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최명진 공주석장리박물관 학예연구사

구석기시대 인류는 현재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600만 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온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언어, 생각, 도구를 만들었다.

▲ 석장리박물관 입구

 

3가지 덕분에 현재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로 발달해 왔다. 이러한 특징이 형성된 시대는 백제도 아닌, 조선도 아닌 바로 구석기이다. 게다가 그들은 현재 우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창의력을 바탕으로 예술성을 가졌다.

피카소는 라스코 동굴벽화가 공개되었을 때  ‘도저히 원시인이 그렸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대 미술 어디에도 뒤떨어지지 않음을 시인했고 ‘그 이후로 우리는 아무것도 발명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그의 말에서 전해지는 구석기시대는 ‘위대함’이다.   

공주 석장리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살았던 위대한 조상들의 흔적은 그저 남의 나라일이라고만 생각되었다. 1964년 공주 석장리 조사 결과 한반도 구석기 인류의 정황이 명확해졌고, 이 후 우리나라 구석기 문화 연구가 가속화된 것은 두 번 말하면 입 아플 정도이다. 1990년에는 사적지정(334호), 2006년에는 석장리박물관이 건립되었다. 
             

 

▲ 2019년 특별전 ‘바다를 건넌 선사인들’ 관람모습

 

최초로 구석기를 알렸다(비록 남한으로 국한되지만)라는 사명감, 책임감은 현재 석장리박물관의 운영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석장리박물관을 통해 구석기 문화를 알리고, 세계 속 한국 구석기의 위상을 잡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필자는 2009년부터 매년 석장리박물관 특별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외국에 가지 않고도 석장리박물관에서 수준 높은 구석기 전시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취지로 매년 의미 있는 특별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2020년 5월 개최예정인 특별전시의 제목은 ‘사냥혁명’이다. 구석기 인류가 만들어낸 사냥도구들로 인류의 삶은 변화되었고, 그것은 작지만 느린 혁명을 의미한다는 내용이다.

필자가 본 전시를 기획한 것은 2019년 5월 즈음이며, 곧 바로 학술자료 수집을 마치고 그해 9월부터 구체적인 유물확보를 추진했다. (1회의 특별전시를 개최하려면, 보통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국내외 구석기 사냥도구의 비교 전시가 목표이지만 실상 다른 기관의 소장품을 모으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 독일 베를린 신 박물관

 

특히 국외는 각 나라 분위기 및 담당자와의 소통, 분단이라는 한국 사정, 국제운송 및 통관, 기관과의 협약 등 복잡 다단한 일을 헤쳐나가야 하므로 예상치 못한 난관이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열정적인 국외 연구자 또는 담당자들을 만날 때면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둘 때도 있고, 그 인연이 이어져 석장리박물관의 큰 자산이 되어 그 다음 전시에도 큰 힘이 될 때도 많다.

특히, 2018년 네안데르탈 전시를 통해 인연을 맺은 독일 국립 베를린 신 박물관(Neues Museum Berlin)이 그러하다. 베를린 신 박물관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베를린 박물관섬에 위치한 국립기관으로서 1843년~1855년 사이 건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에는 현재 선사 분야 전시장이 별도로 운영 중이며, 유럽의 구석기 유물을 다량 소장하고 있다. 베를린 신 박물관은 올해에도 소장품의 대여에 적극 협조 해 주고 있다.

 

▲ 선사유물 담당자인 닥터 에바 박사(오른쪽 마지막)

 

닥터 에바 박사(Ewa Dutkiewicz)는 구석기시대를 전공한 박사이자, 국립베를린박물관 학예연구사이다. 튀빙겐 대학 출신인 그녀는 2019년부터 베를린 박물관에서 선사유물 관련 담당자로 근무하고 있다.

석장리박물관 전시를 위해 소장유물검토는 물론 원고작성, 목록작성, 행정처리까지 다방면으로 안내, 협조해주고 있다. 그녀가 광범위한 베를린 박물관 소장품들 중 유럽의 구석기시대 시기별 대표 사냥도구를 선별해주엇다. 그중에는 최근 발굴된 독일의 유적지 출토 유물도 포함되었다.

현재 100여 점 정도가 확정되어가고 있는데, 베를린에서 그녀를 만난 2019년 11월 이후 전시유물선별에 대해 그녀와 내가 주고받은 메일이 약 60여 통에 이른다. 본래의 업무도 많은 그녀가 유물을 선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지 짐작하기에 그저 감동이었다. 아무 대가도 없이 말이다.

이런 적극적인 협조는 국내 박물관에서도 보기 드물다. 유럽인답지 않은 빠른 업무 처리도 놀랐지만, 구석기유물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이라도 쉽게 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마음을 가진 에바 박사를 통해 나의 의식과 자세를 다시금 고쳐먹었다.

 

▲ 에바 박사를 통해 섭외된 또 하나의 독일 구석기 관련 기관인 Palaeon센터. 건축의 나라 독일답게 박물관 외관도 유명한데, 박물관은 유적을 상징하는 나무창의 코드를 담았고, 유리벽으로 마감된 외장재의 특성에 따라 날이 맑으면 파란색, 흐리면 회식으로 색을 달리 했다.

 

뿐 만 아니라 그녀는 독일의 유명한 구석기 연구기관과 대학연구소를 연결해 주었다. 2019년 11월 방문 당시 나와 업무협의를 하는 중에 독일 각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녀의 친구이자, 선배, 후배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석장리박물관의 전시를 도와주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그녀는 석장리 유적에 대해 설명한 후 석장리박물관이 유럽의 유물들을 한국으로 대여해간 경험이 많다는 설명으로 나 대신 신뢰를 얻어주었다. 이 후 한국으로 도착한 후 출근해보니 나의 메일에는 그날 에바 박사가 협조를 요청했던 기관의 담당자들이 보낸 몇 통의 편지가 쌓여있었다.

에바 박사가 전화를 걸 때 업무 협의 하느라 유물 사진들 및 자료 등을 검토하느라 정신없던 나는 솔직히 그들을 몰랐다. 그런데 내게 도착한 메일에 적힌 그들의 소속을 확인한 결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신문에서, 논문에서만 보았던 유럽의 유명 유적과 관련된 박물관, 연구소였다. 심지어 에바 박사가 이야기한 날 또는 그 다음날 그들은 바로 내게 메일을 보냈다. 어떤 유물이 필요하냐고. 유럽이 이렇게도 속전속결이었던가

 

▲ Palaeon 센터의 펠릭스 힐구르버(Felix Hillgruber) 관장과 쉐닝겐 유적 출토 나무창 출토 사진

 

이렇게 소개받은 기관 중 하나인 독일 팔라온(Palaeon) 센터. 독일 하노버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가량 떨어진 쉐닝겐(Schoningen)유적에 건립된 조사 연구 센터이다.(2013년 개관) 쉐닝겐 유적은 인류의 최초의 원거리 사냥도구라 불리는 ‘나무창’이 거의 완벽하게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에 시작된 유적 발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최근에는 온전한 매머드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베를린에 이어 2020년 2월 이곳을 직접 방문하여 공주시를 소개하고 석장리박물관의 특별전시를 위해 유물 대여 협의를 진행했다.

긴 시간의 협의 끝에 쉐닝겐 유적 출토 나무창 뿐 만 아니라 창이 묻혀있던 지층의 흔적, 말머리뼈 등으로 대여품이 좁혀졌다. 현재는 어떻게 한국으로 들여올 것인지, 그리고 유물 보존을 위한 전시현장에 대한 면밀한 상황체크(온습도, 조도 등)를 긴밀히 협의 중이다. 그런데 방문 중에 한 가지 특이했던 경험이 있었다.

펠릭스를 비롯한 팔라온 센터 직원들이 독일의 통일을 통해 한국의 상황을 유의미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팔라온 센터 근처에 남은 독일 분단시절의 아픔인 장벽을 보여주겠다면서 전시협의가 끝나자마자 손수 앞장서 안내했다. 그렇게 구석기로 시작한 대화는 독일 분단의 장벽 앞에서 끝났다.

이외에도 에바 박사가 소개해준 튀빙겐 대학교의 인류연구소는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튀빙겐 대학 소속 연구소이다. 시간이 없어 이곳까지 방문하진 못했지만, 유물 수집 담당자인 그레고르 바더 박사(Gregor-donatus.bader)와 독일 보겔하트(Vogerlhard) 유적에서 출토된 사냥도구 찌르개 4점에 대해 이메일로 대여 여부가 협의 중이다.

 

▲ 펠릭스는 박물관 휴관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하여 석장리박물관 전시를 위해 적극 협조해주었다.

 

이렇게 2월 현재 유물 확보가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단계이며, 이제는 기관과의 협약, 유물보험가입, 운송방법에 대한 협의 등 수많은 절차가 앞 다투어 기다리고 있다.

또한 어떻게 하면 보다 쉽고, 재미있게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야하는지 유물진열방법, 설명원고 작성 등까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하는 과정도 남았다.

모든 과정에는 변수가 있고, 때로는 강단 있는 선택도 필요하지만 유물이 안전하게 비행기를 타고 석장리박물관으로 들어와 관람객에게 공개되고,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이 고개를 끄덕이는 광경을 볼 때면 그간의 고생은 사라지고 학예연구사로서 무한한 긍지를 느낀다.

전시는 대중과 유물, 그리고 문화가 서로 소통하는 장치이다. 전시는 그 지역의 문화 수준을 선도하고, 범시민적인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와 유물 보관 기능만 있는 박물관은 연구소, 수장고와 다를 바 없다. 박물관은 끊임없는 전시로 대중과 대화해야 한다.

그동안 석장리박물관이 개최했던 다양한 특별전시는 공주 시민에게는 지역박물관으로서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공주시에는 한국 선사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에 기여했다.

이제는 단순한 유물 대여를 넘어 전 세계적인 박물관들과 대등하게 협업하며 국내에서도 수준 높은 구석기 전시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얼마전 2019년 특별전시로 가까워진 일본의 구석기박물관 학예사들은 이번 전시이야기를 듣자 ‘유럽까지 안 가도 되겠네요. 한국으로 전시 보러 갈게요’ 라고 전해오기도 했다. 

이번 ‘사냥 혁명’ 특별전시는 석장리세계구석기축제가 개최되는 2020년 5월 2일 개막하며, 이와 관련된 주제로 5월 4일 학술대회도 개최된다. 학술대회에는 전시에 관계되었던 학예연구사들이 참여하며, 이외 프랑스 국립 자연사박물관의 연구자도 참여하여 특별전시와 연계된 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처럼 석장리박물관의 특별전시는 단순한 전시에 그치지 않고, 공주를 세계에 알리고, 공주가 가진 뛰어난 문화유산을 활용, 홍보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대표 구석기박물관으로서의 위상을 발판으로 지난 10여년 간의 국제 전시를 이끌었던 경험은 세계 어느 기관에서도 유물 대여에 주저하지 않는 신뢰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역사문화에 깊은 이해를 가진 공주와 공주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므로 박물관이 있어 행복한 도시 공주, 그리고 언젠가는 구석기 도시 공주로도 불릴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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