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oman with a Parasol - Madame Monet and Her Son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프랑스100x81cm, 캔버스에 유채, 1875,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예초기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간다. 현호색(나와 사는 내편)이 잔디를 깎는다. 장마철에는 돌아서면 올라오는 힘찬 풀님들 덕에 비가 살짝 그치면 예초기를 든다. 구름 낀 하늘, 습기가 있어 잘린 풀도 날리지 않는다.

미처 뽑지 못한 풀이 삐죽삐죽 나왔는데, 무릎을 훌쩍 넘겨 자란 개망초, 차 만들려고 심은 캐모마일은 돌보지 않아서 풀이 반이다. 꽃밭은 이미 시원하게 잘라서 노란 겹 원추리 꽃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 방풍나물도 키가 제법 크다.

풀 사이에서 햇빛 받으려고 애쓴 모양이다.

내가 놀라서 나온 이유는 비름나물 때문이다. 봉숭아 사이, 돌 틈 사이에서 올라오는데 요즘 며칠에 한 번씩 뜯어서 조물조물, 제법 맛있다. 예초기에 잘려나가기 전에 뜯으러 서둘러 나왔다. 그러다 봉숭아꽃밭 김매기를 하며 풀 틈에서 잘 자란 나물을 살핀다. 꽃밭에 올라온 나물도 텃밭에 날아온 꽃씨도 자리를 잘못 잡아 잡초가 되어 뽑힌다. 자리를 잘 잡아야 오래 뿌리내리고 씨앗 영글 때까지 살 수 있다.

공부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율리아(서울에서 이사 온 새 이웃, 초등3년)가 나를 보고 로이(강아지)와 쪼르르 달려온다. 풀 뽑는 내 옆에서 이건 뭔지 저건 뭔지 묻는다. 오늘 저녁 반찬으로 비름나물을 맛볼 수 있다고 하며, 봉숭아 물들이기로 자연스레 말이 이어졌다. 비가 그치고 햇빛을 충분히 받은 날 봉숭아꽃과 잎을 따서 백반, 소금 넣고 손톱에 물들이기로 약속했다. 짙은 주황색 손톱을 상상하며 웃음이 번진다.

-이모는 어떤 화가를 좋아하세요?
- 음…모네, 싸이 톰블리…
- 아, 저도 모네 좋아해요. 양산을 든 여인. 

풀 뽑는 김매기를 하며 그림 얘기를 할 줄이야. 삼 년 전 프랑스,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싸이 톰블리 전시를 보러 갔는데 파업 중이라서 돌아오기 직전에 겨우 볼 수 있었던 일,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을 보고 있는데 한 청년이 피아노 앞으로 가더니 연주를 시작해서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그는 피아노 조율사였고 그림을 보는 내내 음악과 함께하는 행운을 누렸다는 둥, 이런 저런 얘기로 입이 바쁘고 손은 열심히 풀로 간다. 덕분에 풀 뽑기가 즐겁다.

빛과 바람이 넘실넘실, 붓을 따라 춤춘다. 언덕에 풀과 들꽃은 흰 드레스를 따라 하늘에 구름과 연결된다. 긴 그림자를 드리운 오후 시간, 모네 가족은 산책 중이다. 그림자를 보면 빛은 오른쪽 뒤에서 들어온다. 역광으로 까미유의 흰옷은 하늘색과 풀색을 담고 있다. 풀밭의 초록은 그녀가 손에든 양산으로 옮겨간다.

요즘 식으로 하면 셋은 산책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얘기하며 걷다가 아빠 모네는 휴대폰을 꺼내 “잠깐, 하늘이 멋지군.” 하며 사진을 찍는다. 자유로운 붓질로 표현한 하늘과 풀밭, 까미유는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변화하는 모습이다.

마치 선녀가 나무꾼이 숨겼던 옷을 찾아 입고 하늘로 올라가려는 순간, 양산을 타고 하늘로 붕 떠오를 것 같다. 소용돌이 모양 치마와 구름은 그녀가 뱅뱅 돌면 예전에 본 텔레비전 드라마 원더우먼처럼 변신할 것만 같다. 이런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보는 아들 장은 저만치 서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나무처럼 서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율리아가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늘하늘한 들꽃 때문이라고 한다. 그 꽃이 부드럽고 앙증맞아 보인다며 풀밭이 마음에 든단다. 모네의 빛과 색채가 초등3년생의 마음에 쏙 들었나 보다.

프랑스에서 기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끝없이 펼쳐진 유채밭을 가까이서 보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 겨울을 나고 이른 봄에 우리 집 텃밭에서 올라온 갓꽃이 아까워서 요리조리 피해서 씨를 뿌리고 꽃다발처럼 남겨두었던 그 노란 꽃이 떠오른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와서 신나게 뛰어노는 율리아와 함께, 손톱에 봉숭아꽃 물들일 그날을 기다린다. 그때도 모네 그림 이야기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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