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소장 서정석) 정기학술세미나가 2월 25일 공주대학교 인문대학 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는 최근 들어 새로운 고고학적 자료가 속속 발굴되는 것에 발맞추어 ‘백제의 지방통치’라는 주제로 5명의 연구자가 최근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박중환 실장은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목간(木簡: 종이대신 글씨를 쓴 나무 막대)의 명문과 최근 전북 고부읍성에서 발굴된 ‘상부상항(上部上巷)’이라는 명문을 근거로 백제의 지방도시들도 부(部)와 항(巷)으로 나누어진 정여한 도시형태를 갖추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부와 항은 오늘날 도시의 ‘동(洞)’- ‘반(班)’에 해당되는 것으로, 백제의 경우 종래에는 사비도성만이 부-항으로 구획된 정연한 시가지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발표를 통해 도성만이 아니라 지방의 중심 도시 역시 사비도성과 같은 ‘부-항’체제가 이루어진 것임이 확인되었다.

조경철 박사는 고대 한일 양국의 대외관계를 해명하는데 핵심적인 자료로 알려진 칠지도(七支刀)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했다.

일본 나라현에 있는 칠지도는 말 그대로 가지가 7개 달린 특이한 형태의 칼인데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이 칼을 왜왕에게 바쳤다고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일본서기’의 기록을 근거로 당시 왜와 백제의 관계를 주종관계로 설명해 왔다. 조경철 박사는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 동안 중국 동진(東晋)의 연호라도 믿어왔던 ‘태화(泰和)’가 실은 중국이 아닌 백제의 연호라고 주장하였다.

이날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조원창 실장이 발표한 부여 군수리사지에 대한 재검토 주장이었다.

 부여 군수리사지는 백제 사찰로는 최초로 1935년에 일본인 학자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조사 결과 탑과 금당이 각각 1기씩 자리하고 있는 1탑 1금당식 구조의 사찰로 밝혀져 이후 백제사찰은 1탑 1금당식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굳어지게 되었다.

최근에 조사된 부여 능산리사지나 왕흥사지 역시 탑과 금당이 각각 1기씩 자리하고 있어 이러한 주장은 틀림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원창 실장은 군수리사지의 구조가 종래에 알려져 왔던 1탑 1금당식의 구조가 아니라 실은 1탑 3금당식의 구조라고 새롭게 주장했다.

 1탑 3금당식은 말 그대로 탑 1기에 금당이 3동(棟) 자리하고 있는 사찰 구조인데, 발굴조사된 도면을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중앙 자리하고 있는 금당의 동쪽에서 새로운 건물지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이 새로운 건물지는 기단의 처리방식을 통해서 볼 때 새로운 금당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건물은 중앙 금당의 서쪽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결국 군수리사지는 1탑 3금당식의 구조였다고 보았다.

백제 사찰 중에는 이러한 구조가 없지만 경주에 있는 신라의 황룡사나 일본 최초의 사찰인 비조사(飛鳥寺)는 이러한 1탑 3금당식의 사찰구조를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군수리사지의 사찰구조는 신라 황룡사의 창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았다. 황룡사에는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가 세워준 9층목탑이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도 황룡사는 백제 사찰의 구조를 모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이외 백제 가림성(加林城)과 국가제사에 대해 채미하(경희대)교수가, 홍성 석성산성에 대한 고찰에 대해 서정석(공주대)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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