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숙경((사)한국공인중개사협 공주시지회장)

지난 해 공무원을 퇴직한 남편은 이제 전업 농부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금년에 난생 처음으로 고추농사를 5천 포기나 짓게 되었다.

내 친정 쪽 혈통이 워낙이 튼실한 편이어서 쇠 좋은 내니까 웬만한 노동쯤은 감당하겠지 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지난봄에 관리기를 새로 장만해서 골 타고 비닐 씌우기부터 그보다 먼저 거름 수십만 원어치 사다가 넣는 일부터 남편은 아주 열심이었다.

고추모종을 사다가 심고 흙을 덮고 곁순 따주고, 비료를 옆에 구멍 내서 일일이 넣어 주었다. 비가 많이 오고나면 고랑사이에 물이 고일 새라 삽 들고 물꼬 터주는 일도 당연 남편 몫이었다.

그렇게 갖은 정성으로 두 달 보름 지난 후, 드디어 붉은 고추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4월에 비닐하우스 두동 지어놓았고 고추건조기도 새로 장만했으니 수확한 물고추 전량을 말려서 건고추로 내볼 생각이었다.

첫물은 조금 땄다. 두 번째 세 번째도 조금씩 양이 늘어 갔다. 그 후 고추 따기는 점점 힘들 정도로 양이 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품을 살 만큼의 규모는 아니라서 있는 식구 총동원하여 내가 제일 긴 고랑에 들어가고 그다음에 딸이, 그 다음 고랑엔 남편이, 또 그 다음 고랑엔 아들이 들어가서 고추를 따보았다.

남자는 골반 구조상 쪼그리고 하는 작업이 잘 안된다는데, 서툴긴 해도 군말 없이 노동력 자급자족에 동원된 우리 남편과 아들을 보니 안쓰럽고 미안하면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한창 미모에 신경 쓸 내 딸 역시 뜨거운 염천에 열심히 고추를 따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진다.

고추나무 한 포기에 붉은 게 이삼십 개씩 매달려 있으니 따는 일이 점점 힘들어져 간다. 즐거운 비명이란 게 이런 건가보다 실감하는 중이다. 우리가 젊어서부터 이 나이 먹도록 한 세상 살아오면서 매운 맛 쓴맛 단맛 다 보았지만, 금년엔 고추농사 매운 맛을  실컷 보게 생겼다.

문제는 농산물 유통이나 마케팅에 아는 게 없으니 걱정이다. 그저 말리는 대로 쌓아 놓자니 집이 좁고 이 물건들을 어찌 다 여워야 할지 고심 중이다.
붉어가는 고추밭에서...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