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 차 친정에 온다 하기에 좁은 방을 늘려 새 방을 만들었다. 짐을 옮기며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성장한 아이들과 찍은 가족사진을 빈 벽에 거는 일이었다.


틈이 날 때마다 가족사진 한 장을 지그시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은 그간 삼십 여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그 속에서 묻어나는 까닭이다.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한 지난 30 여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릿 속에 스친다. 그 시간 속에 차곡차곡 쌓인 많은 사연과 쉽게 지워져  버리지 않는 묵은 때 같은 생각들도 왜 그리 되새김질 해지곤 하는지 모를 일이다.


한동안 사진 찍는 일에 취미를 붙여 피사체만 보면 사진기를 먼저 들이대던 내가 요즈음은 사진 찍는 일보다 보는 일에 더 열중하게 되었다. 내가 찍어놓은 사진, 옛 기억이 담긴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찍는 순간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낡은 앨범 속에서 잠자고 있던 묵은 사진들을 보며 그 안에 담긴 표정에 대해서 주목하게 된다. 사진의 선명도도 중요하지만 그 시절, 그 순간의 갖가지 표정이 그 때 내 삶이 어떠했음과 정비례함을 느끼며 많은 생각을 한다.


처음 갑사에 내려왔을 때, 베트남 여인처럼 빼빼 마르고 맥없어 보였던 시절의 모습, 수정식당을 처음 열고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막일도 서슴치 않던 시절의 억척스러운 모습… 사진 속에 담긴 내 소소한 일상의 표정이 당시 너무 힘들었던 생활과 일치함에 깜짝 놀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커 가고, 수정도 점점 안정을 찾고 자리를 잡아가면서 찍은 사진 속의 내 모습에는 조금씩 미소가 번져감을 느낀다. 서울을 떠나 계룡산에 내려와 살면서 내 표정도 조금씩 환하게 밝아졌음을 스스로 느끼며, 이 일상의 소중함에 얼마나 감사하게 되는지!


수정을 일구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못했으며 결코 짧지 않은 동안 갖가지 희노애락 속에 하루하루 엮인 사연들이 지금은 커다란 자산이고 값진 보물이 되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를 요즈음 조금은 알아가는 것 같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진리와 참아 낼 줄 아는 인내의 힘도 또한 삶의 명약(名藥) 중의 명약임을 느낀다. 그런데 요즘 주변에는 왜 그리 힘들어하고 절망적이고 지쳐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함께 공존공생(共存共生)하며 다함께 즐거울 수 있는 축복의 길이 아쉽다.


올 가을은 풍성한 계절, 풍요로운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결실의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결실의 계절인 이 가을에 나는 커다란 축복의 선물, 외손녀를 얻었다. 가족사진 한 장 속에 숨겨진 인고(忍苦)의 세월이 결실을 얻는데 꼭 삼십년이 걸린 것 같다.

샛별처럼 반짝이는 아기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다짐해본다. 앞으로는 더욱 더 내 마음 밭에 아름다운 좋은 씨를 뿌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고 싶다고. 승화된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더욱 성실히 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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