실 단체)는 조선통신사 복장으로 구노잔(久能山) 로프웨이를 타고 구노잔(久能山) 도쇼구(東照宮) 입구에 정렬했다.

조선통신사충청남도연구회 윤용혁 회장은 조선통신사 정사(正使)로, 정용서(충남수의사회 부회장)회원이 부사(副使)로, 임선빈(한국학중앙연구원)연구원은 종사관(從事官) 복장을 하였고 그 외 우리는 조선시대의 관리와 선비 복장을 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신사(神祠)인 구노잔(久能山) 도쇼구(東照宮)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당당한 걸음으로 도쇼구의 계단을 올라 갔다.

4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이 조선통신사 성신(誠信)의 정신으로 이곳을 걸어 갔던 것처럼...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에서 정사(윤용혁), 부사(정용서), 종사관(임선빈) 복장을 한 모습


신사(神祠)의 식전(式典)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윤용혁 회장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위령진혼을 주로 한 신사(神祠)의 식전(式典) 행사는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조선통신사 정사(正使)인 윤용혁 회장을 비롯한 일행은 당시의 선조들의 긴 여정에도 양국의 평화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성신교린’의 정신을 다시 새기었다.

3.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쇼구(東照宮)

일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평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일본의 상징 후지산이 있는 시즈오카는 전국(戰國)시대의 무장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도시이기도 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은 뒤,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에 나가 있던 일본 군대를 철수시키고 조선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조선통신사를 초청했다. 이때 ‘통신(通信)’은 ‘양국이 신의를 가지고 서로 교류한다’는 뜻을 가졌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출병(1592~1598)으로 단절된 조선왕국과 일본의 국교회복을 위해 조선통신사를 실현시켰으며 내란이 끊이지 않았던 전국시대를 끝내고, 평화로운 에도시대(1603~1867)를 열었다.

구노잔(久能山)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묘 앞에서 기념촬영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16년 75세에 순푸성(시즈오카시)에서 생을 마감할 때 그의 유해는 유언에 의해 구노산(久能山)에 안치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슨푸성에 머물고 있을 당시 “구노지(久能寺)는 슨푸성의 아성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구노죠(久能城)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그때 건립(1617)된 것이 일본 최초의 구노잔 도쇼구이다. 일본 전국에 있는 도쇼구의 발상이 된 이 신사의 본전 정면 상부에는 구노산 도쇼구에서 제일 중요한 조각인 ‘레이쥬바쿠(영수의 하나인 동물)’가 있는데 이것은 누가 언제 목숨을 잃어도 내란상태이었던 당시의 일본을 평화로운 세상으로 변화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메시지라고 전해지고 있다.

구노잔 도쇼구의 문화재는 주로 건조물(신전 15동)과 미술공예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200점의 미술공예품 가운데 중 도구가와 이에야스의 유품을 포함한 185점이 국보 및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수장물은 도쿠가와 장군가(家)에 관한 것이 많고 특히 만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첫 출진 때 착용한 갑옷을 비롯해 15대 장군인 요시노부에 이르기까지 역대장군의 무기, 무구류가 전시되어 있다.

4. 시즈오카 민간단체와의 교류

일본팀의 '조선통신사' 연극

조선통신사 충청남도연구회의 '조선통신사 노래'

답사 2일째인 10월 19일, 조선통신사 재현 행사를 마친 일행은  오키츠(興津 생애학습교류관)관에서 민들레(시즈오카코리아장구교실의 민간단체)와 아유드림의 ‘조선통신사’ 연극을 감상했다.

일반인들이 기획하고 연기한 조금은 어설픈 연극이었지만 성의를 다하는 그들의 자세에서 양국의 평화를 바라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다. 작년에 인사를 나누었던 AYU드림의 아메미야 회장과 고이즈미 이사의 따뜻한 환대가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우리는 야심차게 준비한 백제춤과 조선통신사 노래(일본 동요를 개사한 노래)를 무대에 올렸다. 공연(?)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로 우리의 어설픈 공연을 축하해 주었다.

이렇게 두 도시간 시민들의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로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서로의 공연을 칭찬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마치 1000여 년 전 백제시대에 형제처럼 오가던 그날처럼.

일본 고고학회 등 관련학회와 민간단체와의 교류를 마치고 기념촬영

특히 이번 시즈오카에서 민간교류의 희망을 볼 수 있었던 점은 충청남도·시즈오카현 교류회에서 고고학회 우에마쓰 쇼하치(植松 章八) 회장을 비롯한 전문가와 향토사학자, 수의사협회 간부, 그리고 시즈오카縣의 외교담당 고위간부와 임직원들과 교육위원회 담당자 등 19명이 대거참석하여 심도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양 도시간 민간교류의 큰 발걸음을 떼었다고 생각한다.

근래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일본 방문이 긍정적인 답사가 될까라는 우려를 갖고 비행기를 탔던 일행에게 일본 민간단체와의 만남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

5. 시즈오카縣 가와카스 헤이타(川勝 平太)지사 예방

이번 일본 시즈오카 답사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 것은 시즈오카縣 가와카쓰 헤이타(川勝 平太) 지사를 예방하고 조선통신사를 비롯하여 양국 공동 관심사인 교류와 친교의 시간을 가진 점이다.

시즈오카縣 가와카쓰 헤이타 지사는 작년 9월 공주의 공산성과 무령왕릉을 방문한 바 있어 구면인 회원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특히 회의장에는 작년 공주 방문시 촬영했던 사진을 장식하여 가와카쓰 헤이타 지사의 조선통신사 충청남도연구회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기도 했다.

가와카스 헤이타(川勝 平太)지사 예방 후 기념촬영(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가와카스 지사)

가와카쓰 헤이타 지사는 먼저 “어려운 시기에 시즈오카현을 방문한 조선통신사 충청남도연구회를 환영합니다. 이는 양국의 우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고 서두를 연 뒤 “작년 공주 방문에서의 열렬한 환영이 어제 일처럼 느껴집니다”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이어 “칸무천황의 생모(高野 新笠 타카노노 니이가사)는 백제왕족의 후손입니다. 천황(4월30일 퇴위한 아키히토(明仁) 전 천황)께서도 공주 방문을 희망하고 있으며, 그래서 제가 작년에 무령왕릉을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피가 통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 교류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유산 조선통신사 자료를 잘 보존해야할 것입니다”라며 우애가 가득한 인사말을 하여 일행은 더욱 친근감을 느꼈다.

윤용혁 회장은 “시즈오카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조선통신사 기록물’ 자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며, 정례적인 조선통신사 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청견사의 통신사 자료 중에는 1763년과 1764년 이곳을 경유한 공주 인물 김인겸의 시문(詩文)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의 어려운 시기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성신(誠信)의 정신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금번 저희들의 시즈오카 방문이 조선통신사의 정신을 지역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습니다. 기회가 되면 충청남도 공주에서도 여러분을 다시 뵙고 싶습니다”라고 답례 인사말에서 밝혔다.

인사말을 마친 후 양측의 선물교환에 일본측은 조선통신사 인형을, 공주팀은 분청사기 도자기와 가와카스 헤이타 지사의 논문 ‘백제와 시즈오카의 인연’이 게재된 ‘웅진문화 제31집’을 각각 교환했다.

6.시즈오카의 조선통신사 유적

조선통신사가 걸었던 옛길을 걸어 해안암을 찾았다.

통신사 기록물은 1607년(선조 10)부터 1811년(순조 11)까지 조선이 에도막부의 초청으로 12차례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와 관련한 자료를 말한다.

시즈오카에는 ‘조선통신사 박물관’이라 일컬을 정도로 조선통신사의 시전(詩箋), 현판(懸板), 편액(扁額), 회화(繪畵) 등 유물이 제일 많이 남아 있는 세이겐지(淸見寺)를 비롯하여 시골의 산사에 많은 현판이 남아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조선통신사 전문가인 기타무라 긴야(北村 欽也 현조선통신사연구회 사무국장)선생의 안내와 설명을 받았다.  시즈오카를 다시 찾은 일행을 반기는 기타무라 긴야 선생은 여전히 열정적인 강의를 펼치는 모습에 다시한번 그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애정에 일행은 감탄했다.

기타무라 긴야 선생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우연히 시골 사찰의 조선통신사 편액을 본 뒤로 학교를 명퇴하고 조선통신사 관련 시골 사찰의 편액과 자료를 연구하고 있는 조선통신사 전문가이다.   

 특히 일본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마상재(馬上才 말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재주) 그림이 있는 동승원(東勝院)에 갈 예정이었으나 대형버스로 이동하다 보니 버스기사가 “높은 곳이라 갈 수 없다”고 하여 마생재 그림을 포기해야만 했다.

기타무라 긴야 선생은 다른 사찰 편액을 설명할 때마다 동승원의 마상재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을 몇 번이나 거론하며 아쉬워했다.

자봉(紫峰) 김천수(金天秀)가 쓴 해안암(海岸菴) 편액

설월당(雪月堂) 이삼석(李三錫)이 쓴  우란사(牛欄寺)  편액

- 해안암(海岸菴)과  우란사(牛欄寺) 편액 -

일행은 1748년 자봉(紫峰) 김천수(金天秀)가 쓴 해안암(海岸菴) 편액을 보기 위해 조선통신사가 걸었다는 옛길을 따라 갔다, 해안암(海岸菴)은 이름대로 바다를 끼고 있는 높은 벼랑 위에 있었다.

이어 우란사(牛欄寺)를 찾아 1682년 설월당(雪月堂) 이삼석(李三錫)이 쓴 현판의 글씨를 보았다. 우란사 주지는 현재 내걸은 것은 복원품이라며 당시의 현판을 보여주었는데 뒷면에는 ‘慧淳’이라고 씌여 있었다.

후지강 전경

- 후지강 배다리 -

공주 금강에는 ‘배다리’가 있어 일제시기 공주시민은 이 배다리를 걸어 금강을 건넜다. 지금도 금강에는 배다리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일본 시즈오카 후지강에도 배다리가 있었다고 하여 흥미로웠다.

일본은 조선통신사 일행이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물살이 빠른 후지강에 사람의 다리를 만들어 흐름을 약하게 하여 사람(조선통신사)을 태운 판자를 메고 강을 건넜다. 또 하물선 전용의 선착장 건설을 했다고 한다.

한겨울 추위에 기합을 넣는 남자들의 지르는 소리는 주변 마을에까지 퍼졌다고 기타무라 긴야 선생은 설명했다.

- 세이켄지(淸見寺) -

조선통신사가 쓴 현판, 편액, 시편 등이 걸린 청견사 경내

청견사 주련의 김인겸 글씨 1

청견사 주련의 김인겸 글씨 2

두 번째 방문이지만 경내와 본당에서는 공주의 인물 퇴석(退石) 김인겸(金仁謙)의 주련 글씨를 비롯하여 조선통신사와 승려들 사이에서 주고 받은 한시(漢詩)와 현판(懸板) 등을 반가운 마음으로 보았다.

세이켄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대가 바뀔 때마다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의 휴식장소로서 사용되었고 당시의 집터와 유물이 잘 남아 있어 시즈오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세이켄지에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본측 자료 209점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48점이 소장되어 있다. 

경기도 관찰사 홍계희가 조선통신사 정사로 다녀간 기록의 편액

이번 답사에 동참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임선빈 박사는 편액을 둘러보다 경기도관찰사 홍계희(洪啓禧 1703~1371)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무척 반가워 했다. 홍계희는 1748년(영조 24) 조선통신사 정사(正使)로 뽑혀 부사(副使) 남태기(南泰耆), 종사관 조명채(曺命采) 등 일행 500여 명과 함께 이곳을 다녀간 것이다.

청견사 앞에서

7. 조선통신사 콘텐츠 개발

공주시에서는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퇴석 김인겸 인물 조명과 여러 가지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 5월의 역사인물 ‘퇴석 김인겸’-

5월의 역사인물로 ‘퇴석 김인겸’을 선정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여러 가지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김인겸 묘 현장답사와 일동장유가 시가비, 충남역사박물관 등 답사와 김인겸의 생애와 계미통신사 사행길 기록 등에 대해 재조명하는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학술 세미나를 진행했다.

김정섭 시장은 “김인겸 선생은 공주출신 문인 중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다”며, “김인겸 선생과 조선통신사에 대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발굴해 지역 축제 등에 활용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일동장유가 출판 및 낭독대회와 묘소 정비 등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 발굴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국제학술세미나를 마치고 무릉동의 김인겸 묘를 답사한 모습

-‘공주·충남 지역 브랜드로서의 조선통신사’ 국제학술세미나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원장 박병희)에서는 10월 29일 ‘공주·충남 지역 브랜드로서의 조선통신사’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공주향토연구회와 조선통신사 충청남도연구회가 공동주관한 이번 국제학술세미나는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이 2017년 10월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2주년을 기념하고, 나아가 충남에 소재한 다양한 통신사 관련 자료들을 연계하여 충남의 지역 브랜드로서 부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조선통신사 정사기선 승선 체험을 마치고

- 조선통신사 정사기선 승선 -

공주향토문화연구회에서는 10월 25일 목포 조선통신사의 선상박물관인 조선통신사 정사기선을 타기 위해 공주를 출발했다. 작년의 조선통신사 정사기선 진수식 이후 국림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는 17∼19세기 200여 년간에 결쳐 한 일 양국 대외교류에 사용된 조선통신사 정사기선을 일반인을 위해 승선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었다.

우리 공주팀 외에도 전국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목포 앞바다를 항해하며 400여 년 전 조선통신사들이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현해탄을 건넜을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 보면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강원춘 연구원의 친절한 안내와 설명을 들었다.

배 안에는 역사적 고증에 의해 배를 제작하는 사진과 조선통신사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당시 최고의 조선기술로 제작된 최고급 선박’이라 쓴 자료 등을 전시하여 방문자들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었다.   

금강변에 있는 김인겸 시가비

금강변에는 국문학자들의 모금과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와 안동김씨대전종회 주최로 지난 1989년 일동장유가비를 세웠다. 그러나 금강변의 시가비(詩歌碑)는 접근성이 어려워 시가비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 시가비는 김인겸 공원을 조성, 이전하여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작년 시즈오카를 다녀와서 공주에 ‘조선통신사 바람’을 기대한다면서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한 적이 있다. 위와 같이 官, 學, 民이 한 마음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시작이 반’이란 말이 생각났다.  ‘조선통신사 콘텐츠 바람’이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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