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外篇 <達生>  (장자 외편 <달생>)

紀 子爲王養鬪鷄   方虛 而恃氣  猶應嚮景   猶疾視而盛氣

鷄雖有鳴者  已無變矣  望之似木鷄矣  其德全矣  異鷄無敢應者 反走矣

(기  자기왕양투계   방허 이시기 유응향경 유질시이성기

계수유명자  이무변의 망지사목계의 기덕전의 이계무감응자 반주의)

紀 子(기성자)가 싸움닭을 키웠다
초보 싸움닭은 공격력과 怒氣(노기)로서 싸우지만
싸움 잘하는 싸움닭은 다툼이 없는 경지에서 싸운다.

인간은 생각을 많이 하고 感情(감정)이 多樣(다양)하다.

따라서 상대방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어그러지면 其(기) 생각과 감정의 깊이만큼 싸움의 깊이도 깊어진다.

그러나 생각이나 감정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죽인다는 것은 다른 어떠한 생명체나 동물에서는 없다. 생각이나 감정이 다르다고 죽인다면, 죽인다는 것보다 생각이나 감정이 커야하는데 이 세상의 어떠한 위대한 생각이나 사상,철학, 종교도 살인과 죽음보다 클 수는 없다.

생명의 탄생이 太初(태초)에 시작되었다면 생각, 감정 ,철학, 종교는 생명의 탄생이후에 생겨난 것들이다. 그렇다면 생명의 소중(所重)함이 생각, 감정, 철학, 종교보다 앞서는 것이다.

그러한 소중한 생명을 생각의골, 감정의 장벽으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한다면 본말이 도치(倒置),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요즈음 학교폭력을 얘기하는데 딴은 싸움꾼이 영웅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儒家(유가)에서 말하는 坐馳(좌치, 마음이 조용히 앉아있지 못하고 앞으로 달려나가 싸우는것)에 불과한 것이며, 진정한 폭력은 싸우지 않는 폭력이며 싸우지 않는 폭력은 언제나 이긴다. 이것이 마음의 다툼을 그쳤다 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卑怯(비겁)한 짓이다. 보이는 것을 죽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죽이는 것만 못하다.

이를테면 증오(憎惡)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죽이지 않으면 결국 나 스스로가 其(그) 증오에 죽임을 당한다는 儼然(엄연)한 진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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