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위에 아직 남아 있는 516미터 길이의 금강구교는 이제 공주 도시역사의 중요한 역사유물이기도 하다. 일방통행이기는 하지만 이 다리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감회를 갖게 하는데 충분하다. 1932년 충청남도 도청이 공주 반죽동에서 대전 선화동으로 옮겨가면서, 다소나마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 ‘도마뱀의 꼬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 이 다리이기 때문이다. 

박물관 도시, 공주
 
  유난히도 청명한 이번 가을에는 공주에 석장리박물관과 충청남도역사박물관의 2개 박물관이 거의 동시에 개관한 뜻 깊은 계절이었다. 석장리 박물관은 한반도 인류 역사의 여명을 연 수 십 만년 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고, 충청남도역사박물관은 공주가 백제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공주에는 백제 이래의 각종 유적 이외에 많은 공사립 박물관이 이미 설립되어 있다. 이제 이같은 시설로 공주는 역사도시 공주의 면모를 보다 구체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정말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 유적과 박물관, 문화시설, 그리고 환경자원 등을 연결한다면 각종 체험학습의 현장으로 공주만한 곳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청명한 날씨에 대조되면서 표현하기 어려운 위기감이 가을 안개처럼 금강가에 퍼져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첫째는 충남도청의 공주 인근 지역 환청의 좌절에 따른 후속대책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한 가지는 공주대학교 교명 변경과 관련한 위기감이다. 여기에 아직 표면화된 것은 아니지만 행정도시의 진척에 따른 보다 상세한 공주의 손익 계산서도 잘 챙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도청 이전 문제가 제기될 때만 하더라도, 공주에서는  ‘환청’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행정도시가 바로 공주·연기지역으로 확정되면서, 지역의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공주에의 환청이 어렵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었고, 이것은 우려가 아닌 현실로 확인되었다. 여기에 공주대학교의 교명 변경이 가시화 하자, 대학 본부 이전 논의와 중복되면서 이를 적극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지역에서 일고 있다. 이것은 대학의 정책 변화가 지역 발전의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한데서 말미암는 것임은 물론이다.

공주, 한국의 중심 ?

  행정도시가 공주·연기지역으로 확정될 때만 하더라도 지역에서는 이를 크게 환영하고, 이제 공주가 새서울이라는 자부심으로 뿌듯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중심, 충남>이라는 충남의 브랜드 슬로건을 조금 손대면, <충남의 중심, 공주>였고, 그래서 이것은 다시 <한국의 중심, 공주>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행정도시가 점차 가시화하면서, 행정도시의 등장이 과연 공주 발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대한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도 인식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부정적 측면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은 부작용의 최소화 및 행정도시 그 자체가 반드시 공주 발전의 약속이 아니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이다.

처음 행정도시가 확정될 때는 공주로 확정되었지만, 실제 행정도시가 만들어지면, 그 도시는 공주를 잘라서 공주와는 전혀 별도의 강력한 도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정도시가 만들어지는 동안 공주에서의 할 일은 이를 활용하는 전략을 만들어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기왕에 추진되었던 공주대의 충남대와의 통합논의도 사실은 행정도시 활용 내지 대응 전략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가을 금강을 건널 때에는, 금강대교를 건너든 공주대교를 건너든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혹 그도 저도 아닌 금강구교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때는 1932년의 공주를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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