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24개 지방문화원 가운데 최초의 독립원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오십년의 역사와 전통의 무게를 간직한 곳으로 전국문화원의 발전 모델 역할을 자임해 오고 있는 공주문화원 정재욱 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정재욱 원장과의 일문일답.

-공주문화원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 지금부터 37년 전인 1968년 12월 12일이다. 가정형편상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당시 문화원에서 운영하던 ‘공주직업소년학교’에 다니던 시절, 당시 문화원에서 문화과장직과 학교에서는 교무 직을 겸임하였던 은사이신 성준기 선생님의 천거로 문화원에 취직이 됐다.

-문화원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 90년대의 일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자연히 생활비도 늘어 도저히 문화원의 근무여건으로는 생활을 지탱하기가 어려운 형편에 내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 소위 신경성 위장병으로 전문의의 소견으로 신경쓰는 일을 하지 말라는 권고였다.

문화원을 떠나고자 결심을 하고 당시 원장이신 이관영 원장님게 뜻을 표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본원의 예산내용을 뻔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급여개선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곡한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문화원장으로서 각오는.

△ 나는 취임 소감을 어느 일간지에 “문화원의 문턱을 낮추고 시민 누구나 부담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사랑방역할을 충실히 할 것과 문화의 도시 공주의 위상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고 피력한 바 있다.

이제 남은 3년6개월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지역의 발전과 40여 성상을 천직으로 생활해온 문화원에 나의 족적을 남길 것인가 하는 생각에 오늘도 하루가 짧기만 하다.

-공주문화원 50년사를 발간한 소감 한마디.

△ 우리는 언제부턴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오늘날처럼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아남고 더 나아가 문화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정보 그리고 문화적 창조력이 바탕이 되어야 지역의 발전, 나아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확신한다.

사실 50년사는 본원의 개원 50주년인 2004년도에 발간되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해를 넘겨 이제야 발간하게 됐다. 본서의 내용이 다소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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