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대방무유 대기만성 대음희성 대상무형)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도은무명 부유도 선대차성)

큰 사각형은 모나지 않으며 큰 그릇은 부질없는 思念을 보태지 않는다.

이철진
술취한 사람이 大凡(대범)해지는 것은 부질없는 思念(사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많은 부분에 있어 헛된 思念에 많은 에너지를 허비(虛費<浪費>)하고 있다.

옛말에 '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군자는 평생의 근심은 있어도 하루아침의 근심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부분의 걱정과 근심은 하루아침의 이슬만큼이나 일시적인 것이고 또한 실체(實體)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인데 大道(대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부질없는 사념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큰 그릇을 완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은 시간과 思念을 뛰어넘은 자리에서 一以貫之(일이관지) 하므로서 그릇이 완성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줄기차게 邁進(매진)하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듯이 에너지가 분산되면 작품이 나올 수 없다.

보통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은 乖愎(괴팍)한 성격을 가졌다고 하는데 이것은 에너지가 한곳으로 집중되면 些少(사소)한 것은 잊혀지게 되며 이것이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순수한 에너지로 보면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면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大道無門(대도무문)이라는 말은 세상이 온통 門이어서 어느 것을 門이라고 구별이나 분별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大道가 門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치열하고 진지하게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의미는 시간적인 구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惰性(타성), 생각과 思念의 category(카테고리)를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大器는 부단한 內功(내공)의 결정체(結晶體)이며 부질없는 思念의 군더더기가 없는 內功의 결실이다. 거기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끼어들 차원(次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보통 晩學徒(만학도)를 대기만성이라는 말을 하는데 게으른 사람들의 자기 합리화가 대기만성이 아니고 大道의 길은 사람들의 惰性이나 思念을 벗어나며 刻苦(각고)의 內功(내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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