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사 L’Ortolano (채소키우는 사람)주세페 아르침볼도 Guiseppe Arcimboldo 1527년 ~ 1593년 1590년경, 패널에 유채, 35.8×24.2cm, 시립 알라 폰초네 박물관, 크레모나, 이탈리아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온통 베이비 그린으로 가득했던 숲은 하루하루 지나면서 녹음으로 짙어진다. 지난 겨울부터 전 세계를 혼돈에 빠뜨린 코비드 19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모두를 집에 묶어두면서 여행, 쇼핑, 모임, 스포츠 등 대면접촉을 통제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요구하고 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보다는 상대적으로 쾌적한 시골마을에 살다 보니 뉴스와 재난 문자가 아니면 별로 실감이 나질 않지만, 계획된 전시가 취소되고 레지던시 일정도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나의 일상은 더 조용해진다. 가끔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도시에 나가는 것 이외에 약속이나 모임을 잡지 않는다.

장 보러 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요즘 텃밭 채소로 밥상을 차린다. 텃밭 채소는 매일매일 쑥쑥 자라고 식구들이 먹기에도 넘친다. 봄이면 갖가지 쌈 채소 씨를 뿌리며 언제 자라서 먹을 수 있을까 마음이 조급한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하지가 코앞이고 텃밭은 채소 가게가 된다.

올해는 열무도 잘 자라서 열무김치를 세 번이나 만들었다. 케일과 겨자채는 어김없이 벌레 밥이 되었고, 계룡 텃밭에서 구해 온 고수는 벌써 꽃을 피운다. 옆에 집을 짓고 이사 온 이웃 덕에 텃밭도 같이 일구고 밥도 같이 먹으며 밥상이 더 풍성해졌다.

정원사는 언뜻 보면 평범한 정물화처럼 보인다. 양파, 무, 당근, 마늘 같은 뿌리채소, 치커리 같은 잎채소, 월넛, 리치, 호두 같은 열매, 박하같은 향신료, 버섯을 골고루 수확해서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아 실감 나게 그렸다. ‘텃밭에서 흔히 보는 채소잖아. 정원사는 어디에 있는 거야?’ 이 그림은 수수께끼와 퍼즐처럼 이리저리 돌리며 보고 생각해야 숨은 형상을 찾을 수 있다.

평범한 채소는 눈, 코, 입, 볼이고 머리카락과 수염이고 채소를 담은 그릇은 모자가 된다. 정원사로 묘사된 인물은 그리스 신화의 다산과 원예의 수호자인 프리아포스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채소 하나하나를 묘사하고 조합하면 그것은 새로운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는 환상을 제공한다. 관람자가 보는 채소 이미지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16세기 후반, 비엔나와 프라하의 신성로마제국 궁정에서 주로 활동한 밀라노 출신의 화가이다. 황제와 왕족의 공식적인 초상화 제작을 주 업무로 했던 일반적인 궁정 화가들과 달리 그는 계절, 원소, 직업과 관련된 사물을 조합해 구성한 알레고리적 두상으로 당대에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도 이런 ‘조합 두상들(composite heads, teste composte)’이다.

위엄있고 경직된 초상화가 아닌  봄·여름·가을·겨울로 이루어진 4계절, 공기·불·땅·흙으로 구성된 4원소 초상, 황제를 계절의 신에 비유한 베르트무스, 장서가, 자화상 등 자유롭고 기발한 그림은 당시 파격적이어서 충격을 주었고 그의 그림을 지지하는 권력자(황제)의 철학과 맞아떨어져 새로운 화풍으로 탄생했다.

서로 다른 이미지를 조합하여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것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로부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 20세기 피카소, 뒤샹, 달리 등을 이어 현재까지 계속된다. 머릿속에 뒤죽박죽 엉킨 이미지를 잘 골라내서 순서를 정하고, 조합하고 화면에 옮기는 일은 진행 중이다.

그림을 보고 읽어가듯이 인간관계도 편견은 버리고 잘 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일을 볼 때 한 방향으로만 보지 말고 이쪽저쪽을 살펴보라고 아르침볼도가 그림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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