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무령왕 기념비 건립 길에 일행과 함께 일본 큐슈국립박물관에 들렸습니다.

한국·중국·일본의 도자기들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긍지를 느꼈던 것은 계룡산 분청사기가 큰 홀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시작하여 한국에서 키워  일본으로 건너와 유럽으로 건너간 세계 도자 사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계룡산 분청사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역시 세계 도자사의 대종은 한·중·일입니다.

안내 해설자는 중국 도자는 크고 완벽한 모습이고, 일본 도자는 화려한 색깔, 한국 도자는 수수하고 소박한 모습을 그 주요 특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태가 큰 중국 자기와 화려한 색의 일본 자기는 곧 식상하게 되고 기교를 부리지 않는 한국 자기가 좋다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도자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일본 도자 실을 거쳐 우리나라 청자·분청·백자를 모두 둘러 본 다음 가장 소박하고 인간적인 면을 그린 것이 분청사기라는 해설자의 평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따져 봅시다. 고려청자나 조선 백자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분청이라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제작된 일이 없는 하나 밖에 없는 우리 고유의 도자기 아닙니까. 고려청자가 막을 내리고 16세기 조선 백자가 만들어 지기 까지가 분청사기 시대입니다.

청자에다가 분을 바르기 시작한 분청사기, 분장회정사기의 준말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분청사기는 관요가 아니라 민요에서 제작되었습니다. 각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그중에서 공주 계룡산이 분청사기의 중심지가 됩니다.

상감·인화·박지·선각·귀얄·덤벙 등 기법과 솜씨가 각기 다르지만 단연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철화분청입니다. 철화분청사기는 석간주라는 일종의 녹물로 그림을 그려 넣은 것으로 계룡산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계룡산분청사기’라고도 합니다. 그 안료가 물에 닿으면 빨리 퍼지기 때문에 도공들은 빠른 필치로 그려야만 합니다. 활달한 필치와 과감한 추상화가 주류를 이룹니다. 아주 서민적인 느낌이 계룡산 분청사기의 특징입니다.

굳이 계룡산이 세계도자문화를 일으킨 일본 아리타의 도조 이삼평의 고향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그저 붓 가는 데로 자유 분망하고 아무 욕심 없이 만들어낸 계룡산 분청사기의 세계는 우리들의 영원한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명한 도예가인 영국인 버나드리치는 “20세기 현대도예가 나아갈 길은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이미 다했다”라고 말한 것만 봐도 짐작할 만 합니다. 이렇게 우수한 도자기의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 들이 성취한 중요한 한 부분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한국 도자기가 우리들만이 즐기고 아름다움의 세계에 빠져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공론화된 사실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 할 것인지에 있습니다.

 과거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답답한 전통 도자기로 되는 게 아니고 또 현대도자 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변형시키면서 작품이라고 하는 것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전통을 기반으로 세계 사람들이 다같이 좋아 할 수 있는 그런 보편성을 갖는 미감으로 나갈 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큐슈박물관에 전시된 계룡산 분청사기를 보면서 계룡산 후예 도공들의 역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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