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심각함 때문에 묻히고 있는 감이 있지만, 방탄소년단에 이어 ‘기생충’이 세상을 들썩이게 하였다. 한국인의 문화적 자존감이 극대화된,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어떤 이는 방송에 출연하여 BTS와 ‘패러사이트’, 그 문화적 창의성의 유전인자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기이하기 그지없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이 호명되던 그때, 유명한 칠지도(七支刀)에 새겨진 글자 한 구절이 문득 내게 떠올랐다.

“역사 이래 지금까지, 이런 칼은 없었습니다” ‘선세이래 미유차도(先世以來 未有此刀)’, 그것이 바로 칠지도였다. 그 칠지도를 만든 사람은 백제의 장인이었다. 칠지도는 칼에 7개의 가지로 장식을 낸 불가사의의 칼이다. 그 칠지도가 충청남도 서산 땅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농담 삼아 사람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였다. “BTS의 멤버가 일곱이라는 것, ‘패러사이트’의 주연 배우가 일곱이라는 걸 아십니까. 그러고 보니, BTS와 ‘패러사이트’는 칠지도를 만든 사람들의 유전인자가 작용된 것이 분명합니다.”

1천 5백 년 전의 백제는, 충격을 주는 문화의 창조자였다. 금동향로와 부여 정림사지 탑이 그 예이다. 백제금동향로는 백제 여러 왕의 제향을 모실 때 사용했던 향로이다.

물을 박차고 승천하는 용을 대좌로 포착하여 오악사를 비롯한 만물상을 산 속에 빼곡이 장식한 본체를 놓고, 본체 위에는 봉황을 올렸다. 의미와 기능을, 뛰어난 예술성으로 배합하였다.

어떤 이는 봉황을 천계(天鷄)라고도 말한다. 천계란 봉황과 비슷한 신비의 상징 동물인데, 그것이 천계라고 하면 백제금동향로는 ‘계룡산’이 된다. 닭(천계)과 용과 산이 함께 어울려 있기 때문이다. 경주의 황룡사 9층탑을 만든 것도 백제의 기술자였다.

그렇게 목조 건축으로 지어지던 탑의 재료를 내구성이 강하고 경비가 절감되는 석재로 전환한 것이 백제였다. 그래서 정림사탑은 돌로 탑을 만들되 목조 건축의 풍모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신라는 백제의 모든 것을 배격하고 청산했지만, 돌로 탑을 만드는 그 아이디어는 계승 발전시켰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이후 석탑의 나라가 되었다. 칠지도의 구절을 빌리자면, 역사 이래로 이런 향로가 없었고, 이런 탑은 없었다 !

백제라는 나라는 없어졌지만, 사람들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백제 사람에게 흘렀던 문화 창조의 유전인자가 소멸 되었을 리가 없다. 고려시대에는 정림사 탑을 모방한 백제 양식의 탑이 비로소 옛 백제 땅 이곳저곳에 세워졌다.

그 시대에 강진과 부안에서 만들어진 청자는 자기의 본산이었던 중국의 지식인도 감탄할 정도의 작품이었다. 강진, 부안이 모두 백제의 땅이었다는 것을 주목할 일이다. 그리고 청자 이후에는 공주 학봉리의 계룡산 자락에서 철화분청이라는 또 다른 미감(美感)의 도자기가 만들어지게 된다.

나는 문화 창의의 중요한 원천이 지역, 그리고 지역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문화가 갖는 생산성이 주목되는 시대이다. ‘백제’라는 지역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역의 문화에서 백제인의 문화 창의의 유전인자를 다시 되살리고 확인하는 일, 그것이 충남 지역의 발전을 위한 우리 세대의 사명이며 지혜일 것이다.

    -위 칼럼은 충남도정지 868호(2020.3.5. ~ 2020.3.14.)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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