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할만한 분을 만날 수 있는 것, 마음 맞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행복한 일이라는 것은 그것이 쉽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기도 하다.

허임, 공주 출신의 히포크라테스

공주시의 지원에 의하여 ‘공주의 인물’ 세미나가 몇 차례 치러진 바 있다. 공주 출신의 인물로서 존경받을만하거나 역사적인 위업을 남긴 인물, 혹은 교육적으로 본이 될만한 인물을 조명하는 작업인 것이다. 세미나는 그동안 세 분의 인물을 조명하였다. 세종, 단종조의 명재상 절재 김종서, 한말 갑신정변의 주역 고균 김옥균, 그리고 영조조 일본에의 통신사행을 한글 서사시로 정리한 일동장유가의 저자  퇴석 김인겸 선생 등이 그것이다. 절재의 충절정신, 고균의 혁신정신, 그리고  퇴석의 문화정신을 평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절재 선생은 의당면과 장기면, 고균은 정안면, 그리고 퇴석은 무릉동이 출생지 혹은 묘소가 있는 곳이다. 앞의 두 분은 우리나라 역사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들인데 비하여 세 번째 퇴석 선생은 공주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분이다. 앞의 두 분이 정치가였던 데 대해, 뒤의 한 분은 문필가, 문화인물에 해당한다.    

12월의 첫날 충청남도 역사문화원에서는 공주 인물에 대한 네 번째 조명으로 허임(許任) 을 조명한다고 한다. 허임 선생은 한마디로 공주에서 지금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고, 유형을 분류하자면 의료인, 전문기술인에 해당한다.

허임 선생은 인조, 선조년간에 활동한 침구의(鍼灸醫)로서 ‘신(神)의 의술’로 일컬어질 만큼 이름이 높았으며, 그가 평생 치료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동의보감>의 허준이 약재에 의한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약의였다고 한다면, 같은 시기의 허임은 침술로 사람을 치료하는 침의로서 선조임금에게 침을 놓았던 인물이다.

침술뜸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을 치료하는데 있어 값비싼 의료장비나 약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침술뜸이야말로 가장 경제적인 전통 의료법이었으며, 서민적 의료법이었던 것이다. 허임의 저술 <침구의료방>은 자신의 오랜 임상 경험을 토대로 ‘구급활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큰 뜻에 의하여 저술된 것이라 한다. 그가 특별히 침술뜸에 집착한 것은 완전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감히 ‘공주출신의 히포크라테스’라고 부르고 싶다.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는 이 허임 선생의 연고지이다. 선생은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호종하여 공주에 온 것이 인연이 되어 내산리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묘소는 원래 무릉동에 있던 것을 내산리로 옮겼다고 한다.

아름다운 사람, 따뜻한 마음을 찾아서

공주의 인물 세미나를 통하여 앞으로 <공주인물 10인>이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 ‘10인’에 들 만한 인물로 부여사마(무령왕)와 홍길동도 있다. 무령왕은 공주 출생은 아니지만 공주에서 오랜 세월을 살면서 공주에 특별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이에 비해 홍길동은 다소 전설적인 요소가 없지 않지만 공주인물로 다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두 분을 더하더라도 ‘공주 인물 10인’을 채우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여러 분이 찾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인물의 고장 공주에서 ‘공주인물 10인’을 공감대 있는 인물로 채우는 것이 쉬운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지역 출신의 인물 가운데 그 뜻을 기릴만한 존경할만한 분을 찾아내고 조명하여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자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귀중한 문화재를 찾아내듯이 그런 분을 찾아서 그 분들의 뜻을 새기고 밝히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가치로운 일중의 하나일 것이다. 다시 겨울이 시작하는 날, ‘공주 사람’ 허임 선생의 온기를 함께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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