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네 살 때였나 싶다.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어린놈이 면도칼을 만지다가 손을 베었는데 핏방울이 방바닥에 몇 방울 떨어졌다. 마누라는 놀라 소리쳤지만 나는 괜찮다고, 별것 아니라고 태연한 척하였다.

그러나 사실 짐짓 그랬을 뿐 어찌나 마음이 에렸는지 모른다. 아이놈은 평소 사고를 자주 치고, 마누라 주장처럼 고집이 ‘제 에비를 닮아서’ 항상 밉상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내 생각을 적용하기에 적합했던 놈이었지만, 피를 흘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여간 좋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가 꽤나 마음 약한 사람같이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래도 할 수 없다. 정말로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분명 그랬던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데 왜 내가 하찮은 이 옛날이야기를 꺼내느냐 하면, 사실 나는 열 손가락 중에서 겨우 두세 개만이 성하다는 점 때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상처투성인 것이다. 오른쪽의 중지는 어릴 적에 탈곡기에 끼어 ‘구부러진’ 영광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왼쪽 약지는 수학여행 갔다가 기차 유리창에 치여 흉터가 완연하다. 그 다음, 그 다음의 손가락에도 이러저러한 사연들이 상처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나는 살짝 베인 아들놈의 상처를 보면서, 내가 다쳤을 때 참으로 혼비백산이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하루에 두세 번 지나치던 버스를 기다릴 수 없어 신작로에서 트럭이라도 세울 요량으로 발을 동동 구르던 모습하며, 너무 늦게 왔다고 병원에서 의사에게 혼나던 광경, 너무 크게 다쳤기 때문인지 평소의 불호령대신 알사탕을 사주시던 아버님의 모습 등등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쯤에서 나는 다른 각도에서 우리 주변의 자식 사랑과 보살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기는 요즘은 모두가 외동아들에 외동딸이니, 그런 자식을 귀하고 사랑스러워 하는데 누가 무어라 할 수 있을까마는, 때로는 남과의 관계나 자식의 장래를 위하여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역사학를 공부한 때문인지 나이에 비해 늙은 생각을 많이 가진 편이어서 아이들한테 비교적 엄한 편이다. 나의 이러한 ‘투철한 교육관(?)’을, 눈치 없게 친구의 아들이나 조카들에게 적용시키다가 마누라의 꼬집힘도 여러 차례 당한 처지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 여행을 갔다. 친구의 자식들은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투정이고, 먹여주지 않으면 밥도 먹지 않았다. 정말 가관이었다. 생각 같아선 한 볼태기 붙여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 했던가. 그중 우리 새끼들만이 평소 가정교육이 잘(?)되었던 탓에 정말로 의젓한 모습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내심 역시 내가 잘 가르쳤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같은 판단은 바로 얼마 되지 않아  “영 아니 올씨다”로 바뀌었다. 그러한 헷갈림은 똑같은 친구들과 중, 고등학생이 된 자식들을 데리고 간 여행에서였다. 우리 아이들은 나만 보면 자세가 굳어지는데 다른 친구의 아이들은 아버지를 껴안고 어리광을 부리고 마치 친구처럼 조잘거리고 있었다.

참으로 약 오르고 부러울 정도였고, 참 보기도 좋았다. 사실 그즈음 나는 우리 아이들과 대화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때로는 그것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자세를 바꾸어 부드러운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서 보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오늘은 아버지가 왜 저래’라는 식의 눈치이고 그나마 그것도 잠깐 뿐이었다. 친구와 그 자녀들처럼 되지 않고, 또 아이들도 그렇게 못할 만큼 우리 식에 익숙해진 때문이리라.

그러면 이러한 나의 엄한 자식 교육은 과연 실패한 것일까? 만약 잘못된 것이라면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며, 참으로 자식교육의 정도(正道)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글 읽는 자식 둔 독자들은 과연 이런 점에 대하여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아버님도 그렇게 하였고, 그런 가정교육을 받는 동안 나 역시 그것을 항상 불만으로 생각했었지만, 나이든 지금에도 그러한 교육 방법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좀 면구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자식도, 그리고 나도 아주 못된 망나니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버님은 지금도 자식과의 사이에서 고고하시기는 하지만 매우 외로우시다. 그래서 나는 이 어려운 수수께끼를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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