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홍순 (일어일문학 전공, 제일일어전문학원장)

누카타노오오기미의 생몰년(生沒年)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 37대 사이메이텐노(斉明天皇, 제명천황 : 655-661)시대의 660년경에 왕성한 활동은 한 것으로 일본서기는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누카타노오오기미의 대표작이다.

“숙전진(熟田津)에서 출항코자 월출(月出)을 기다리고 있으니
마침 달도 떠오르고 조수도 만조가 되었도다.
자아 이젠 배 저어 떠나자꾸나.”

이 시는 한반도에서 백제와 신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 있을 무렵인 660년6월 백제의 사신이 일본의 조정에 가서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치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원군을 요청했다.

이듬해 정월 6일 사이메이(斉明) 천황은 나니와(難破, 난파, 지금의 오오사카) 항구에서 군선을 이끌고 서쪽으로 향해 8월에는 쇼우즈지마(小豆島, 소두섬) 북방을 지나 14일에는 이요(伊予, 이예, 지금의 에히메현, 愛嫒県)의 숙전진에 정박하였다.

위 노래는 이때 지은 것으로 여류가인 백제인의 후손인 누카타노오오기미의 대표작이다. 누카타노오오기미는 일본서기(日本書紀) 텐무기(天武紀, 673-686) 2년 2월 조(条)의 기록이 있다.

“누카타노오오기미는 백제계 왕족인 경왕(鏡王)의 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누카타노오오기미의 노래는 장가(長歌) 3수, 단가(短歌) 9수가 실려 있다.

두 번째 누카타노오오기미의 노래는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야마토(大和)정권이 수도를 아스카(飛鳥)에서 오오미쿠니(近江国) 오오쯔시(大津市)로 천도하는 과정에서 천황의 심정을 대변하여 지은 노래다.

“삼륜산(三輪山, 미와야마)이 내량산(奈良山, 나라야마)에 감춰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길의 모퉁이기 겹쳐져 멀리 사라질 때까지
잘 보고 싶건 만은 멀리 몇 번이나 바라보고 싶은 삼륜산(三輪山)을
구름이 무정하게도 가려야겠는가.”

이 노래는 천황일행이 야마토(大和)를 떠남에 이르러 삼륜산(三輪山)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심정을 읊은 노래다. 끝으로 사이메이(斉明) 천황이 오오쯔시(大津市)로 천도한 후 부른 노래다.

“봄이 오면야 울지 않던 새도 날아와 울고 피지 않던 꽃도 피어나지만
나무가 무성해서 들어가 가질 수도 없고 풀이 길어서 손에 쥐어 볼 수도 없지
가을 뫼의 나무들을 볼 때는 누른 잎은 따서 보고 푸른 것은 그냥 두고 느끼지 그것이야 한스러워도 가을 뫼가 나는 좋아.”

이처럼 누카타노오오기미의 시는 격조 높은 걸작이 많고 궁정가인 중에서도 제 1인자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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