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고향이 있고, 부모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나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를 고마워하고 지성으로 섬겨야 정상이다.

물론 살다가 보면, 그리고 마음이 어리면 때로 서운한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러다가도 제정신이 돌아오면 그리워지는 것이 고향이고, 부모의 품에 안기고 싶어야 제대로 된 사람일 것이다.

설령 고향마을이 가난으로 찌든 모습이어도 그렇고, 또 나의 부모가 못 배우고 잘 나가지도 않으며, 늙어 병색이 있어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모교인 고향초등학교를 부끄러워하고, 고향동네를 그리워하기는 커녕 창피해 하는 사람치고 잘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고. 아마 자기 부모가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없다고 무시하거나, 창피해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면 그 세상은 분명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일 것이라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추호의 변함이 없다.  

 

고향과 부모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고향과 부모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아들이나 딸에게 부모는 바로 그런 천륜이어서 마음대로 자르고 끊고 할 대상이 아니다. 못난 송아지는 엉덩이에 뿔이 난다고 한다. 천륜을 못마땅해 하면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거나, 주객이 전도되고 배은망덕을 일삼는 것도 못난 송아지들이다.

공주대학교의 진로를 놓고 공주가 온통 걱정들이다. 지역과 대학이 공생·상생해야 한다고도 하고, 공주대가 공주시의 심장이고 싱크탱크라고 주장할라치면 공주대의 뿌리가 바로 공주시라고 항변한다. 지역 현안에 대한 대안제시가 중요한 대학의 역할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다. 모두가 옳고 필요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좋은 말들이 자생적으로, 그리고 화기애애하게 미래를 모색하면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신임 김재현 공주대 총장이 천안으로의 본부이전을 거론하고, 교명변경을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생긴 우려와 기대라는 사실이다. 

필자도 함께 느끼는 바이지만, 오늘의 대학가는 정말 여러 형태의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기발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그것도 열심히 몇 가지씩 모색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머리를 마주하고 수없는 고민을 하여왔고, 최선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공주와 공주대학교가 공생할 방안을 열심히 마련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러한 노력들이 굴절, 왜곡되기도 하고, 혹은 마치 휴지조각처럼 매도되는 것을 보게 된다.

상생을 기약했던 공주와 천안의 연계는 어느 날 ‘천안으로의 본부 이전’으로 급전되었고, 행복도시에의 거점마련 때문에 택했던 충남대와의 통합노력도 ‘어린아이 장난’이 되어 급기야 충남대는 독자노선을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행복도시와 공주대가 무관하다면, 그동안 무엇 때문에 그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여하였단 말인가? 나는 오히려 천안으로의 본부이전 거론으로 시급한 천안캠퍼스의 정착과 공주·예산 캠퍼스 특성화가 지연될까 더 걱정이다.

 

잘난 며느리는 시집의 가풍을 따라야

잘난 며느리를 얻었다고 자랑 일색이다가도 그가 시댁의 일에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하면 모두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이 분수도 모르며 잘난 체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면 그 강도는 더욱 강해진다.

애정과 믿음을 가지고 우리 집안을 중흥시킨다면 그 복된 며느리를 누가 나무라겠는가? 믿음은 고사하고 애정과 책임감도 없이 시집온 첫(날부터) 시아버지의 무식과 남편의 무능함, 시누이의 약점을 잡으며 시집의 가통(家統)을 바꾸겠다고 설친다면 문제는 전혀 다르다. 시댁에 대한 불만 내용도 천륜이라거나, 유전인자, 내력 같은 것을 선택하면 더 크나큰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특히 묘를 파 엎고 10수 대의 터전을 옮기는 일까지도 불사하려 할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며느리는 적어도 시집의 가풍에 익숙할 때까지는 자세를 낮추고 눈치도 보면서 그 전통이 왜 생겨났고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 시아버지나 시댁의 식구들이 모두 바보 멍청이여서 그리 될 리도 없고, 또한 그럴만한 피치 못할 사정과 내력도 있게 마련이다.

애정이 있다면 모두가 절절히 가슴에 와 닿아 오히려 피눈물을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 있는 며느리라면 과연 지금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부터 다시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엉덩이 뿔난 송아지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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