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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꾸는 것이 아니고 뀌어주는 것이다
2020년 02월 14일 (금) 13:15:26 이달우(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3777@kknews.co.kr

   

프로이드의 저서 ‘꿈의 해석’은 인간의 성격이나 심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억압된 사고나 감정 등이 저장되는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보고, 자유연상법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밝히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성적 본능에 작용하는 에너지인 리비도(libido)를 가지고 있다. 리비도는 일생을 통해 일정한 순서에 따라 특정한 신체부위에 집중된다고 한다.

이처럼 성감대의 연령적 변화에 따라 인간의 성격이 구강기에서 성기기까지 다섯 단계를 거쳐 발달한다고 보았다.

어떤 환자(내담자)가 겪고 있는 신경증 등의 부적응 상태는 성격발달의 어느 단계에서 직면했던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남근기에 적절한 적응을 이루지 못하여 나타나게 된다는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흔히 장래의 꿈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다. 월드컵 대회 때일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의 ‘꿈’은 잠을 자는 동안에 생시처럼 느끼고 체험하는 심리적 현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어떤 희망이나 소원과 같은 목적의식과 관련되는 개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꿈에 대해서는 프로이드처럼 집요하고 방대한 심리학적 해석까지 동원할 필요도 없다. 수면중의 심리적 현상을 분석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찾아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꿈’이라는 말의 용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흔히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꿈 꾸기’를 권한다. 이때의 ‘꿈’이나 ‘꾸다’라는 말이 뜻하는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이다. ‘잠을 자는 동안 머릿속에서 경험하는 것’과 ‘나중에 갚기로 하고 얼마동안 가져다(빌려서) 쓰는 것’이다.

월드컵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하였을 때, 거의 모든 국민들이 신화라고 할 만큼 크나큰 기쁨을 만끽했었다. 그런 우리의 염원과 소망의 상태를 여실히 반영하는 말이 바로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었다.

이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꿈’을 ‘꾸다’라는 말은 ‘잠을 자는 동안 머릿속에서 경험하다’라는 의미로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갚기로 하고 얼마동안 빌려서(가져다) 쓰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고 보기도 곤란하다.

자칫 잘못하여 ‘꿈을 꾼다’는 말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의미가 퇴색되고, 자신의 희망이나 소원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서 이루고자 하는 전혀 다른 의미로 와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까? 우리가 희망하는 소중한 ‘꿈’이라고 한다면, 그 꿈을 ‘꾸는 것’이라 하기보다 ‘뀌어주는(꾸어주는) 것’으로 표현하고 해석하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뀌어주는 것’은 나중에 받기로 하고 무엇인가를 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고 하자. 돈을 빌려주었으니 나중에 언젠가는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앞날에 대한 희망이 싹트게 된다. 좋은 일이다.

다음은 어떤 경우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꿈을 뀌어줄 수 있는 것인가? 당연히 자신이 사용하고도 남은 만큼의 돈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도 남을 만큼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탁월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돈이나 능력을 빌려주고도 남을 만큼 탁월하게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계발을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일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꿈은 역시 ‘꾸는 것’보다 ‘뀌어주는 것’이 훨씬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 뿐이 아니다. ‘꾸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빌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 의미가 약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뀌어주는 것’은 나에게 남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므로 삶에 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돋보이게 마련이다.

이처럼 ‘꾸는 것’이 아니라 ‘뀌어주는 것’으로 해석한 ‘꿈’은 자기중심적인 삶의 영위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삶의 세계라는 광장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희망, 탁월, 노력, 배려와 같은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우리 장래의 꿈의 주인은 남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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