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 해석을 제대로 해 보면,

여당의 참패,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지자체 선거 결과에 대해 많은 분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엔 월드컵 축구 때문에 주춤하지만 선거 결과 분석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참담하게 졌으면 왜 그렇게 졌는지, 일방적으로 이겼으면 어째서 그렇게 이겼는지 그 원인을 잘 알아야 현재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향상과 발전은 늘 사실을 넘어 그 사실의 뒤에 숨어 있는 본질적인 작동 이유를 제대로 밝히는 데서 이루어져 왔다. 그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경우 발전을 위한 시간 낭비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분석 결과는 오만하고 무능한 정권에 대한 심판론(여당의 패인), 여당 실정에 대한 반사 이익론(야당의 승인)으로 집약되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표면적 분석에는 교묘한 위장술이 은폐되어 있음을 감지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지방선거를 통해 집권당을 심판한다는 말 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총선이나 대선을 통한 집권당 교체가 진정한 심판이다. 일부 지방권력 교체로 심판이 이뤄질 수 없음은 불문가지다. 

오만함에 대한 심판이라는 말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장기 집권이나 독재 권력에 대한 심판이란 말은 익숙해도 오만한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말은 낯설다. 언제부터 오만한 권력에 대한 심판을 말할 만큼 우리 권력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는가.

아직도 권위주의적인 권력의 그늘은 우리 삶의 곳곳에 음습하게 드리워 있지 않은가. 지금껏 국가 원수를 이웃집 강아지 나무라듯 조롱하고 비웃는 게 야당이나 보수적 언론이었는데, 그렇다면 오만한 권력이란 도대체 그 실체가 무엇인가. 조롱할 수 있다면 오만한 게 아니고, 오만하다면 조롱할 수 없어야 정상 아닌가. 따라서 오만함에 대한 심판이란 말은 편의에 따라 붙여진 레토릭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긴 역사의 양당 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풍토에서 집권당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이 곧바로 야당에게 집중된 것에 대한 해석 문제다.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여당이 못해서 나온 결과라면 그것은 일종의 부끄러운 불로소득이라 할 수 있다. 정책 대결이나 어떤 현안에 대한 해결 방안의 차이에서 경쟁하여 이겼다면 그것은 당당한 승리다. 하지만 단지 여당이 싫어 야당을 지지했다면 그것은 언제 거둬들여질지 모르는 거품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당이나 야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더 이상 자괴할 필요도 없고, 승리감에 도취되어 권력의 꿈에만 젖어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으로 민심 얻기를 경쟁해야 할 것이다. 그게 서로 사는 길이다. 

 

 견제가 무너지면 부패가 온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기형적 구조로 귀결된 지방 권력 지형도다. 주지하듯 단체장과 의회의 힘이 균형을 이루며 견제를 할 수 있을 때 건전한 지방 자치, 지역 정치가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성적 투표가 아니라 감성적 화풀이 투표’를 하다 보니 전국적으로 단체장 소속 정당이 의회 권력을 거의 독점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이런 일방적인 권력 분포는 일찍이 우리 정치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흔히 독재 권력이라고 비판하는 시대에도 우리는 야당의 견제력을 확보해 주는 역량을 발휘했었다.

물론 단체장과 의회의 다수파가 같은 정당이라 해도 권력 분립에 의해 견제력이 발동될 수는 있다. 하지만 권력과 이해관계가 상충되지 않는 곳에 긴장된 견제 장치가 작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견제가 실종되면 이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담합할 여지는 더욱 커진다.

결과적으로 지방의 유지 세력인 단체장과 의회 구성원들은 ‘그들만의 상생’을 통해 권력 연장을 꾀할 것이 자명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뒤집어쓰게 되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이 있다. 이런 점에서 단체장 소속 정당의 의회 권력 과점은 그들 스스로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 의회의 견제 기능이 약화되었을 때 그 대안은 무엇인가. 결론은 하나다. 지역 언론과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그들이 감시자가 되어 의회의 기능을 일정 부분 대행할 때 지역 정치가 제 길을 갈 수 있다.

이는 시민을 위해서나 단체장, 의회 의원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권력자는 언론이나 시민단체를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하고,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상생을 위한 애정으로 해야 한다. 이게 다같이 사는 유일한 길이다.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