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진(공주여성문학 사무국장)

우리 집 사슴장 바로 아래에 있는 밭은 천혜의 옥토이다.

가까워서 손쉽게 사슴장의 거름을 퍼다 부으니 척박한 땅이라도 옥토가 될 수밖에 없다.

옥토에는 어떤 작물이든 다 잘 자란다. 호박을 심으면 동이만큼 굵어서 한 아름에 안기도 벅차고 옥수수를 심으면 장대만큼 키를 키우며 두 개, 세 개씩이나 열린다. 

어떤 작물도 다른 밭의 농작물보다 번들번들 윤기를 내며 크는 속도가 육안으로 보이는 듯이 자라난다.

키와 몸집도 속도에 비례하면서 자라니 자연 낟알의 굵기도 보통을 넘어서 실하고 열매나 이삭도 더욱 탐스럽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이 옥토에 뒷짐 지고 서서 수런대며 자라나는 작물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뒷바라지, 환경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체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밀어주고 끌어준다면 분명히 고품질의 인재로 양성되리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왕후장상의 씨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풍부한 뒷받침, 양질의 교육이 대단히 중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름진 토양에 뿌리내린 작물들은 품종에 관계없이 다 검푸른 잎을 한껏 뻗어 작열하는 태양빛에 제 품종의 모습들을 더욱 왕성하게 드러내고 있다.

키 큰 옥수수라고 더 많이 자라고 키 낮은 고추라고 덜 자라는 것이 아니다. 품종대로 타고난 성질, 모습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거름을 무더기 째로 퍼부어 심은 호박은 저 혼자 먹고도 남는 양이지만 아무리 넘치는 거름이어도 여름가고 가을이 되가는 지금까지 절대로 옥수수가 되어 가는 포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뒷바라지가 풍족하고 훌륭한 스승이 끌어주더라도 개개인마다 품종대로 재능대로 자랄 뿐이다. 운동선수에게 고액과외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듯이.

그런데도 현대인의 자녀 교육법은 보리도 밀도 콩도 호박도 모두 벼가 되게 가르치고 있다.  쌀이 주식이라고. 그러나 우리의 입맛은 어떤가? 쌀밥만 먹기는 다들 싫어하지 않는가.

밀가루로 만든 빵도 즐겨 먹고, 콩가루 무친 인절미도 먹고 싶지 않던가. 호박죽도 맛있고, 갈증 날 때 거품 오르는 맥주한잔이 또 얼마나 상쾌하게 하던가.

내 옥토에는 한 가지 작물만 자라지 않는다. 시장을 가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게끔 갖가지 부식, 간식거리를 심어놓았다. 기름진 토양을 먹고 그들 나름대로의 모습을 있는 대로 드러내며 들판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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